7월에 개봉한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 1928~1989) 원작의 영화 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6년 전, 인구가 600명밖에 안 되는 오키노마부네 섬(沖之眞船島)에 신형가스 유출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섬의 주민들은 모두 학살당하지만 가라이 (賀來)야마다 다카유키 분 와 유키(結城) 다마키 히로시 분라는 두 소년만이 살아남아 각각 가톨릭 신부와 전도유망한 은행가로 성장한다. 이 둘은 항상 어렸을 적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이 때 외지에 나가 있던오키노 마부네 섬 출신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시작하고 이 사건을 파헤치려던 신문기자도 죽게된다.

은행가로 성장한 유키는 이 사건에서 신형 가스를 흡입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악마로 돌변한다. 그는 사람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갈증이 난다고 하면서 처음엔 섬 출신 사람들 중에 신형가스 유출사건과 관련된 사람들만 죽이다가 나중엔 친구 였던 가라이 신부나 이 사건을 파헤치려는 기자들도 죽이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원작만화와의 차이이다. 원작에서는 가라이 신부와 유키가 육체관계를 맺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어릴 적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가라이를 일으켜 섬에서 탈출하게 하는 것은 유키이고 둘은 이후 은혜를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선악의 대립이라는 도덕률이 지배하기에는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하는 원작의 취지는 악을 상징하는유키가 선을 상징하는 가라이를 도와주는 관계로, 그리고 이후 가라이가 계속 이 일을 마음의 짐으로 지니고 살아야하는 상황에서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유키가 범죄의 주인공으로 중심에 있고 가라이는 범죄의 조연이 되어 영화 밖으로 벗어난다. 선과 악의 대립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일깨웠던 원작만화는 영화에서 선을 상징하는 듯이 보였던 가라이가 조연으로 설정되면서 선과 악의 균형관계가 무너지고, 악을 대표하는 유키의 1인극이 되고 만다.

이 때문에 유키는 철저하게 고독한 주인공이 된다. 그는 어렸을 때 신형가스를 흡입한 전력으로 가끔 숨을 쉬지 못하기도 하는데, 도쿄 번화가의 지하도에서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도 사람들은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갈 뿐 구급차를 부르지도,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의 아파트는 인간미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금속재질의 최첨단 시설로 가득한 공간이고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상사를 죽일 때는 도쿄의 상징 중 하나인 전자상가 아키하바라(秋葉原)의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도쿄는 유키를 고독한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적합한 도시이고 익명성의 도시인만큼 그가 살인을 일삼더라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러닝타임 129분 중에 20분이 할애된 초반부 시퀀스의 장황한 추격전,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 미군기지도 유키의 개인적 복수극을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신형가스의 유출사고, 즉 일본의 국가위기에 미군이 관여했음을 연상하게 했던 이 장면은, 신형가스 MW의 보관장소인 미군기지에서 사령관 리처드가 유키를 쫓는 일본경찰 사와키에게 “당신들의 문제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시오”라며 총을 넘겨 버림으로서 유키와 사와키의 개인적인 추격전으로 대립을 축소시킨다.

유키가 복수를 해야 하는 대상은 신형가스를 만든 대기업과 이를 지지한 정치가, 그리고 이를 묵인한 미군, 즉 미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와 이를 대표하는 공권력과 경제계의 중심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복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 정의를 지키려는 십자가와 진실을 파헤치려는 신문기자는 죽지만, 문제의 핵심인 기업가와 정치가와 미군은 살아남았고 미국과 일본이라는 국가도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