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급 공무원> 봤어?” 지난 두 달여간 <7급 공무원>은 바로 ‘가족영화’였다. 남녀노소 부담없이 볼만한 영화로 늘 언급된 영화가 바로 <7급 공무원>이었고,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과속스캔들>의 흥행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렇게 4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6월 7일 기준, 개봉 47일 만에 4백만 관객을 넘겼으니 올해 한국영화 개봉작들 중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 흥행시즌이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개봉중인 상태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한국영화들 중에서는 올해 박스오피스 ‘베스트 5’ 안에는 확실하게 포함될만한 수치다. 더군다나 모두가 기대했던 두 편의 한국영화 <박쥐>와 <마더>, 그리고 <엑스맨 탄생: 울버린X-Men Origins: Wolverine>과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이 개봉하는 가운데 거둔 성적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른바 흥행영화로서 ‘가족영화’가 되는 조건은 뭘까? 일단 ‘전체 관람가’ 혹은 ‘12세 이상 관람가’로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안아야 하고, 남녀노소의 서로 다른 기준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코미디 장르여야 한다. <7급 공무원>은 무엇보다 쉴 틈을 주지 않는 코미디 영화다. 거기에는 익숙한 관습과 변주가 함께 한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로 대표되는 TV드라마 <로망스>(MBC, 1999) 혹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3)에서 보여준 김하늘안수지 역의 발랄한 코미디 감각이 관습이라면,<영화는 영화다>의 이미지로부터 소심한 사고뭉치로 완전히 변신한 강지환이재준 역은 의외의 변주다. ‘서로 다른 소속의 비밀 정보원 출신 커플’이라는 점에서 <7급 공무원>은 분명 ‘브란젤리나(Brangelina)’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Brad Pitt)와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부부를 일컫는 말주연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2005)의 벤치마킹(benchmarking)이 분명하지만, 그와 달리 <7급 공무원>은 똑똑하고 야무진 여성캐릭터와 실수투성이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남성캐릭터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런 첩보액션영화에서 여성캐릭터는 늘 남자주인공으로부터 보호받는 역할이었지만 그것과 전혀 다른 데서 오는 쾌감이 무척 큰 것이다.

영화의 한장면

게다가 현실감 넘치는 조연캐릭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재준의 상사인 원석류승룡 분은 깐깐하고 거칠면서도 속 깊은 정보원으로서,영화의 긴장감이 늘어진다 싶을 때쯤 결정적인 해결사로 등장한다. 수지의 상사인 홍팀장장영남 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첩보액션영화의 캐릭터들이라기보다는 배꼽 잡는 시트콤의 노련한 조연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7급 공무원>은 여러 군데서 엉성함을 발견할 만큼 이른바 ‘웰메이드(well-made)’ 장르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와이어 액션과 총격전이 벌어지는 세트도 그렇지만 수원성에서 말을 타고 펼쳐지는 액션신들은, 마치 과거 홍콩 액션영화의 암울했던 한때를 연상시킬 정도로 빠듯한 예산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그런 촌스러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정체불명의 박사강신일 분와 그를 저지하려는 한 일개 경찰유승목 분의 코믹한 실랑이, 더불어 그 액션 장면의 마무리를 과거 그들 남녀가 늘 함께 했던 펜싱 장면의 추억으로 마무리하는 깔끔함에서 온다. 종종 <7급 공무원>을 두고 “TV드라마 같다”고 얘기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영화를 다소 폄하하는 보통의 의미와는 달리 <7급 공무원>의 경우 TV드라마의 속도감 있는 진행과 연결되었다. 말하자면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의 영화로서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7급 공무원>은 그렇게 김하늘과 강지환의 멜로 코드를 바탕에 깔고도 ‘첩보’라는 기본 골격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과거사도 간결한 플래시백으로 처리하는 등, 결코 산만하지 않은 구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첩보영화임에도 의도적인 복선이나 암시 등의 복잡한 장치를 삽입시키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충분히 관객과의 두뇌게임을 벌일 만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코미디로 승부를 건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7급 공무원>이 가족영화로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한국영화들 중에서도 ‘고급 스릴러’를 표방한 <그림자 살인>이나 <인사동 스캔들>과 비교해볼 만하다. 한때 너도나도 ‘웰메이드’를 외치던 시절을 지나 한국영화계의 위기와 더불어 긴축 재정이 현실화된 지금, ‘전체 관람가’라는 화두는 바로 <과속 스캔들> 이후 달라진 한국영화계의 지형도다. <7급 공무원>의 성공이 바로 그를 뒷받침한다.

영화<7급공무원>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