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판 〈에반게리온Evangelion〉 시리즈(1995.10~1996.3)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지닌 주인공 이카리 신지(碇シンジ)와 복제인간 아야나미 레이(綾波レイ)가 에바라는 괴생명체를 이용해 시토(使徒)라는 적으로부터 세계를 지킨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다. 특히 결말인 25~26화에서 그때까지 벌여놓은 스토리를 마무리짓지 않은 채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극심한 내면 분열을 보여주며 막을 내려 시청자들의 찬반양론을 끌어내었다. 따라서 〈에반게리온〉의 실질적인 완결은 1997년에 개봉된 두 편의 극장판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감독은 〈에반게리온〉의 결말에 관해 생각하고 있던 바가 따로 있었고, 결국 2007년 9월 1일 일본에서 〈에반게리온-신극장판: 서(序)〉가 개봉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破)〉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급(急)〉,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등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에반게리온〉은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심지어 극장판 개봉(1997)때 일부러 일본여행을 떠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서〉가 결정되었다. 이것은 이 작품의 국내 개봉으로 이어졌고, 일부 극장체인에서 소규모로만 개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주 이상 롱런하며 7만 3천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최근에는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TV판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화(作畵)만 새로 했을 뿐 전체적인 줄거리는 과거의 장면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TV판 24화에 등장하던 캐릭터 나기사 카오루(渚カオル)를 초반부터 보여주는 등 일부 달라진 부분도 있다. 따라서 후속작을 통해 조금씩 다른 내용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지만, 1990년대를 종결짓는 의미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측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포스트모던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이 ‘세카이(世界)계’ 작품의 효시라는 견해가 많다. 몇몇 비평가들은 ‘세카이계’를 ‘에바계(エヴァ系)’라 할 정도였다. 세카이계란 애니메이션, 만화, 라이트노벨10대~20대를 대상으로 한 일본의 일러스트 소설 등의 스토리 유형 중 하나로, 주인공(나)과 히로인(너)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관계가 느닷없이 세계의 위기, 종말로 직결되는 작품군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세계의 운명이 주인공의 내면심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를 위해 등장인물의 트라우마를 부각시키며 그 극복여부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정해진다. 바로 주인공이 인식하는 ‘사회적 범주’가 ‘세계의 전부’인 것이다. 〈에반게리온〉은 그 전형이다. 이를테면 시토가 왜 세계를 공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주인공인 신지와 레이라는 식이다. 다른 예로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ほしのこえ)〉(2002)와 만화 〈최종병기 그녀(最終兵器 彼女)〉(2000~2001)를 꼽을 수 있다. 〈별의 목소리〉는 평범한 여중생이 UN우주군의 파일럿으로 갑작스레 선발되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최종병기 그녀〉 역시 홋카이도오(北海道) 시골 마을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수수께끼의 적이 나타나면서 주인공이 인간 병기로 변한다. 이렇게 〈에반게리온〉으로 인해 대두된 ‘세카이계’는 2000년대 일본 서브컬처(subculture)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에반게리온〉의 등장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일본의 사회적 평가에 변화가 생겼다. 물론 이전에도 1970년대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 1980년대 〈기동전사 건담(機動士ガンダム)〉이 각각 1, 2차 ‘아니메(アニメ)animation의 일본식 약어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본사회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것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달라진 것이다. 예컨대 만화를 학문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대학의 만화학과 개설 등)와 콘텐츠산업에 대한 일본정부의 주목을 그 사례로 들 수 있겠다. 물론 〈에반게리온〉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의 애니메이션 붐을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에반게리온〉이다. 말하자면 일본과 한국의 1990년대를 대변하는 문화 아이콘으로서 〈에반게리온〉의 존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