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공내전(國共內戰, 1946~1949)1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는 말을 듣고 내심 반가웠다. 광활한 대륙과 무한한 인력 그리고 자본력을 등에 업고 ‘중화(中華)’의 위용을 뽐내기 바쁜 최근 중국무협영화에 질려버린 탓일까. 게다가 국민국가 건설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양 세력의 최종적 승패를 결정지었던 국공내전을 영화화했다니, 그 내용이 더더욱 궁금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거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채, 언젠가부터 전쟁영화에 의례히 기대하게 되는 ‘탈정치적’ 휴머니즘의 애매한 굴레에서 〈집결호〉 또한 철저히 헤어나지 못한 듯했다. 감독 펑 샤오강(馮小剛)이 자신의 영화를 예술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로 구분하고 있는 바에야, 거기서 중국현대사의 질곡의 무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공내전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에 혁명의 역사성이 소거되는 상황은 문제적이지 않을까.

〈집결호〉는 인민해방군 제2야전군 139연대 9중대의 구 쯔띠(谷子地)장 한위(張涵于) 분 휘하 47명의 대원들을 중심으로, 1948년 치열했던 전장 화이하이(淮海)2를 무대로 전개된다. 이이서 영화는 한국전쟁을 거쳐 전쟁의 참화를 수습하고 신중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중화인민공화국 초기로 앵글을 옮겨, 구 쯔띠가 전쟁으로 겪어야 했던 비극적 삶을 조명한다. 역사적으로 국공내전은 정권 장악을 위한 국공 양당 간의 정치투쟁이었지만, 전쟁의 수행 과정과 결과는 동아시아 ‘국제전’적 양상을 띠었다. 중국국민당 뒤에는 미국의 막강한 지원이 있었고, 중국공산당이 전세를 역전하게 된 데에는 소련의 도움이 컸다. 내전의 승리로 공산당은 중국 대륙에서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고,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패퇴하였다. 이후 중국 대륙과 타이완은 미ㆍ소를 중심으로 양분된 냉전 진영에 각각 편입되었다. 이렇게 국가와 이데올로기가 냉전이라는 분절적 경계를 형성해가며 뒤얽히고 경합하고 또 충돌했던 갈등의 집결체가 바로 국공내전이었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이 서있는 ‘현장’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결정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구 쯔띠가 횡성에서 미군과 맞닥뜨리는 에피소드는 국제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실감케 하는 흥미로운 장면이었지만, 전반적으로 파편화된 개인의 서사에만 집중한 나머지 전쟁이 역사의 구조 속에 맞물리는 데 대한 통찰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중국현대사 해석의 주류적 틀이었던 ‘혁명사관’ 역시 이 영화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듯하다. 정작 9중대의 대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이유는 집결호(集結號)퇴각을 명령하는 나팔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단 한 사람이라도 싸워야 한다는 상부의 명령과,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구 쯔띠의 전우애는 수백, 수천 구의 국민당 병사들의 주검을 비껴간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만이 유효한 전쟁의 극단적 상황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영화는 잘 포착하고 있다. 굳이 그들이 ‘인민해방군’이라는 사실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이 〈집결호〉가 중국에서 전체 영화의 50~60% 가량을 차지하는 주선율(主旋律)사회주의적 윤리의식 등을 고취하는 영화 영화의 형식을 벗어났다고 평가되는 부분인 듯하다. 영화는 울리지도 않은 집결호를 분명히 들었다고 절규하던 대원들과, 자신이 집결호를 듣지 못해 대원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괴로워하며 사는 구 쯔띠의 모습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도구화되고 무력해진 개인의 나약함과 그들의 희생을 전면에 배치한다. 전쟁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과 전쟁의 와중에도 지속되는 일상성의 공존은 구조화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영웅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흥행대작들과 비교하면 〈집결호〉의 이런 시도는 인상적이다. 실제 전쟁의 보도사진을 보는 듯한 생생한 전장의 질감을 재현한 전반부를 지나, 영화의 후반부는 홀로 살아남은 구 쯔띠가 죄책감에서 구원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느린 걸음으로 쫓아간다. 주검으로 폐광 속에 파묻힌 부하들의 ‘잊혀진 이름(無名)’을 기억해야 한다는 그의 처절한 외침은 영화의 종반부에서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하지만 영화의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과정과 잊혀진 이름이 다시 기억되는 방식이 상투적일 만큼 익숙했기 때문이다. 구 쯔띠는 자신이 집결호를 듣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실은 집결호가 결코 울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공산당 전체의 안위를 위해 자신들이 사지로 내버려졌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로 오열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금세 잦아든다. 죽은 부대원들에게 ‘혁명열사’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구 쯔띠의 평생의 짐을 벗겨준 것이 다름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수여한 훈장)였다는 사실이 거북했던 건 나뿐이었을까. 국가적 위안으로 간편히 봉합되는 치유과정은 군인의 의무와 동료들의 생존 사이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 때문에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렸을 구 쯔띠의 고통에 비해 무척 간편해 보인다.

구 쯔띠가 대원들의 죽음의 의미를 기억하려고 했던 이유가 단지 자기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집결호가 결코 울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더 힘껏 울분을 토하고 저항했어야 옳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가 아닐까. 정작 중요한 것은 혁명을 위해 혹은 혁명의 이름으로 스러져 갔던 이들의 희생으로 사라졌어야 할 이 땅의 모순이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혁명이라는 구호 속에서 약동했던 ‘혁명적’ 개인들의 소박한 바람과 기대를 지금 살아있는 자들이 기억하고 더욱 분투해 실천하는 것일 게다. 혹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이 영화만큼 계몽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껏 공부해온 중국현대사의 족적은 그러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혁명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로 혁명의 역사성까지 부정해버리기 십상인 최근 중국현대사 연구의 흐름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