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갱스터>는 전형적인 갱스터물이지만 막가는 총격 씬도, 숨 가쁜 자동차 추격 씬도 없다. 대신 이 영화는 1970년대 초 할렘(Harlem)의 신흥 갱스터 두목 프랭크 루카스(Frank Lucas)덴젤 위싱턴 분와 부패에 휩쓸리지 않는 뉴저지(New Jersey)의 마약 담당 형사 리치 로버츠(Richie Roberts)러셀 크로우 분를 축으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변화’라는 사회학적 화두를 던진다.

  왕년의 할렘은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경제 시스템, 촘촘히 얽힌 네트워크를 통해 재화가 공급되고 돈이 돌고 안전이 보장되는 ‘인간적인’ 시스템이었다. 적어도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자였던 갱스터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지만 이런 할렘도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구석구석까지 들어서게 된 수퍼마켓과 맥도날드는 프랭크의 멘토(Mentor)조언자 또는 조력자이자 1960년대 뉴욕(New York)의 흑인 마약 대부 범피(Bumpy Johnson)로 하여금 할렘의 '상업화'를 한탄하게끔 만든다. 시장과 자본의 힘 앞에서 전통적인 갱스터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범피와 비교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매일 아침 5시 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프랭크는 훨씬 더 정교한 기업가적 의식의 소유자였다. 그런 프랭크에게 거대한 기회를 제공했던 것은 베트남전쟁(1960~1975)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사기의 군대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미군은 젊은 병사들의 의한 명령 불복종, 탈영, 심지어 집단 항명에 이르는 온갖 문제들을 앓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마약이었다. 마약과 섹스로 상징되는 1960년대 문화를 전쟁터에 그대로 가져왔던 병사들은 끝없는 전쟁을 마약으로 버텨내고 있었으며 전장 주변엔 마약생산이 횡횡하였다.
  프랭크는 직접 베트남으로 날아가 중간단계를 없앤 마약 생산자와 배급자 간의 직접 유통망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는 그렇게 들여온 헤로인(heroin)에 매직 블루(magic blue)라는 브랜드명까지 붙이고, 매직 블루의 순도를 낮춰 폭리를 취하는 마약판매상에겐 브랜드의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유통과 마케팅의 혁신을 바탕으로 싼 가격에 질 좋은 헤로인을 공급하게 된 프랭크는 바야흐로 이탈리아계 마피아(Mafia)를 제치고 뉴욕의 마약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한편, 자본가적 마인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프랭크와는 달리 정직함을 모토로 살아가는 형사 리치의 삶은 바닥을 긴다. 갱과 경찰 사이의 뒷거래가 관행이던 시대, 리치는 범죄자로부터 압류한 100만 달러를 한 푼도 안 떼고 경찰서에 넘겨 전설이 된다. 하지만 정직하게 열심히 일한 대가는 가난과 이혼뿐이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프랭크는 성대한 만찬을 열지만, 리치는 식빵에 통조림 참치를 으깨 넣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혁신적 갱스터 프랭크와 정직한 경찰 리치. 이 둘의 대결은 결국 리치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만 영화의 진수는 프랭크가 잡힌 후 심문과정을 다룬 마지막 20분에 있다. 둘 사이의 흥미진진한 대화는 미국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 그리고 그 변화의 움직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에서 뉴욕으로 올라와 갱스터계를 평정한 프랭크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했던 것은 흑인적 정체성이었다. 애초 프랭크가 생산지로부터 마약의 직접 조달을 꾀했던 것도 범피와 같은 할렘의 갱스터 두목조차 백인 마피아의 하위 파트너였다는, 즉 “백인을 위해 일했다”는 자각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이제는 저들이 나를 위해 일해”라 말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프랭크는 잡혀버린 것이다. 리치는 이 점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너같이 성공적인 흑인이? 너는 진보를 대변해. 그들의 세계를 박살내버릴 진보를. 네가 감옥에 처박혀야만 그들은 정상을 되찾을 수 있다고.” 겉으로는 복종적이지만 백인들이 얼마나 프랭크를 혐오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들이 법정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게 틀림없다며 리치는 프랭크를 설득한다. 리치가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유태인으로서 또 다른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흑인인 프랭크가 마약계를 평정했다는 리치의 보고는 “어떤 검둥이도 백인 마피아가 100년 동안 이뤄온 것을 성취하진 못한다”며 일축 당했고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카이크(kike)”유태인을 낮추어 부르는 속어라는 경멸뿐이었다.

  미국사회에서 인종적 편견의 대상이었다는 점이 공통분모로 작용해 이 둘은 결국 의기투합하게 되고, 뉴욕 마약계와 결탁한 부패경찰들을 일망타진한다. 무수한 장애를 극복한 두 사람의 승리이자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서는 뒷맛은 조금 다르다. 백인에게 속박당한 흑인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추수감사절이면 할렘 주민들에게 칠면조를 나눠주는 프랭크의 모습은 마약장사를 통해 같은 흑인들을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그의 폭력적인 모습과 겹쳐진다. 정직한 리치 역시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는 전혀 정직하지도 책임 있지도 않았음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부정의에 기초한 하나의 권력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그것은 항상 또 다른 억압과 부정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현실의 모든 변화란 게 언제나 연속성의 맥락에서만 파악될 수 있음을 씁쓸히 곱씹고 있었다. 너무 과도한 해석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