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버티고 있는 것인지. 자문의 순간마다 그 답이 왔다 갔다 하지만, 대체로 버티는 데 급급한 나의 일상을 꽤 살만한 것으로 착각하게 해주는 것은 잊을 만하면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생애 최고의 순간’ 덕분이다. 물론,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일 뿐이어서 그 행복감은 눈 깜빡할 새 사라져 버리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하루하루를 다시 맞이해야 하지만, 만약 이러한 ‘순간의 환각제’라도 없다면 그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또 어찌 버텨낼 수 있겠는가.

  아마 핸드볼만큼 이러한 ‘순간’과 ‘그 이후의 일상’ 간의 빠른 교체를 적절히 보여주는 스포츠는 없을 것이다. 한 골이라도 넣으면 거의 쇼에 가까운 세레머니로 그 기쁨을 길게 만끽하는 축구와 달리, 핸드볼은 빠른 공수 전환 탓에 그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수비라는 자신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순간의 기쁨도 잠시, 숨 가쁜 일상이 바로 공격해 오는 우리들의 삶처럼 말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여자 핸드볼 팀의 실화를 각색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바로 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낸 ‘아줌마’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공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어떠한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혼녀 혜경(김정은 분), 선수 시절 생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다 불임이 되어버린 정란(김지영 분), 사기 당한 남편 덕에 집까지 날리고 대형마트의 판매원으로 일해야 하는 미숙(문소리 분)의 사연은 단지 개인의 사연이 아닌 그 너머의 집합적 여성의 삶을 그려내면서 <우생순>을 스포츠영화이자 여성영화로 위치시킨다.

  그런데 지금까지 임순례 감독이 영화에서 여성이 아닌 비루한 남성을 중심에 두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에서 다소 예외적인 위치를 점한다. 그럼에도 <우생순>을 <세 친구>(1996)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주류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을 향하는 임순례 감독의 시선 때문이다. 국가대표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 중 하나인 핸드볼 선수에 불과한, 우승의 대가로 팀 해체를 선고받아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세 친구>의 막막한 청춘이자,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발가벗은 기타리스트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러한 면에서 <우생순>은 스포츠영화이자 여성영화이면서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자들에 대한 위로곡이다. 관객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삶의 노곤함을 위로받는 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감동한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최고의 순간 너머의 삶’에 대한 질문이다. 임순례 감독은 승부던지기에서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실존 인물의 인터뷰로 갑작스레 넘어가는 방식의 편집을 보여준다. 이 편집을 통해 임순례 감독은 영화 속 최고의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의 감동이 픽션이 아닌 실재로부터 비롯한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냉정한 현실이 제기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미숙을 향한 질문들, 미숙의 빚은, 미숙의 집은, 미숙의 남편은, 미숙의 아이는, 미숙의 직업은?

  <우생순>은 현실이 제기하는 문제를 섣불리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해결은커녕, 한국으로 돌아온 미숙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와 달리, 인물 각각의 사연이 올림픽 결승전이라는 최종목표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생생함을 유지하는 것은 <우생순>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즉, <우생순>은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을 안겨주면서도, 스포츠 경기를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르적 관습을 포기한 작품이다. 이는 현실을 벗어난 희망과 낙관이 허황된 메시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순간의 단맛을 뒤로하고 다시 냉정한 현실을 ‘버텨야’ 할 미숙을 통해 꿈을 실현한 순간마저 쓸쓸하기 그지없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평이한 구성과 밋밋한 경기 장면, 그리고 갑작스레 실화로 전환하는 영화의 엔딩 등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우생순>을 섣불리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단점을 흐릿하게 하는 소박한 감동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 너머 미숙이 감당해야 할 냉정한 현실 원칙의 무게감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생애 최고의 순간에도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해질 수밖에 없는, 가진 것도 빽도 없는 자들의 ‘순간의 아이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