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학 새내기 시절, 한국현대정치사 수업 시간에 5.18을 주제로 연극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조가 연극이라는 발표형식을 택했던 데는, 5.18의 아픔을 너무 심각하지 않게 다루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연극이 감동을 주게 되면 사람들이 5.18이 무엇인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2007년의 영화 <화려한 휴가>는 내 스무 살 때의 연극과 닮았다. 사람들이 5.18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보고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나는 지금껏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총탄에 피흘린 사람들, 도청 주위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찍힌 사진만을 기억할 뿐이다. 영화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재현했지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영화는 제목인 <화려한 휴가>가 무슨 뜻인지, 5.18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강경진압을 종용하는 군인을 보여줌으로써 배후세력을 암시할 뿐이고, “가만히 있는 개를 걷어차서 짖으면 매질해서 쓰러뜨리고, 시끄러운 걸 막아줬으니 나머지는 모두 말 잘 들으라는 격이지” 라는 신부의 대사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비유적으로 둘러갈 뿐이다.  

영화는 ‘가족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영화’라는 마케팅슬로건에 충실하게 가족애, 동료애, 이성애 등 인간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어, 5.18이라는 정치적인 사건이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를 보여준다. “평범한 광주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화려한 휴가>는 ‘평범한’ 시민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두색 포니택시가 초록빛 가로수길을 달리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소박한 운전기사 강민우(김상경 분), 세고비아기타를 갖고 싶어하는 고등학생 강진우(이준기 분), 카톨릭신자이자 간호사인 박신애(이요원 분), 군인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퇴역한 택시회사 사장 박흥수(안성기 분), 강민우의 직장동료이자 연애상담자인 인봉(박철민 분) 등의 삶을 평화롭게 그려낸다. 감독의 의도대로 ‘평범한’ 광주사람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시위대는 진정하라’는 멘트를 날리는 TV를 꺼버리고 연애상담에 골몰하는 그들은 뉴스보다 <전설의 고향>을 더 좋아한다.

영화의 목적이 정치적 사건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혹은 5.18을 이끌었던 사람이 지식인이 아니라 ‘평범한’ 광주사람들이었음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거대담론에 이끌린 역사인식에 대한 반발로 개인의 일상사를,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은 그리 생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파괴를 가족주의에 기대어 호소하는 <화려한 휴가>는 보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반면, 왜, 무엇을 위해 1980년 5월 광주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광주를 지키려고 했던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 영화는 자신의 결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던 영화는 마지막에 가면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 라고 외치며 죽는 민우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다. 민우의 죽음에 비장함보다 황당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동생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시민군이 되었다는 이 영화의 논리에서 보면, 오히려 “우리 동생을 살려 내” 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그들이 폭도가 아님을, 그들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폭도가 아니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말이다. 5.18을 기억해달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건 중 하나로 그 의미를 희석해 버린다.

영화가 끝나자, ‘마지막 장면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박신애의 호소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강민우, 박신애의 영혼결혼식 장면은 전체 영화와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오히려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해 버린다. 영혼결혼식 장면은 당시 광주시민군 대변인으로 활약하면서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사망한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1982년)을 모티프로 했다. 사진 속 박신애를 제외한 사람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지키다가 죽은 자들로, 자신들의 소임을 다 했다는 듯 행복한 표정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 박신애는 웃지 않는다. 신애의 슬픈 표정은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과 그 시대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카메라에 클로즈업된 신애의 얼굴, 그녀의 눈과 관객의 눈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감독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을 생각하게 한다.

5.18을 반성하고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화려한 휴가>는 구성 면에서 부족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젊은 세대들이 5.18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분명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구체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에는 그날 광주 도청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에 대한 파편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