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비평공간 / <b>영화</b>
HOME > 비평공간 / 영화
sub title
  보내지 못한 연서와 고통의 중추-소설<화장>과 영화<화장>을 중심으로
통권 : 51 / 년월 : 2015년 5,6월 / 조회수 : 2564

이수향

 

단언하건대, 만일 인간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는 결코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인간의 본질>>1)

 

김훈의 소설 <화장>은 병든 아내의 간호와 회사 업무에 지친 중년 남자의 괴롭고 허허로운 감정을 토로하는 이야기 혹은 건네지 못한 사랑의 말을 붙들고 괴로워하는 남자의 절절한 사연에 관한 이야기 그 사이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다. 김훈은 그 두 이야기 사이에서 육체와 영혼, 생명과 소멸, 사랑과 무정함, 일상과 환상 사이의 간극과 혼란을 묘사하고자 한다. 삶과 사랑에 대한 형용모순적인 언급들로 가득한 이 소설은 그 전해지지 못하는 감정과 사유들을 전하려고 한사코 애쓴다는 점에서 문학적이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3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2)(25.)

 

당신을 반복해서 부르는 오 상무의 태도는 결국 그가 사랑하는 대상이 추은주라는 개인인지, 아내와 대비되는 육체의 상징 자체인지, 아니면 초로에 들어선 사내가 자신의 젊음에게 보내는 회고적 언술인지 모호하게 한다. 게다가 이것은 전해지지 못하는 독백에 불과하다. 추은주는 이런 오 상무의 마음을 알 리 없다. 그러므로 둘 사이에 현실적으로 오갔던 연정 관계는 전혀 없다는 것만이 이 소설에서 주는 유일한 확실함이다.

 

오 상무는 추은주의 둥근 어깨’, ‘빗장뼈’, ‘가슴의 융기’, ‘머리타래등에서 그녀의 육체성을 느낀다.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그녀의 젖냄새와 자궁과 아기를 밀어낸 산도를 생각하고, 그녀의 팔에 푸른 정맥이 드러나는 반팔 블라우스에 괴로워한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오 상무의 시선은 살아있음 그 자체의 생명성에 있으나 이것이 그녀의 육체의 관능성과 전혀 무관한 것임도 아님을 보여주므로 혼란스럽다. 이 모호함과 감정적 동요에 빠진 중년 남자의 언술 뒤로 소설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장황할 정도로 묘사된 일상적 업무이다. 사랑에 빠진 젊은 나르시스트의 비탄이 그 청춘이 주는 알리바이로 아름답게 채색될 수 있다면, 나이든 유부남인 회사의 중역이 젊은 여성, 그것도 유부녀가 되는 여성을 사랑할 때 초라해지지 않는 방법은 현실적 감각을 겨우 유지하는 길일 것이다. 그의 고민이 실제의 현실이라는 강력한 차단벽에 맞닿아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김훈은 매우 정교하게 오 상무의 일상성을 배치한다. 그 사랑의 확실함과 전해지지 못하는 연정의 괴로움 사이에 있는 남자는 상상 속에서만 그녀에게 다가가 무수히 독백할 뿐 끝내 손을 내밀지 못한다.

아내의 2년여에 걸친 암투병과 그에 따른 육체의 소멸을 오 상무는 곁에서 지켜본다.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생물학적 육체를 묘사하는 태도는 대단히 쓸쓸하고 건조하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20)라고 담담히 말하는 그는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내의 장례절차 과정도 담담하게 제시되고, 오 상무에게서는 상실의 슬픔 대신 피로가 느껴진다. 오 상무의 이러한 태도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거나 남몰래 연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전립선염으로 비뇨기과 간호사의 건조한 손길에 의지해야만 배뇨가 되는 초로의 오 상무에게 육체의 소멸은 당도해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아내의 죽음은 애도해야 할 남의 일이 아니라, 머지않아 들이닥칠 미래에의 예견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고통은 기실 예민한 육체와 감각의 문제일 수 있다. 쇠잔해 가는 육체와 정념 사이의 오 상무는 그 고통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 간극을 김훈은 밀도 높은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임권택의 <화장>은 문학이 가진 그 모호함을 조금 걷어낸다. 오 상무는 여전히 추은주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서지 않지만, 그녀를 훔쳐보는 시선은 좀 더 적극적이다.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정물처럼 놓여있던 추은주의 캐릭터에 활기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홍보팀의 대리이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의지를 가진 여성이다. 오 상무의 시선을 눈치 채고 그에게 존경을 넘어선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므로 영화는 소설 속에서 1인칭의 독백적 사랑을 하던 오 상무에게 2인칭인 상대를 부딪치게 함으로써 새로운 구도를 만든다. 두 번째 변화는 소설에서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던 아내나 딸, 처제 등에 태도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거의 갈등 구조가 없는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중 첫 번째 변화는 둘의 관계 진전 여부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부까지 끌고 가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영화는 아내의 투병 과정에 대한 과거의 회상과 현재 상황인 아내의 장례과정을 메인 축으로 중간 중간 추은주를 떠올리는 오 상무의 시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내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가 제시될 때 관객은 오 상무를 관찰하게 된다. 병원과 장례식장은 암조의 조명과 클로즈업 된 배우의 얼굴에 섞인 피로, 낮은 채도의 톤 다운된 화면으로 처리되어 오 상무의 현실적 상황의 암울함을 잘 보여준다. 비뇨기과에 가서 꽉 찬 방광을 겨우 해소하는 장면에서는 클로즈업된 배우의 얼굴을 부감(bird's-eye view)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절제 속에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오 상무의 내면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강조하고 싶었던 시점 쇼트(point of view)는 오 상무의 시선과 일치한다. 추은주를 보는 오 상무의 연정은 비밀스럽기 때문에 관음증적이다. 회사에서 추은주를 보는 쇼트에서 프레임을 지배하는 것은 오 상무의 사무실에서 통유리의 밖을 보는 시선이다. 오 상무가 추은주를 볼 때, 그 시선을 가로막는 유리문과 화초들은 거리감을 조성하여 딥 포커스(deep focus)의 깊이감 있는 화면이 만들어진다. 나아가 화면적 깊이감은 그들의 현실적인 거리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러한 시선의 끝은 추은주의 가슴골과 허리라인을 깊숙이 클로즈업해서 묘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소설의 추상성을 영화해내는 것의 미묘한 지점을 보여준다. , 소설에서 직접적이지 않았던 오 상무의 시선이 영화에서의 그러한 연출로 다소 부담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는 작위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다. 클럽 회식 자리에서 추은주가 와인의 향을 중후하다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중후라는 의미를 오 상무와 연결시키려는 시퀀스와 별장에서 아내와 관계를 가지면서 추은주를 떠올리는 장면, 무용 공연수들 속에서 추은주를 잡으려는 오 상무의 꿈 등에서는 음악과 대사, 연출이 엇박자를 띠며 다소 올드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빛나는 부분은, 오 상무 앞에 놓인 여러 고통의 중추들, 모호한 감정들을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욕망과 회한 사이에 흔들리는 오 상무의 외로움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자신에 대한 그녀의 호감을 감지한 오 상무는 집으로 가려던 차를 돌려 다시 회식 자리로 향한다. 그러나 이미 모두들 다른 장소로 떠나버린 상태이고 오 상무는 실망하며 차를 돌린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얼핏 지나가는 추은주를 본 것 같아 오 상무는 허겁지겁 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흔적은 없고, 모텔과 술집과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을 후경으로 오 상무는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그가 진정 쫓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운 오 상무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카메라는 핸즈헬드의 흔들리는 화면과 슬로우 비디오로 그의 내면을 현시한다. 한 손엔 추은주가 준 와인병을 쥐고 다른 손엔 서류가방을 들고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이는 오 상무의 모습은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사회적 의장과 정념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주

1) 자키 피죠, 김선미 역, 몸의 시학, 동문선, 2005

2) 김훈 외, 2004 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화장 외, 문학사상, 2015, 25,

 

 




#저자 약력
이수향李壽䅨, 1981년 전남 고흥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수료, 2013년 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평론상 등단,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ardor1024@naver.com

글쓴이 : 이수향
작성일 : 2015/05/14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