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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여기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렇죠?’
통권 : 47 / 년월 : 2014년 9,10월 / 조회수 : 1659
영화 <블랙딜>(7월 3일 개봉)

자본은 무언가를 팔고 사거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거짓 가치(금융자본)를 부풀려 팔아먹는 지경에까지 왔으니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자본의 천국에 살고 있다. 너무나도 흔한 것이라 있는 듯 없는 듯 관리되어 오던 공공재는 어떠한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나누고, 온전히 보존해야 할 우리들의 자산은 자본의 생존을 위한 도구이자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한 시장일 뿐이었다. 자본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노다지였던 공공재. 그 사이 자본의 흉계는 정치권력과의 검은 거래를 가져왔다. 더 큰 물건을 잡기 위한 사소하면서도 은밀한 배팅은 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결과는 참혹했고 도돌이표는 좀 더 격한 현실로의 추락을 가져왔다. TV 시사 다큐에서 다루어 봄직하고 언젠가는 봤음직한 아이템이라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보통의 시사다큐는 폭로의 센세이셔널은 확보했지만 곧바로 차갑게 식은 냉소들로 이어지곤 했다.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나? 하는 체념만을 양산시켰다. 언제나 넘치게 흘러나오는 ‘TV의 진실’들은 가벼이 수렴되었고 빠르게 잊혀갔다. 하지만 전 세계 순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폭로와 냉소의 반복재생의 한 지점에서 당신의 공공재는 안녕하냐고 질문하고 행동의 폭을 넓혀주는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훈규 감독의 <블랙딜>이다.

지금 이곳, 공공재에 대한 자본의 사유화는 200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주요 핵심 중 하나였다. 정치권력은 자본이 제공한 논리로 자신들의 치적을 장식해갔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 보수정권은 이런 자본의 유혹에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해갔다. 공공재 모든 영역에서 사유화라는 프로세스는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조직된 노동자들의 저항과 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사유화의 전쟁 한복판에서 <블랙딜>은 예상을 빗나가는 선택을 한다. 카메라의 시선을 해외로 돌린다. 전 세계 7개국에서 벌어졌던 사유화의 역사와 민중에게 미친 그 결과, 그리고 이것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영국과 일본의 철도 사유화 진행과정과 참혹하고도 처연한 결과는 지금 당장 우리의 철도 현실과 연결된다. 남미 칠레의 국민연금과 교육사유화 문제는 우리들의 불안정한 민주주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넉살 좋은 프랑스 자본가의 검은 거래에 대한 증언은 블랙딜의 실체를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수시로 전기가 끊기고 이를 해결하라는 시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아르헨티나. 신도림역 지옥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이곳의 지하철은 비현실적인 현실감으로 낯설게, 하지만 절실하게 사유화의 그 끝을 보여준다. 결과는 서늘하다. 201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온세역에서 발생했던 참혹한 사고는 본능적으로 우리들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언뜻 보면 사유화의 잔혹기를 나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전략은 당장의 우리 편 이야기를 실어 나르기 바쁜 독립다큐멘터리의 화법을 뛰어넘는다. 망원 렌즈의 화각을 넘어 더 크고 와이드하게 줌 아웃된 화각으로 전 세계의 시공간을 연결시키고 탐욕스러운 자본의 사유화를 저지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실천과 저항의 방법들을 소개한다.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과 권력의 탐욕의 지도를 한 땀 한 땀 그려내는 감독의 의지는 일관되게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여기에 정태춘이라는 시대의 예술가는 목소리로 감독의 의지를 전달한다. 천상에나 존재할 거 같은 유명 배우의 매끈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이곳 남성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또 다른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사유화의 과거, 현실을 쫓던 <블랙딜>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지금 이 곳의 사유화에 대해 경고한다. 내년에 있을 세계 물 포럼을 앞두고 열린 사전 세미나에는 전 세계 유수의(?) 물 사업자들이 참여했다. ‘국가개조’, ‘규제개혁’이라는 깃발을 꽂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던지고 있다.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의료사유화와 알짜배기 수서발 KTX를 매각하는 비상식적인 경영을 하겠다는 정권. 이뿐인가. 흑자를 남기던 인천공항에 대한 매각의지를 굽히지 않는 정권이다. 이명박 때부터 이어져오던 물 사유화 징후에 대한 <블랙딜>의 경고는 섬뜩하다. <블랙딜>은 하지만 이런 잔혹한 현실의 나열함에서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터뷰이들의 ‘이것은 여기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그렇죠?’라는 감독에게 하는 질문은 전 세계 ‘자본의 사유화’에 대한 지도 그리기를 마친 감독의 생각을 거쳐 또 다른 질문으로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 모든 것의 ‘소비자’이자 후대를 위한 온존한 보존의 책무를 지닌 ‘시민’인, 지금 우리들의 ‘망각’, ‘이건 여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문제가 아닌가요?’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시위를 하던 아르헨티나 시민이 ‘단지 전기!’라고 이야기하는 비참함이 오기 전, 자본과 권력의 사유화 이면에 있는 검은 거래를 저지하기 위한 저항의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블랙딜>은 독일의 시민투표를 통한 공공재 매각 결정이라는 참여의 제도적 보장 사례를 보여주고, 독재자의 딸과 민주화의 성과를 이어받은 여성이 격돌한 칠레 대통령 선거를 이야기한다. 선거에 임하는 칠레의 두 인물은 보장된 각자의 선택에 대해 적극적이다. 절반을 밑도는 투표율에 민중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는 정치적 쇼로 전락한 이곳의 투표행태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제도적 장치와 적극적인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감독은 하지만 그것만이 꼭 대안일 수 있겠느냐를 묻는다. 찬반의 격돌 속에 겨우 50%를 넘어 위기를 건너가야 하는 독일의 경우와 단 두 개의 선택지에서 결국 아무에게도 투표하지 않고 투표장을 나왔던 칠레의 한 대학생의 결정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말이다. 칠레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며 실루엣 처리된 개표 날의 표정을 그린 감독의 물음은 투표를 거부한 대학생의 메시지로 영화의 끝을 맺는다.

“한국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제가 한국인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에서 민영화가 이뤄지지 않도록 싸우시기 바란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런 민영화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계획하시고, 참여하시고, 거리에 나오시고, 여러분의 불만을 표출하시고, 민영화를 저지하십시오. 만약 민영화가 이뤄진다면 우리가 얻는 것이라고는 사회 불평등뿐입니다.”

지구 반대편 한 젊은이의 근심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곳의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며 <블랙딜>은 끝을 맺는다. ‘망각’을 극복하고 사유화를 저지하기 위한 갈 길. 멀고 험해 보이지만 <블랙딜>을 통해 방향은 명확해진다. (<블랙딜>의 이훈규 감독은 좀 더 농밀한 자본과 정치권력의 블랙딜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저자 약력
태준식 1971년 춘천 생. 다큐멘터리 감독. <당신과 나의 전쟁>, <어머니>, <슬기로운 해법> 등 연출. raul.tae@gmail.com.
글쓴이 : 태준식
작성일 : 20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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