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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왜 사극인가?
통권 : 47 / 년월 : 2014년 9,10월 / 조회수 : 2386
- 사극영화 열풍에 대하여

1. 시대정신 - 역사의 반복성

지금 왜 많은 대형 사극이 등장할까? 산업적인 동기로는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대기업의 목표에 사극이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볼거리가 많은 사극은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 적합하고, 요즘은 특수효과가 대세이기 때문에 그러한 작업에는 딱이다. 하지만 산업적인 이윤 추구 동기 외에도 다른 측면에서의 사극 제작 열풍은 역사 소재 자체가 주는 서사의 힘에서 온다. 흥미롭다는 측면에서의 역사 이야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정통사극 외에도 판타지 사극, 퓨전 사극, 팩션 사극 등 흥미로운 사극의 종류가 한두 개가 아니어서, 그 응용이 폭이 넓은 편이다.

그러나 산업이나 이야기 측면보다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역사물이 비록 과거의 내용이지만 바로 지금 여기의 현실성을 반영한다는 그 점이다. 그런 식으로 재미 본 사극 중 대표적인 것이 <관상>, <광해> 등이다. 올해 들어 유행하고 있는 사극의 열풍은 바로 그 영화들의 뒤를 이어받는 트렌드일 것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과 직후에 왕을 소재로 한 <나는 왕이로소이다>, <광해>, <관상>등의 사극이 등장했다. 사극을 통해 왕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대선에 관심이 쏠려 있던 민심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사를 구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심이 있어야 영화를 보고, 그 안에 자신의 흥미를 끌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영화를 본다는 논리가 영화판에는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사극을 통해 현재를 말하는 것이 그리 틀린 공식은 아닐 것이다.

2014년 가장 먼저 개봉한 사극은 <조선미녀 삼총사>였고,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네 편의 영화 <역린>, <군도 :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명량>,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이 뒤를 이었다. 현실을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이들 영화들의 주제는 현재 한국 관객들이 느끼는 보편적 공감대를 표출한다.

 

 

2. 영원한 꿈같은 정치개혁

지난 대선 이후 정권교체가 일어났지만 여전히 정치적 불안정은 국민들의 가슴속에 혼란으로 심어져 있다. 정치권에서만 있어야 할 여야 정쟁, 보수·진보의 갈등, 국론 분열은 국민 모두에게 대한민국을 두 개로 쪼개는 역할을 한다. 정조의 즉위 초를 그린 <역린>에서 정조는 노론의 습격을 받으며 위기에 몰린다. 여소야대 정국을 상징하는 듯한 이러한 설정은 과거 노무현 정권의 그림자를 길게 물고 들어온다. 노론을 막아낼 힘이 없는 정조는 위기에 몰리지만, 그와 우정을 같이한 밀정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관객들은 과거 노무현이 탄핵을 받으며 대통령 직무정지를 받기도 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 개혁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하는 이상적인 소망도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반군의 장군을 찾아가 담판을 짓고, 군대를 자신의 수하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정조는 왕이 된 다음 날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도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하게 밝혔는데, 그건 당시의 흐름을 벗어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그는 노론의 타깃이 되어 그 역시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는 게 빤한 이치인데도, 그가 정체성 선언을 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부조리의 온상을 소탕하는 자리에서 두목은 정조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은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목을 베는 정조는 작은 악이든 큰 악이든 자신의 일을 분명히 할 것이라는 자세를 보인다. 2014년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한국의 정치가들은 어떠한가. 대통령을 바꾸는 큰일에만 신경을 쓸 뿐 작은 민생에는 관심이 없다. <역린>에서 정조가 보여주는 주제는 현재 한국의 국민들이 불만으로 생각하는 관념, 즉 왜 정치가들은 민생을 소홀히 하는가에 대한 불만을 공감시키는 요소를 담고 있다. 정조는 힘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고, 힘이 생기면 반드시 부조리를 척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정의로 내세운다. 그러한 개혁적이고 강단 있는 주제는 바로 국민이 바라지만, 현재 한국정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꿈같은 정치개혁의 열망인 것이다.

 

   

3. 소환된 영웅

가라앉은 세월호가 한국에게 가르쳐준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총체적 부조리에 뒤덮여 있다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여러 형태의 마피아들과 부도덕으로 인해 서민들과 힘없는 사람들(여자,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인, 극빈자)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억울하게 희생되며 죄를 뒤집어쓰기도 하는 등 고통을 당할 것이란 사실이다. 위험하게도 백척간두에 서 있는 한국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우울증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이런 울컥하는 상황에서 마침 때 맞춰 출전한 <명량>은 전대미문의 스크린 상영 횟수 독과점과 관객들의 우울증 심리를 완벽하게 조율하였다. 마치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준 격으로, 과거의 이순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훈적인 이순신 이야기를 최대의 관객 동원으로 보답하였다. 최근 우익화 성향을 보이는 일본 아베 정권의 영향도 배가하여 크게 작용한 결과다. <명량>은 책임지지 않는 선장 대신에 책임지는 리더가 존재하고, 일본에 의해 기죽어 있고 분노해 있는 국민감정에 통쾌한 복수의 펀치를 날리는 장면들로 성공하였다. 영웅을 만드는 건 시대라는 의미가 실감 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4. 한의 축적과 풀이로서의 서민

영웅의 동일시만 가능한 게 아니라, 반 영웅적인 전복적 쾌락도 있다. <군도>와 <해적>이 보여주는 의적의 세계는 정치권에 의해 농락당하고 억울해진 서민들의 마음을 한풀이하는 정서와 부합한다. 홍길동과 임꺽정을 합친 두 인물의 활약을 그린 <군도>는 철종 때의 진주 민란을 소재로 하고 있으나, 팩션의 성격을 갖고 있다. 태조 이성계의 건국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래가 삼킨 국새를 쫓는 판타지 사극의 영화 <해적> 역시 정사를 배경으로만 깔고 있을 뿐, 영화는 그저 스펙터클과 코믹 상황만을 연출하며 역사를 비껴서고 있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의 북벌과 관련된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적인 원한관계를 풀어헤치는 이야기로 전개한 <조선미녀 삼총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팩션이면서 공통적으로 이들 영화들이 갖고 있는 주제는 권력과 부패에 상처받고 억울해하는 서민들의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들이다. 백정으로나 서얼로나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 서민의 저항은 의적의 형태로 나타난다. 정치가와 관료들의 부패와 전횡으로 인해 국민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많은 국가적 재난에 직면하면서 2014년의 서민들은 이런 영화들의 정서에 고무 받고, 우울해 있던 정서를 조금이나마 치유 받는다.

 

   

5. 역사적 무의식

산업의 동기는 불순하다 하지만, 여하튼 역사 소재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메가폭탄임엔 분명하다. 영화는 작품의 완성도에서만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측면에서 특히 공감대를 형성한다. 2010년대 관객들의 정서적 바탕은 불안정하고 분열적이기까지 하다. 허탈하고 우울함이 전반적으로 엄습한다. 이런 극도로 병적인 상태에 놓인 관객들은 오락으로 치유되기를 기원한다.

그 답이 블록버스터 대형 사극이라면 표면적으로 나쁘진 않으나, 역사가 산업의 용도 안에서 명확한 한계를 보이므로 아쉽긴 하다. 역사 속 인물의 의식을 통한 역사영화는 역사적, 보편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좋은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시류에만 편승한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올해 개봉한 5편의 대형 사극들은 다소 식상할 정도의 서사를 통해 관객의 비판을 받을 상황이 되긴 했다. 대신 시대상황으로 인해 우울한 관객들이 치유 받는 효과를 통해 각자 삶에 위안이 되었다면, 종합적으로 볼 때 사극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점보다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사극은 어쩌면 한국문화의 원형을 듬뿍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서부극, 공상과학, 영국의 공포스릴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자 약력
鄭在亨 1960년 대전 생. 영화평론가. 동국대영화영상학과 교수, 최근 저서로 『영화 이해의 길잡이』,『MT영화학』 등. jhjung@dgu.ac.kr

글쓴이 : 정재형
작성일 : 20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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