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n Menu Body
플랫폼
웹진 검색하기          상세검색

 비평공간 / <b>영화</b>
HOME > 비평공간 / 영화
sub title
  <변호인>,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
통권 : 43 / 년월 : 2014년 1,2월 / 조회수 : 2199
영화 <변호인> (양우석 감독, 12월 18일 개봉)

그럴 때가 종종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에 대해 곰곰이 따지고 분석하는 것보다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 영화를 통해 나를, 나의 삶과 생각과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를 만날 때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어렵지만, 그런 영화를 본 날은 기쁘기도 하지만 쓸쓸하기도 하다. 기쁜 것은 영화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내 삶을 분석하고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고, 쓸쓸한 것은 대부분 그런 영화는 내 삶의 아픈 곳을 강하게 후벼
파기 때문이다.
<변호인>을 본 날이 그러했다. 그날 나는 극장 문을 나서면서부터 먹먹했고, 집에 도착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써야 할 원고가 밀려 있고, 다음날 강의 준비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명색이 영화를 보는 것이 업인데, 그래서 수많은 영화를 보아왔고, 본 영화를 분석하고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인데,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변호인>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영화는 그냥 극장에 가서 마음을 열고 관람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영화가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변호인>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였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의 시작 부분은 코미디적 요소가 강하다. 송강호는 코미디 연기가 강한 배우 아닌가? 그가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넘버3>나 그의 첫 주연작 <반칙왕> 모두 코미디영화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영화의 숱한 명장면들. <변호인>의 초반부는 송강호의 그런 힘에 기대어 코미디적 요소가 강하게 살아있다. 부산에 처음 발을 디딘 변호사의 좌충우돌 생존기. 오해와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며 돈을 잘 버는 변호사가 되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정색을 하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진행한다. 부동산 등기 변호사로 돈을 번 송우석 변호사는 바닷가의 아파트에 가, 주인에게 그 집을 사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매물로 나온 아랫집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매매하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공사판에서 일하며 고시 공부를 할 때 그는 지쳐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 때 첫 아들이 태어났다. 병원에서 첫 아들을 본 그는 헌책방에 가 낮에 판 책을 다시 사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시절 그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며 새겨 둔 글귀, “절대 포기하지 말자”가 있는 집이 바로 그 집이었다. 바야흐로 송우석은 꿈을 이룬 것이다.

이 부분은 송우석의 인생역정을 증명한다. 그는 가난한 시골에서 도시로 와 고시 공부를 하다가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고 깊이 고민했다. 공사판에 떠돌면서 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싶었을때 아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기억은, 가난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결혼하고 자식 낳아 기르며 살아온 가장이라면 대부분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켜켜이 쌓여있는 자신만의 아픔. 나는 이 부분부터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가장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분명 ‘위대한’일이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남자가 가정을 일구어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숱한 욕을 먹으며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과정의 연속이다. 그 고단함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 홀로 삭히며 살아가야 하는 쓸쓸함이다. 송우석 역시 그러했다. 고졸 출신의 변호사인 그가 느꼈던 소외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변호사회 모임에서 이미 서로들 알고 있는, 아마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의 변호사들끼리 송우석에 대해 험담을 한다. 변호사가 부동산 등기로 돈을 벌고 있다고. “문디 새끼”라며. 그 자리에서 앉아있던 송우석은 말한다. 수입이 괜찮다고. 상고 동기들 모임에서 그는 말한다. 고졸 출신의 자신을 아무도 끼워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이 악물고 돈을 벌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의 콤플렉스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이 부분이 존재하기에 후반부, 송우석의 고뇌가 더 깊이 다가온다. 7년 전 국밥집에서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갔던 그를 푸근히 감싸주었던 주인아주머니의 착하디착한 아들이 시국 사범으로 몰려 공산 혁명을 꿈꾸는 간첩이 되었을 때, 송우석은 기어이 변호인이 된다. 돈만 밝히던 세법 변호사가 확, 바뀐 것이다. 이미 틀을 짜 놓고 재판을 벌이는데 송우석은 사건이 각본에 의해 짜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무죄를 강하게 주장한다. 검사 측도 도저히 그를 어떻게 하기 어렵다. 이제 그의 콤플렉스는 긍정의 힘이 되었다. 고졸이기 때문에 연줄이 없고, 연줄이 없기 때문에 판사와 검사 앞에서 자유롭게 할 말을 다 할 수 있다.
다급해진 권력층은 그를 회유하고 포섭하려 한다. 사무실 앞에는 아예 검은 차가 대기하며 감시하고, 우익 세력들이 재판장 앞에서 그에게 계란을 던지고, 재판장에서는 동원된 세력들이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낸다. 그러나 어떤 것도 그를 흔들지 못한다. 그는 무죄라고 생각되면 무죄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 변호인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그에게 이상한 얘기를 한다. 누군가 전화로 아들의 신상정보를 세세히 묻더라는 것이다. 권력층이 아이에게까지 손을 대려는 것. 학교를 통해 아들에게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고, 기관에서 아들을 직접 손댈 수도 있는 1981년의 그 엄혹한 시절에, 송우석은 잠시 흔들리지만, 곧 자신의 길을 간다.
역설적이지만, 피곤하고 힘들고 괴롭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시국 사건을 맡으면서 거대 건설사의 상속 사건을 맡지 않으니, 사무장이 그에게 말한다.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잡아 찬기다”라고. 송우석 변호사가 답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민주화된 좋은 세상이 와야 되지 않겠냐고. 그는 자신만의 아들과 자신만의 영화를 누리기보다 이 땅의 자식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영화는 본격적인 재판 영화가 된다. 총 다섯 번의 공판의 재현 또는 기록. 잘못 촬영하면 지루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감독은 각 공판 과정을 다르게 촬영하면서 긴장감을 잃지 않고 리듬감도 살려낸다. 첫 공판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패기 있는 송우석의 모습이 보이고, 두번째 공판에서는 상황 파악을 확실히 한 그가 힘을 다해 변호를 하고, 세 번째 공판에서는 이미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네 번째 공판에서는 송강호가 거의 원맨쇼를 하듯이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하고, 다섯 번째 공판에서는 마무리하듯 조용하지만 힘 있게 주장한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다섯 공판을 감독은 상황을 달리하며 조율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변호인>의 힘은 배우 송강호와 양우석 감독의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1980년대를 스크린 속에 복원하려고 노력한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고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곽도원, 오달수, 김영애 등 조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볼만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말한 것처럼, <변호인>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장단점을 따지기보다 편한 마음으로 그저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길 권한다. <변호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보기만 하면 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따지는 것은 호사가들이나 하는 일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이의 마음이 따뜻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세상의 변혁을 외치던 이들이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치여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 상황에서도 가끔 스스로 위로하며 안위 속에 빠져 있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우리에게 <변호인>은 강하게 뺨을 때리듯이 묻는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당신자식에게도 이런 삶을 물려주고 싶냐고?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저자 약력
姜聲律
1970년 경북 안동 생. 영화평론가.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저서로『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 영화는 역사다』,『 친일 영화의 해부학』,『 감독들 12』 등이 있다.
rosebud70@hanmail.net
글쓴이 : 강성률
작성일 : 2014/01/03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