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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독점, 문화 다양성의 걸림돌
통권 : 40 / 년월 : 2013년 7,8월 / 조회수 : 2501

 

 여기 이상한 두 풍경이 있다. 첫째 풍경은 지난 4월 28일 일요일 극장가의 모습인데, 개봉 첫 주말을 맞은 <아이언맨3>가 무려 1,380개의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관객점유율 83.8%를 달성한 것. 스크린 점유율은 35%였다. 둘째 풍경은 지난 6월 9일 일요일 극장가의 모습인데, 개봉 첫 주말을 맞은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1,310개의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관객점유율 68.5%를 달성한 것. 스크린 점유율은 32.6%였다.

 

 

 이 두 풍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돈을 내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 뭐가 이상하냐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겠으니, 그 시간에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나 만들라고 호통을 칠 것인가? 그 증거로 스크린 점유율은 35% 내외이지만 관객 점유율은 80%를 넘기거나 70% 정도이니, 즉 스크린 점유율 대비 관객 점유율이 몇 배는 높으니 관객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더 나아가, 특정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쏠림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이제 와서 웬 호들갑이냐고 할 것인가?

 혹시 존재할지도 모르는,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먼저 정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통계는 자주 착시 효과를 불러온다. 스크린 점유율 35%라는 것이 바로 착시효과의 전형이다. 현재 전국의 전체 스크린 수는 2,400개 내외이다. 이 가운데 <아이언맨3>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차지한 스크린 수는 1,300개를 넘었다. 이 숫자라면 58% 정도 되는 스크린 점유율이다. 그런데 어떻게 30%대의 점유율이 나올 수 있었을까? 여기에 허점이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이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 즉, 특정 스크린으로 영화를 상영하면서 좋은 시간대는 <아이언맨3>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에게 내주었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설명을 하면, 아침 시간이나 늦은 저녁 시간 같은, 관객이 잘 찾지 않는 시간대는 다른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이 선호하는 오후 시간대에는 대부분 두 영화를 상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크린 점유율은 30%대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 스크린 점유율은 50%를 넘는 것이다.

 방금 나는, 나도 몰래 “스크린 점유율은 30%대 밖에 되지 않지만”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비교를 위해 사용했다. 그런데 스크린 점유율 30%대가 정말 정상적인 상태인지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전국에 있는 스크린의 30% 이상을 특정 영화가 점유한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결코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천국’이며, ‘할리우드 영화의 천국’이라고 흔히들 생각하는 미국에서도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일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아이언맨3>가 관객 점유율 84%를 차지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쉽게 이야기하면, 특정 요일 영화를 본 이들 100명 가운데 84명이 같은 영화인 <아이언맨3>를 봤다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어떻게 여기서 발생한 것일까? 한국 영화로 국한해도, 특정 요일 영화를 본 이들 100명 가운데 69명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봤다는 것 아닌가? 과연 이런 쏠림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가?

 먼저 이야기할 것은, 스크린 독점과 관객 점유율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형편없는 영화를 극장에, 무조건 오랫동안, 좋은 시간대에 걸려 놓는다고 관객이 몰리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볼 만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정도의 영화는 대부분 일정 수준을 갖춘 영화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영화만 관객들과 만나도록 창구를 열어놓으면 다른 영화는 자연스럽게 사장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가진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거나 우리의 대기업이 투자해서 배급하는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규모의 경제학’에 치우친, 볼거리 위주의 영화들이다. 화려한 스타를 기용하고, 엄청난 스펙터클을 전시하며,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로버트 다우어 주니어Robert Downey Jr., 윌 스미스Will Smith, 아놀드 슈왈츠 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브래트 피트Brad Pitt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괜히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한국영화 시장은 전 세계에서 7위권 안에 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어 배급 시장을 장악하면, 그렇지 못한 작은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지금 우리 시장에서 배급을 하는 씨제이CJ와 롯데 같은 대기업 계열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투자, 배급, 상영의 순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롯데에서 투자한 영화를 롯데에서 배급하고 다시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한다는 이야기다. 같은 이치로 씨제이에서 투자한 영화를 씨제이에서 배급하고 다시 씨지브이CGV에서 상영한다. 요즘은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아예 감독과 직접 만나 제작까지 한다. 감히 ‘자본주의의 신천지’ 미국에서도 꿈꾸지 못하는, 상영까지 갖춘 완벽한 시스템. 이렇게 되면 대기업 계열의 회사에서 투자하지 않거나 배급하지 않은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될 원천적 기회마저 잃게 된다. 그런데 거대 기업의 계열사들은 철저하게 손익을 우선하기 때문에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영화들, 또는 예술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들에 투자를 할 확률은 높지 않다. 결국 고만고만한 상업 영화들이 탄생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여기서 잠시 퀴즈를 내보자.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의 영화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멀리 갈 것 없이 2013년 5월 통계를 보면, 미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66.6%,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30.5%로, 두 개를 합하면 무려 97.1%나 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한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 외에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 영화, 아시아 영화도 설 자리가 없는데, 아프리카, 남미의 영화가 설 자리가 있겠는가?

 

 

 

 특정 영화가 극장가를 장악하면 다른 영화는 사장되거나 외면 받는 것이 이치이다. 이렇게 특정 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하면 한국의 영화 문화는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상업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규모가 큰 영화에 대부분의 관객이 몰리면, 제작사나 투자사가 이런 유형의 영화만 선택하게 되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결국 영화의 다양성을 되살리는 길은 그만큼 요원해지는 것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런 상황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지금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영화는 흔히 문화라고 한다. 이 말이 맞는다면, 지금 우리의 영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편식도 이렇게 지독한 편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지독할 만큼 자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만 상영하고 관람하는데, 어떻게 다양성이 살아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미국과 미국 문화, 미국인의 생활상을 영화를 통해 안다면, 우리는 미국 외의 외국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고 해야 한다. 심지어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 나라의 지형과 종교, 음식과 기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고 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화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점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권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자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면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 보자. 멀티플렉스가 무엇인가? 다양한 영화를 한 공간에서 관람하기 위해 만든 영화관 아닌가? 그런데 멀티플렉스의 많은 관을 한 영화가 독점할 거라면, 왜 단관을 허물고 굳이 멀티플렉스를 만들었는가? 지금 뒤돌아보면 이 역시 자본의 달콤한 유언비어에 속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말이 많아졌다. 누구나 지금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갈수록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제도적 보완밖에 없다. 먼저 특정 영화가 스크린 점유율 20%를 넘길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또는 특정 영화가 스크린 500개 이상을 차지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10개 이상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는 반드시 1개 이상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것이 문화를 통해 정신적 풍요를 얻는 길이고, 이 길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의 삶에 찌들어 살아가면서 점점 더 우리는 독점과 편중 문화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바로, 지금,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경제동물 또는 경쟁동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원한 ‘피로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저자 약력
姜聲律 1970년 경북 안동 생. 영화평론가.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저서로 『하길종 혹은 행진했던 영화 바보』, 『한국영화, 중독과 해독』, 『영화는 역사다』, 『친일 영화의 해부학』, 『감독들 12』 등이 있다.
rosebud70@hanmail.net

#주석
이미지 제공_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아이언맨3> 공식홈페이지
글쓴이 : 강성률
작성일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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