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들어서자, 낯선 광경에 눈길이 멈춘다. 객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드럼, 기타 앰프, 키보드, 작은 마이크 단상들이 원을 이루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악기 원(圓) 안에 1인용 간이 의자 네댓 개가 오붓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 또한, 얼추 사오십 석 정도 의자들이 자유롭게 모둠 지어 있다. 늘 익숙했던, 객석과 무대의 경계는 없었다. 어쩌면 낯설기도, 그래서 조금 불편하기도 한 설정은 6월 6일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린, <웬즈데이 프로젝트 Vol. 1-최고은, 호흡의 원근법>의 다섯 번째 무대 모습이다.

 웬즈데이 프로젝트는 KT&G 상상마당이 기획한 인디 뮤지션(밴드) 지원프로그램이다.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밴드나 아티스트를 선정, 다각적인 지원과 함께 장기 공연의 기회까지 제공한다. 연습실, 공연장은 물론, 홍보비, 제작비 관련 지원까지 공연을 위한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음악 시도 또한 과감히 수용,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최대한 배려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부분이다. 예컨대 최고은의 공연처럼 실험성이 강한 기획 등은 상업공연장 대관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웬즈데이 프로젝트의 첫 선정 아티스트가 바로 최고은이다. 그는 지난 5월 9일부터, 매주 수요일 총 일곱 번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공연은 다섯 번째 공연으로, 일렉트로닉을 주제로 로다운30과 DJ안과장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6시가 조금 지나, 로다운30, 윤병주의 묵직한 기타와 보컬이 일품인 <고잉다운블루스>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사실 최고은은 낯설다. 2010년 EP <36.5℃>를 발표한 후 대중에게 알려져 있던 건, 국악 공부를 했다는 것, 대학 동아리에서 하드코어 밴드의 보컬로 음악을 시작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2011년 앨범 <굿모닝(Good Morning)>을 발표하면서 그녀는 활동 반경을 조금씩 넓히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무렵이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드러난 시점으로 볼 수 있겠다. EBS 헬로 루키, 현대카드 MUSIC 인디뮤직 아티스트 줌인의 첫 아티스트 선정 등에서 잠재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고은이 수면으로 떠오르며, 그녀가 갖고 있는 묘한 아우라 역시 드러난다. 원래 그렇게 존재했던 아티스트와 같은 그런 느낌. 아마도 탄탄한 음악적 역량과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대중과 결합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로다운30에 이어, 두 번째 게스트 DJ안과장 밴드가 등장했다. <랍스타>는 일렉트로닉과는 거리가 있으나, 자유분방한 DJ안과장의 성향이 돋보이는 곡이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공연 중 최고은의 BGM 성격의 스캣(scat)을 즉석에서 샘플링해 음악적 요소로 발전시킨 부분이다.

 공연 내내, 소격효과가 떠올랐다. 관객은 어떤 괴리를 느껴야 했을까.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무너뜨린 이 상황에서. 최고은은 쉬운 말로 “그냥 밴드들의 공연을 바로 옆에서 마음대로 편하게 봤으면 한다”며 둘러댔지만, 한편 하나의 맥락으로 읽히고픈 속내도 느껴진다. 7회의 공연 중, 3회(3, 6, 7차)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채 진행된다. 소격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분리의 자각 속에서 관객은 최고은이 선사하는 일종의 ‘안도’를 경험한다. 반전이랄까, 파격이 갖는 불편함과 어색함 속에서 그녀의 음악, 최고은이라는 아티스트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지점이 호흡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이번 시리즈의 의도가 아닐까.

 <호흡의 원근법>은 전반적으로 최고은과 결합하여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획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재능을 갖고 있는 그녀이기에 가능한 것이겠다. 더욱이 매회 전혀 다른 콘셉트와 내용으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만큼, 음악적 역량과 스펙트럼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야금 병창을 맛깔스럽게 소화했고, 재즈피아니스트와의 스캣까지 훌륭하게 펼쳐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최고은이라는 색깔을 선명하게 할지, 엷게 할지는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터다. 여러 실험적 시도를 통해 껍데기와 같은 여러 가지 음악적 틀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소격시키고, 그 속에서 음악인 최고은을 환기해 내기 바란다. 어쩌면, 그것을 위한 일대의 기회가 이번 시리즈일지도 모른다. 일곱 번의 공연 이후 최고은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