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4월, 창단공연작으로 장일남(張一男, 1932~2006) 작곡의 <왕자호동>을 올린 이후 국립오페라단은 수많은 창작오페라를 선보였다. 그것은 초연과 재연을 통해 한국창작오페라의 역사를 기록해온 사관(史官)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래서 국립오페라단 50년사는 한국창작오페라 50년사라고 해도 좋다. 이번 무대는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무대로 창작오페라의 대표작과 명장면을 모아 이틀간 선보인 창작오페라갈라 무대로, 의미 있는 ‘생일파티’였다. 7일 공연에는 장일남의 <왕자호동>, <원효>, 공석준의 <결혼>, 현제명(玄濟明, 1902~1960)의 <춘향전>, 홍연택(洪燕澤,1928~2001)의 <시집가는 날>, 박영근의 <보석과 여인>이 올려졌다. 다음날은 박영근의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의 서곡으로 시작하여 1부는 김달성(金達聲, 1921~2010)의 <자명고>, 이건용의 <봄봄>, 장일남의 <춘향전>을 선보였고, 2부는 임준희의 <천생연분>과 황호준의 <아랑>, 그리고 이영조의 <처용>이 무대에 올려졌다.

 한국의 창작오페라사에서 성공의 역사건 실패의 역사건 기록(으로서의 재연)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재연의 무대를 접할 수 없었으니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오페라 창작과 실험이 기존의 작품이 갖는 진화의 진폭과 차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무대가 ‘공연 자체’만으로도 값지게 느껴졌다. 또한 국립오페라단은 우수한 성악가를 선별하여 공연의 질을 높였고, 각 장면마다 무대디자인과 의상 또한 충실하게 갖췄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바탕으로 작품마다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선별하고 추려 갈라 형식으로 선보인 무대는 풍성한 잔칫상 같았다.

 무엇보다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작곡가들이 오페라 창작에 불어넣은 한국적인 특색을 엿볼 수 있었다. 1966년 첫 선을 보인 장일남의 <춘향전>은 춘향과 이몽룡이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과 이별 장면이 올려졌다. 가곡 <비목>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일남은 무엇보다 한국적 장단을 내세웠다.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마치 한 대의 장구로 설정한 듯했다.

 또한, 작품마다 작곡가와 사회·시대와의 관계를 느낄 수도 있었다. 1969년 초연된 김달성 작곡의 <자명고>는 1960년대 민족문화부흥이라는 관제 이데올로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냄새가 짙은 작품이었다. 이영조의 <처용>은 대형무대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한 해 앞둔 1987년에 초연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작품 역시 국제행사의 보여주기식 대형무대의 ‘과시’와 ‘전시’의 연출법의 냄새가 짙게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초연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무대에 오른 바 있는 임준희 작곡의 <천생연분>, 2009년 국립오페라단의 맘(MOMM) 창작오페라 공모전에 당선되어 2010년 선보인 황호준의 <아랑>은 이 땅의 젊은 작곡가들이 지니고 있는 국제적인 감각과 여타 장르와의 협업에 대한 유연한 실험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 작곡가들의 약진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들이 되짚어 봐야 할 작품은 2001년에 초연된 이건용의 <봄봄>이었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소설 「봄봄」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머슴처럼 데릴사위 길보를 부려먹는 오영감에게 길보와 순이가 결혼시켜달라며 티격태격하는 코믹한 장면이 올려졌다. 이건용은 가사 전달을 위해 복잡다단하고 거추장스러운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최소화했으며, 리듬감을 살린 선율 위에 간혹 대사를 두 번씩 반복하는 묘미를 연출했다. 대사에서 선율을 발라내 연극처럼 진행하여 음악극의 면모도 갖췄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음악론의 중심지대를 지나 ‘대중시대의 예술음악’에 이르른 작곡가로, 한국 ‘말’과 외래 ‘음악’, 진화된 관객과 ‘예술공연장’에서의 대중의 웃음에 대한 고민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벨칸토 창법은 오페라의 심장이지만 한국어로 된 가사 전달에 치명타다. 이번 무대도 각 공연마다 자막이 제공되었다. 이것을 공연기획 주체인 국립오페라단의 ‘친절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분명 한국오페라 창작의 ‘씁쓸함’으로 인식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창작오페라의 발전에 있어 창작만큼 중요한 것은 재연의 무대다. 쓰여진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조건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역사를 접할 때, 다시-쓰기와 새롭게 쓰기라는 행위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