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의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일본의 ‘우타고에(うたごえ)’노랫소리 1 는 참 독특한 조직이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예술활동이 전문 예술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우타고에는 순수 아마추어들로 이루어진 합창 동호회였다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물론 한국에도 여러 종류의 합창단들이 많이 있지만 그 규모와 역사가 우타고에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1945년 종전 이후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3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1,000개의 합창단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한결같이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민간 예술동호회나 전국 단위의 진보적 노래모임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서 우타고에는 그저 놀랍고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타고에를 부러워하며 교류를 시작했지만 한 해 한 해 교류의 역사를 더해가며 배운 것은 이들의 한결같은 진정성이었다. 전문 예술가가 아닌 일반 노동자로서 단지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해마다 5.18이면 자신들의 돈을 모아 광주에 와서 망월동을 참배하고 5.18 전야제에 참석해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불렀다. 또한 자신들이 직접 포스터를 붙이고 티켓을 팔아 한국 민중가수들의 일본 순회공연을 여러 번 성사시켜냈다. 그때마다 이들은 늘 진심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광주에 오면 5.18에 대한 자료를 미리 만들어와서 공부했고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는 한국어로 모두 외워버렸을 뿐 아니라 5.18에 대한 노래를 한국어로 새로 만들어오기까지 했다. 이들의 노래 역시 화려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다해 부르는 소박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뭉클한 감동을 주곤 했다.

2007년 5월 18일. 인천의 시민문화예술센터에서 1년만에 만난 이들의 모습은 역시 한결같았다. 수년 간의 한국민족음악인협회와의 교류에 이어 새롭게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의 교류를 위해 처음 인천을 찾은 우타고에와 히메지(姬路)지역 ‘근로자음악협의회’ 성원들은 사실 대부분 이미 서너 차례 이상 한국을 찾은 고참 멤버들이었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와의 교류가 전문 민중음악인들과 아마추어 예술운동단체의 교류였다면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의 교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시민예술운동단체끼리의 교류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교류는 인천문화재단 회의실에서 진행한 단체활동 사례발표에 이어 시민문화예술센터의 아트홀 소풍에서 함께 진행한 공연과 뒷풀이로 계속되었다. 작은 공연장에서 시작한 공연은 처음부터 활기가 넘쳤다. 이미 여러번 한국을 방문했던 이들답게 우타고에와 ‘로오온(勞音)’2 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합창곡과 민요를 충심넘치는 목소리로 즐겁게 불러제꼈고 시민문화예술센터의 회원들은 일어나 춤을 추고 환호성을 보내며 화답했다. 온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가 평화의 하모니가 되는 날을 위해 계속 노래를 부르겠다는 이들의 선언은 결국 마지막 곡 <아침이슬>과 앙코르곡 <고향의 봄>을 어깨동무하며 부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솔로활동을 준비 중인 이수진씨와 관록의 노래패 ‘아름다운 청년’, 작곡동아리 ‘끝장’의 공연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공연장에서 뒷풀이장으로 변신한 그곳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소개하고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호의와, 음악을 통해 지역과 세계의 민주와 평화를 고민하는 이들의 진심은 충분히 나눠졌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성의를 다한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의 정성은 곳곳에서 배어나왔고 그 진심은 우타고에와 로오온의 참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려한 공연과 리셉션이 아니라 작은 공연과 뒷풀이로 시작한 교류를 끝내고 헤어지는 이들의 얼굴은 좋은 음악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예술의 창작자와 향유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예술은 삶과 사회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같은 이들이 마음을 열고 만났기에 우의는 뜨겁게 새겨진 것이다. 사실 서로의 진정을 확인하고 웃으며 헤어졌다면 첫 만남으론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일 터,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게는 우타고에와 로오온의 활동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평화와 인권을 염원하는 우타고에와 로오온의 정신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첫 마음, 바다를 건너며 더욱 단단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