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불황에 허덕이는 대학로에서 창작 공연이 일 년 사이 세 번째 재공연에 들어갔다. 화제의 주인공은 최치언이 쓰고 이성열이 연출한 <미친극>이다. 최치언은 이전 작품들 <연두식 사망 사건>,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등을 통해 대학로의 인기 연출가 김동현, 박상하, 문삼화와 호흡을 맞춰왔다. 최근 비상하고 있는 연출가 이성열은 최치언의 두 작품으로 올 한해를 결산하려고 작심한 듯하다.1) 무엇이 이토록 대학로의 젊은 관객과 연출가들을 매료시키는가, <미친극>을 통해 엿보려 한다.  
최치언의 희곡은 연극적이다. 연극적인 양식은 고정 관념을 희화화시키는 데 주효하다. 연극적 양식은 사실에 대한 전복과 다시 보기를 허용하기에 연출가와 배우, 관객의 욕망을 부추긴다. <미친극>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골조를 세 겹으로 구성하여 역동성을 강화하는 한편, 서브 텍스트로 글쓰기의 문제를 제기한다. 플롯은 방학수김학수 분라는 인물이 작가의 글쓰기 속에 침투하여 극중극에 참여하면서 빚어지는 사건들로 전개된다. 현실의 인물이 허구에 개입하여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연극뿐 아니라 소설, 영화 등에서 수많은 전례가 있었기에 새삼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세 겹의 서사는 익히 알려진 다소 상투적인 소재, 사채업자와 빚쟁이의 관계, 이상(李箱, 1910~1937)과 금홍의 이야기, 연극 만들기,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1999)의 소재를 겹겹이 끌어안는다.
익숙한 소재들이 하나의 구조 안으로 통합되는 것은 스스로의 글쓰기에 탐닉한 작가의 현란한 말솜씨 덕택이다. 방학수가 장미황선화 분와 도연김승철 분을 죽이는 극중극의 사건이나, 결말에 또 하나의 테두리극을 설정하여 도발적 반전을 꾀하면서 글쓰기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작가의 기발한 발상과 솜씨가 노련하다. 한편, 공연 중반에 이르러 장면이 반복되자 초반의 긴장은 풀어지고 만다. 결말 부분에서 다시 리듬감을 찾는 것은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역할 속에 담아낸 듯한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에 힘입는다. 특히, 방학수 역 김학수와 장미 역 황선화의 능청스런 희극적 연기는 극과 현실이 꼬리를 물며 반복되는 다소 어수선한 전개에 안정감을 보태는 데 기여한다. 글쓰기의 서브 텍스트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친극>은 최치언의 메타극의 연극적 장치가 더욱 정교하게 극의 내용과 어우러짐으로써 작가의 경력에 하나의 이정표를 찍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착한 남자 방학수’, ‘이걸 위트라고 해야 하나, 컬트라고 해야 하나’ 등 언어를 감칠맛 나게 다루는 솜씨에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성찰도 예사롭지 않다. 한편, 공연 내내 쏟아내는 재기발랄한 유머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정보소극장의 옹색한 환경을 가리지 못한다. 그 때문인지 극 중 리허설 장면에서는 단원들의 연극 만들기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그 고단함이 배우들의 현실과 연관되자 <미친극>은 메타극의 자기반영적 요소 뿐 아니라 대학로 연극 현실에 대한 촌평으로도 기능한다.
글쓰기를 통해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를 신 혹은 사회와 개인의 문제로 확장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유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이 공연이 열고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이 글을 통해서도 공연을 통해서도 섬세하게 갈무리되지 않았기에 공연은 재미있는 관극 경험을 제공하였을지라도 아쉬움을 남긴다. 작가는 소재를 포착하여 연극적으로 구축해내는 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활한 기지가 넘쳐나지만, 그것을 삶과 사회 현실의 맥락에서 짚어내는 것은 애써 외면해버린다. 연애 상대로는 더할 나위 없지만, 결혼 상대로는 미진하다고 해야 할까.

이미지 제공_ 극단 백수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