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심청>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 발레인 동시에 한국이 해외무대에 소개해야 할 발레로 손꼽힌다. 서구로부터 유입된 고전발레가 국내발레를 형성한 데다 레퍼토리도 거의 대부분 서구 고전발레로 구성된 터에 <발레 심청>은 우리 손으로 창작된 발레로서 장수해왔다.

이 공연은 1986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창작되었다. 창작발레가 간헐적으로 시도되곤 하던 당시(그런 사정은 지금도 엇비슷하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창설 2년 만에 스스로 나서서 <발레 심청>을 창작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로 평가되어 왔고 그런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내세울 발레가 드문 터에 <발레 심청>은 가뭄에 단비로 그 성과를 누려왔는데 이 시대에 어울릴 말일지 다소 망설여짐에도 ‘국민발레’라는 소중한 호칭을 붙여도 무방할 듯하다.

24년 전 창작되었을 때부터 이 공연은 도화동 심학규의 액운과 심청의 희생적 효심 그리고 용궁의 안락을 뿌리치고 현세로 귀환하여 아버지를 찾아 온 나라 잔치를 열면서 일어난 이적(異蹟)을 3막 4장으로 펼쳐왔다. 이처럼 <발레 심청>은 보편적인 심청 이야기를 얼개로 하였으며, 작품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인륜(人倫)과 효심이었다. 특히 두드러지는 감성은 주인공의 희생 모티프가 심봉사의 눈뜨기 이적으로 귀착하는 순간에 촉발되는 벅찬 감동으로, 이를 춤으로 뒷받침한 공연물로서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으로 손꼽힌다. 더구나 봉산탈춤의 집단무를 인용하고 한복을 의상 디자인의 기본 개념으로 살린 까닭에 작품의 정체성 또한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 <발레 심청>에서도 라인이 멋진 강예나가 타이틀 역을 맡았다. 그간에 출연한 타이틀 역들도 유니버설발레단의 프린시펄(principal)들이었다. 그들은 국제무대에서도 수준급이어서 <발레 심청>의 주가를 유지하기에 충분했고 작품의 대중적 호소력 또한 빛을 발해왔다. 게다가 거친 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전 펼쳐지는 선원들의 역동적 군무, 용궁의 인어선녀들과 왕궁에서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고전발레에서 추는 일련의 무용에서 보듯 고전발레의 구성기법 또한 작품에 적극 응용되어 객석 반응을 유도하는 장치로 돋보였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고전발레에서는 타이틀 역의 비중이 절대적인 데 비해 이번 공연에서 심청의 춤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즉 인상적인 춤의 주역이 없었는데 고전발레 형태의 흥취를 돋우는 구성 면에서 이 점을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난 20여 년 사이 <발레 심청>은 음악 개작(改作), 의상 개량, 대형 선상(船上) 장치의 개발 등을 통해 완성도 높이기에 꾸준히 주력해왔고 연전에는 2년 간 발레뮤지컬까지 시도하여 양식적 대전환을 과감하게 모색해왔다. 이런 점들은 발레단이 이 공연에 기울이는 애정의 무게를 대변한다.

연극의 한장면

또한 점차 실험성을 높여온 작업들도 그 귀추를 주목할 만하다. 이번 공연에서도 <발레 심청>은 변신을 꾀하며 새로운 요소를 첨가했다. 우선 초연 때부터 15년 간 타이틀 역을 맡아 오리지널 심청으로 널리 각인되어 왔던 문훈숙이 막이 오르기 전에 카메오로 등장해 발레 마니아들에게 심청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무대 전면에 추가로 비춰진 대형 영상 이미지도 그것대로 신선했다.

남성 프린시펄 엄재용과 여성 프린시펄 황혜민, 여성 솔리스트 안지은, 이 세 사람이 연출한 수중 이미지는 이색적 설정을 넘어 <발레 심청>의 또 다른 변신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작품 내에서 심청의 인당수 투신과 현세 귀환을 암시하는 의미를 도와 작품을 풍부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더불어 이는 작품 외적으로도 발레와 디지털 이미지의 결합, 그리고 고전발레의 공간 이탈·확장으로까지 연장되고 있었다.

공연<발레 심청> 포스터

다만 정상급 발레 무용수들이 출연한 수중 이미지가 화젯거리에 그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한데, 그것은 발레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고난도 작업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유형의 작업은 수중촬영을 비롯하여 그래픽 작업까지 수반하는 탓에 해외에서도 꽤 보기 드물다는 사실을 이쯤에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제공_ 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