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마디(MADI)에서 만든 이재상 작, 연출의 연극 <당신, 어디 계세요?>는 창작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인천에서는 소중하다. 게다가 깔끔한 연출과 중견배우들의 열연까지 어우러졌으니 두말할 나위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척박한 제작여건 탓일지라도 개연성 없는 1인 다역은 작품에 대한 집중을 방해한다. 소극장의 시설부족 탓도 있었겠지만 매끄럽게 장면을 연결하지 못하는 조명과 소품처리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는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던져지는 화두다. 나는 극장을 나오면서 스스로 답했다. “나는 덜 행복하다.” 정성스럽게 잘 만든 음식에 마지막 간을 놓친 듯 안타까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사회복지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지금은 보험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샐러리맨 김준수.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직장과 가정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야만 치료될 수 있다는 ‘정체성 상실로 인한 대인강박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다. 이 병으로 인한 말더듬증과 실어증 때문에 그의 생활은 엉망이 되고, 급기야는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이 병의 치유과정이 당혹스럽다. 특별하게 바뀐 상황이 없는데도 모든 문제가 풀려버린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잃어버린 자아정체성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직업의식에 투철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사회에서 모든 문제는 개인이 짊어지고 풀어야만 하는 것인가? 가족의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해내고 돌파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만병통치약인가? 앞부분에서 장황하게 강조되었던 문제의식에 비해 결말이 안이하다.

또 이 작품에는 너무 착한 사람만 나온다. 아내가 힘들어 할까봐 자신의 문제를 얘기 못하는 주인공이 그렇고, 선배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결코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는 그의 직장 후배와 맞벌이부부이면서도 집안일을 도맡는 그의 아내, 그리고 마치 환자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듯 친절하기만 한 의사도 그렇다. 심지어 그의 형편없는 업무실적조차 감싸고 달래는 보험회사 소장과 팀장은 또 어떤가? 그래서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다. 주변에는 온통 착하고 좋은 사람뿐이니 모든 것은 ‘내 탓이오’인 것이다. 나쁜(immoral) 김준수를 상상해 본다. 세상에 맞서 ‘안준수’하는 김준수가 그에게는 좀 더 절실하다. 그렇게 세상과 부딪쳐야만 그는 정체성상실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맞설 때에만 그 해결 또한 가능할 것이다. 좀더 깊이 있는 접근이 아쉽다.

공연장을 나와 온통 화려한 네온싸인 거리를 걸으면서 인천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수익은커녕 빚 안 지면 다행이고, 연극평론가들조차 지역 작품은 제대로 보려 하지 않으며, 연극인들은 생활고로 인해 연극을 접거나 인정받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한 현실이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이제 3년차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극단 마디와 같이 인천에서 꾸준히 연극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을 공연한 ‘아트홀 소풍’ 만 해도 시설이 부족한 공연장이다. 그러나 인천시민들이 한푼 두푼 모은 성금으로 지난해 10월 개관한 이 공연장은 단순 대관사업만이 아닌, 다양한 기획들을 시도하고 있어 앞날이 기대되는 공간이다. 듣자니 안타깝게 문을 닫았던 ‘소극장 돌체’가 장소를 옮겨 ‘작은 극장 돌체’로 거듭난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이 많이 생겨 앞으로의 인천연극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는, 그래서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열심히 인천연극을 지켜보리라 다짐하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