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설가가 책 속에서 말한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인간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실제로 사랑할 때 생기는 감정적 충만함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하면, 사랑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 뮤지컬 <사랑과 광증>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한 대상에 사로잡히고 집착하다가 급기야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랑으로 인해아픈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깊은 슬픔을 체험한 뒤에 찾아오는 웃음처럼 우울을 치유하는 유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7월 31일 막을 올린 인천시립극단의 뮤지컬 <사랑과 광증>은 셰익스피어(W. Shakespeare,1564~1616)와 존 플레처(John Fletcher, 1579~1625)가 함께 쓴 『두 귀족 친척The Two Noble Kinsmen』을 원작으로 한다. <사랑과 광증>이라는 작품명은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1597) 같은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해피엔드를 기대해도 좋은 작품이다. 1613년에 쓰인 원작을 한국적으로 각색해 관객과의 공감을 높였고 복잡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간결한 메시지로 전달한다. 국내 초연인데다 야외공연이라는 제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안정적이고 자연스럽게 관객과 호흡했다. 특히 필녀 역을 맡은 가수 진주의 열연은 인상적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록 햄릿> 등의 뮤지컬에 이미 출연한 바있는 그녀는 가창력에 섬세한 감성 연기를 더해 가수로 만났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기량을 발휘했다.

“꽃을 드리면, 그는 나를 쳐다보겠지” 라고 노래하는 순간, 필녀가 된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에 울먹이는 두 눈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나모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나모와 아사달의 결투가 필녀가 아닌 아밀리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라니 더욱 아이러니컬하다. 작품은 관객을 한없이 침잠시키면서도 희극적인 인물들을 중간 중간 배치해 웃음을 유발했다. ‘미쳐버린’필녀를 치료하는 의사와 필녀의 아버지가 대화하는 장면이라든지, 나모 왕자로 변장한 구혼자가 필녀와 대화하는 장면은 눈물과 웃음의 경계를 허문다.

변수가 많은 야외무대인 만큼 공간은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배치되었다. 출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는 원형기둥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퇴장하는 문이 되기도 하고 포로가 된 나모 왕자와 아사달이 유배된 탑이 되기도 한다. 반원형의 객석에 앉아서 바라보는 무대는 아늑했다. 무대보다 높은곳에 있는 객석 덕분에 관객의 시선은 편안하게 아래로 향할 수 있었다. 여름밤의 자지러지는 매미 울음소리에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막이오르자 음악소리에 묻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