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페스티벌이라는 단어는 ‘흥분’ 그 자체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동공이 확대된다. 마치일주일 내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는 주말의 시원한 맥주와도 같다. 사람의 취향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록음악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또래 아이들이 한창 듀스, 터보, 룰라, DJ DOC, 신승훈 등의 음악을 들을 때, 나는 키스(Kiss), 딥 퍼플(DeepPurpl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머틀리 크루(Motley Crue), 건즈 앤 로지즈(Guns & Roses), 헬로윈(Helloween) 등의 음악을 들었으니, 그 고립감아닌 고립감이 오히려 록음악의 매력에 더욱 심취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친구들도 지금은 해마다 열리는 록페스티벌을 찾아가고 노래방에 가면 되지도 않는 고음으로 록음악을 부르고 있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008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Pentaport Rock Festival)에서 첫 날 크라잉넛의 시원한 물대포와 둘째 날 트레비스(Travis)의 감동적인 무대, <셀피쉬 진Selfish Jean>을 합창하는 수만 관객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밤새 이어진 레이브 파티(Rave Party). 정말 제대로 놀 수 있는 놀이터였고, 사람들은 그 놀이터 안에서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으며 온몸의 에너지를 소진했다.

올해도 록페스티벌 시즌이 다가오자 마니아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펜타포트록페스티벌과 지산밸리록페스티벌(Jisan Valley Rock Festival), 두 개의 행사가 개최되었다. 모든 내용을 글로 담을 순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그 말들에는 대부분 우려가섞여있었다. 크지도 않은 나라, 그것도 록음악의 불모지에서 하나의 록페스티벌이 아메바처럼 두 개로갈린다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은 밴드라인업이 전년보다 축소되어대부분 국내밴드들로 채워졌고,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오아시스(Oasis), 위저(Weezer), 제트(Jet), 폴아웃 보이(Fall Out Boy), 지미 잇 월드(Jimmy EatWorld),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등의 유명 뮤지션들을 대거 앞세웠다.

첫째 날인 24일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방문하고, 다음날부터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합류했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의 전체행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전까지의 걱정은 단지 걱정에 불과하였다.작년에 비해 관객 수는 줄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사람들은 점점 모여들었고, 해질 무렵에는 예년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전까지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없었던 노브레인의 공연도 반갑거니 와, 록음악과 서로 간의 어울림이 있었기에 대형 뮤지션 없이도 관객들은 즐거울 수 있었다. 정확한 관객 수는 알 수 없으나 듣기로는 이튿날, 셋째 날에는 더 많은 관객들이 찾았다고 한다.

25일부터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을 찾았다. 두 페스티벌의 서로 다른 분위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의 이미지는 거칠지만 록음악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황량하다시피한 공사장 부지와 집중적인 소나기, 그리고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 나름의 놀이로 적응해가는 관객들의 모습은 록음악을 일컫는 정신, ‘저항’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반면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편안함’ 그자체다. 장소가 리조트이기 때문에 바닥은 밟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고 사람들은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낮잠도 자고 적당한 취기에 춤도 춘다. 그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난 3일간의 완벽한 휴가다. 윗옷을 벗었다고 하여, 보행 중 술을 마셨다고 하여, 근처에 있는 이성에게 관심을 보였다하여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여타의 축제에 서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록페스티벌에서만큼은 더욱 더 가능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25일 펜타포트록페 스티벌에서의 데프톤즈(Deftones) 공연도 훌륭했다고 한다. 하드코어 음악 계열에서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밴드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즐거움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난장 그 자체였을 것이다. 26일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서의 오아시스 공연도 훌륭했다. 워낙 유명한 밴드이기 때문에 두말할 나위 없겠지만, 관객들은 거의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밴드의 보컬리암 갤러거(William John Paul Gallagher) 특유의 노래하는 모습(항상 뒷짐을 쥐고 노래 부른다)과 그 고집스럽고도 매력적인 록스타만의 거만한 모습은 관객들을 일순간에 사로잡았다. 공연 마지막 곡에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 하나하나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한 팬에게는 자신이 사용하던 탬버린을선물하는 친절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록페스티벌의 흥행은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할까? 유명 뮤지션의 대량 섭외? 수만 명의 집객?수익률? 물론 세 가지 모두 중요한 요소들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느냐다. 문제는 이러한 부분을 양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굳이 측정하지 않더라도 찾아온 사람들의 눈빛들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두 페스티벌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관객들을 모았고, 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를 제공하였다. 물론 지산밸리록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보기 힘든 해외 유명 뮤지션들을 초청하여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 록마니아들 사이에선 “한쪽은 망한다. 어
느 한쪽은 상도덕이 없다. 넌 어디로 갈 거야? 난 어디로 갈 건데” 등의 이야기들이 떠돌았으나 결과적 으로 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록음악과 록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다른 요소보다 음악과 페스티벌 그 자체가 더 소중한 것이다. 물론 해외 유명뮤지션이 나오면 금상첨화지만, 우리는 어느 누가와도 록음악에 몸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다. 평소 좋
아하지 않던 밴드의 공연일지라도, 다소 록음악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타 장르의 음악일지라도 록페스티벌 그 자체는 좋고 매력적이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오아시스가 온들 관객이 수백 명이라서 페스티벌이 즐겁겠는가? 록음악을 좋아하고 주변에 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강한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첫날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보여준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의 멘트가 생각난다.
“저희가 해외 유명 뮤지션만큼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미치게 만드는 건 세계 최고입니다!” 그렇다. 어디에서 어느 페스티벌이 열리더라도, 그리고 그 페스티벌에 누가 오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록페스티벌은 좋은 뮤지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좋은 장소만으로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록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연을 공연답게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관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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