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 개관공연 시리즈 두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개막전부터 관객의 기대를 한껏 모은 작품이다. 시적 서정성을 담뿍 담은 문학적 글쓰기로 정평이 난 최인훈(崔仁勳)과 시청각적 이미지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해온 한태숙(韓泰淑)의 만남 때문이다. 작가는 옛이야기처럼 떠돌던 평강공주와 온달의 신화에 1970년대의 상황을 환기시키며 사회적·역사적배경을 부여하였다. 극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은 전생, 이승, 내세를 돌고 도는 불교의 연기설이다. 대사는 견고한 언어 속에 서정적인 시의 운율을 뿜어낸다. 이처럼 작가는 서너 개의 논점을 중첩시키며 온달과 평강의 만남과 이별을 좇는다. 그러나 화려한 시노그라피(scenography)와 집중된 에너지로 인간 내면의 심연을 응시해온 한태숙과 최인훈의 만남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한태숙에게 희곡은 시노그라피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최인훈이라는 무게에 눌려서인지 무대를 아우르고 추스르는 손길이 유난히 느슨해 보인다.

한태숙은 플롯을 좇으며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미장센을 구성한다. 즉, 그녀의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적 선택은 의미를 좇는 것을 우선해장면 구성에 집중하는 듯하다. 때문에 연출과 무대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그 어느 연출가의 공연보다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한태숙의 무대는 고유의 시선으로 갈무리해내는 시노그라피를 통해 그 능력을 인정받아왔다. 이태섭과 호흡을 맞춘 이번 무대 역시 매우 인상적인 무대미학을 연출하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히 쏟아지는 눈발과 천장으로부터 드리워져 무대 한쪽을 빼곡하게 메운 하얀 줄들은 숲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며 관객의 상상력을 한껏 고무시킨다. 감각적인 색감으로 빛의 향연을 유도하는 김창기의 조명, 여기에 피아노의 선율과 드럼의 비트가 섞이면서 무대는 현대적인 양식미를 선도하려는 듯하다. 이러한 경향은 인물들의 의상에서도 나타나는 데, 평강공주 역의 서주희와 온달모 역 박정자 등 인물들의 의상은 한복의 특색을 지닌 듯하면서도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현대적인 시노그라피를 그려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한태숙 연출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여성의 시선으로 설화를 재조명하고 있는 데에 눈길을 줄만하다. 온달의 죽음 이후 평강공주의 심리가 초점화하고, 정치적 음모에 의해 희생당하는 평강공주의 죽음으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여기에 온달모의 마지막 시선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아내와 어머니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 셈이다. 온달을 산 속에서 불러내어 그를 통해 세속의 권력을 향유해온 것이 진정 합당하였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평강공주의 회한에 찬 모습이 관객 자신의 문제로 다가올 때 공연은 시대성마저 확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