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의 잇단 흥행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우리 공연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 <김종욱 찾기>(이상 CJ 엔터테인먼트 제작), <폴 인 러브>(시네라인 투 제작) 등 소규모 창작뮤지컬이 투자자본의 관심과 관객의 호응을 함께 받았다.

<김종욱 찾기>(작.연출 장유정, 작곡.음악감독 김혜성)는 지난해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했다. 관객이 바라는 스타급 배우들을 출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가 약 1천 명의 뮤지컬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각각 선호도 1, 2위를 차지했던 오만석과 엄기준이 더블 캐스팅된 것이다. 올해 재공연에서 이들은 드라마 <주몽>의 원기준과 드라마 <하이에나>의 신성록, 뮤지컬 스타 전병욱으로 교체되었다. 이로써 <김종욱 찾기>는 2, 30대 여성 관객을 유혹하는 올스타전이 되었다.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실명을 사용해 그들 자신의 매력을 무대 위에서 한껏 드러낼 수 있게 하였다. 그로 인해 인물보다 배우가 두드러진 공연이 되었지만, 관객의 집중도는 어떤 공연에서보다도 높았다.

낯익고 단순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배우가 ‘튀어도’ 극을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를 따라 몰려드는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이벤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스타 마케팅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배우의 스타성이 부각되면서 연기력에 관계없이 극중인물의 당위성이 약해지고 다른 인물들과의 조화를 해치게 된다. 이는 곧 작품 전체의 의도를 모호하게 만들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김종욱 찾기>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관객이 바라는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31세 오나라는 7년 전 인도여행에서 만난 김종욱을 찾으러 ‘첫사랑찾기 주식회사’의 신성록을 찾아가다가, 결국 신성록과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 오나라의 나이가 31세이고 연애 ‘젬병’이라는 점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을 시작으로 <여우야 뭐하니>의 고병희, <달자의 봄>의 오달자에 이르기까지 올드미스들의 ‘다이어리’에 자주 언급되는 그녀들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여보란 듯이 연애에 성공한다. 예전 같았으면 올드미스는 ‘아줌마’처럼 연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무성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고학력겙茨撚?미혼 여성들이 소비주체로 부상하면서 시장이 올드미스를 욕망의 주체로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고가의 링클프리 화장품을 사 바를 수 있는 그녀들은 젊음과 연애의 유통기한조차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들의 연애와 소비가 환영받는 요즘, <김종욱 찾기>의 올드미스 오나라가 보여주는 연애 성공신화는 경쾌하게 반복되는 주제 선율과 함께 여성관객을 만족시킨다.

<김종욱 찾기>는 운명이라고 믿었던 첫사랑과 이별하는 대신,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신성록과 오나라의 노래로 끝이 난다. “환상도 에너지가 된다면 나쁠 거는 없죠, 나쁠 건.” 오나라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환상을 유지시킨다. 오나라가 환상을 유지시키듯이, 관객은 공연을 반복해서 관람함으로써 환상을 지속시킨다. 극장 밖은 아직 찬바람이 부는 겨울밤인데, 90분간의 환상이 정말 우리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환상적인 <김종욱 찾기>를 비롯해,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엉큼한 로맨틱 뮤지컬” <폴 인 러브>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예쁜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 모두 로맨틱 코미디로서 주목할 만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지난해 <데이지>, <그 해 여름>, <사랑 따윈 필요 없어>, <가을로> 등 영화계의 잇단 멜로드라마 흥행참패로 상대적 흥행 가능성을 인정받은 로맨틱 코미디에 자본이 몰린 탓이기도 하다. 이렇듯 유행에 민감한 자본은 다양한 소재의 창작뮤지컬 생산에 걸림돌이 된다.

쉽게 만들어진 뮤지컬은 없다. 그러나 자본에 길들여지기는 너무나 쉽다. 투자자들은 자본에 길들여진 관객의 욕망을 앞세워 공연의 조건을 위협하고 있다. 언제까지 자본의 공세를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할까. 올해도 창작뮤지컬의 상연이 줄을 이을 것이고, 뮤지컬 시장에는 자본과 인파가 모여들 것이다. 뮤지컬을 자본의 전시장이 아닌, 자유를 위한 노래로  만들기 위해 ‘창작자는 관객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이 대화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