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무대로 발돋움하는 한국의 신예 음악가들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면 우선 살피게 되는 몇몇 리스트가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주최해온 <금호 라이징 스타 시리즈>는 그러한 리스트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출처 중 하나다. 2004년에 시작되어 우리 악단으로부터 신뢰와 권위를 쌓고 있는 이 독주회 시리즈는 이제 국경을 넘어 외국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자랑스러운 우리 젊은 음악가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사회적 축복의 자리가 되었다. 지난 2월 9일, 2007년 이 시리즈를 여는 첫 연주회가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가 그 주인공이었다.

국내의 유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스위스 티보바가 콩쿠르, 독일 하노버 콩쿠르, 이태리 제노바 파가니니 콩쿠르를 비롯한 여러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며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활발한 협연활동을 해온 화려한 경력이 아직 학생 신분의 이 젊은 음악가가 무대 위에 오른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베토벤의 내림마장조 소나타로 시작한 음악회는 그의 경력으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탄탄한 기량과 자신감 넘치는 연주로 채워졌다. 빠르기와 셈여림의 변화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신아라의 베토벤은 지극히 표정이 풍부하면서도, 선율을 타고 전개되는 화성의 진행구조가 명료하게 드러나는 튼튼한 밑그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구조에 대한 분석력이 돋보이고, ‘여장부 스타일’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힘찬 연주 특성은 바흐의 라단조 파르티타(partita) BWV1004를 비롯한 이후의 순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베토벤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선율이 깊고 서정적인 노래를 읊는 듯한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번호42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첫 악장이나 낭만적 열정이 꿈틀대는 비에니아프스키(Henryk Wieniawski, 1835~1880)의 작품번호20 <파우스트 판타지>마저도 세차게 밀어붙이는 그의 곡조가 때로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프레이즈(phrase)의 끝자락 하나 하나를 조금만 더 치밀하게 부여잡고 다음 선율의 첫 소절에게 건네는 간드러지는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싶을 때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악곡이 담고 있는 음악적 화제에 대해 그의 연주가 무디거나 엉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연주력이 부족하다고 몰아세우기에는 전체 악곡의 윤곽을 그려내는 솜씨가 너무 뛰어나고 피아노(이영희)와 함께하는 방향감각 또한 분명해서 차라리 그 어색함을 연주가의 개성이라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아라의 바이올린을 비유하자면 달변가보다 웅변가에 가깝다. 능란한 어휘와 표현들로 한 대목 한 대목을 세공해가기보다 구성과 설계에 관심을 가지고 목표지점을 향해 내닫는 그의 연주는 강한 어조로 자신 있게 주장을 피력하며 객석의 공감을 끌어낸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의 패기가 한껏 느껴지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기술 수준을 논하는 단계를 넘어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젊은이를 만났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탄탄한 기량을 갖추고 해외무대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젊은 음악가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보다도, 이제는 꽤 늘어난 ‘국외 진출’ 음악가들 사이에서 개개인의 고유한 성격을 읽는 일이 가능해진 우리 연주계의 풍요로움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하고 싶은 말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좋은 언어구사력을 갖춘 연주가들이 늘어가면서 객석은 잘한 연주 못한 연주를 가리는 대신 연주가 개개인의 이야기에 기울일 줄 아는 귀를 다듬어 갈 것이다. 세계무대에 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자부심뿐만이 아니라 음악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일까. 당찬 신예 바이올리니스트의 개성 있는 연주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바라온 꿈이 실현되는가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