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꺼진다. 스피커에서는 구(舊)소련 국가(國歌)가 강렬한 남성합창으로 터져 나온다. 곧 어둠을 뚫고 백(白)바지 차림의 사내들이 무대로 뛰어든다. 어리둥절함은 잠시. 유독 요상한 군복 패션의 남자가 눈에 띈다. 더벅머리에 기타를 둘러멨는데, 그가 바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였다. 지난 6월 24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이하 노스모킹밴드)’의 첫 내한공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지휘 퍼포먼스로 두 번째 곡 <운자 운자 타임Unza Unza Time>이 시작된다. 2003년에 발매한 동명앨범 삽입곡으로 밴드가 표방하는 독특한 음악스타일인 운자운자음악(Unza Unza Music)1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시종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빠른 2/4박의 ‘쿵짝’ 리듬이 묘한 분위기의 단조 음계와 어울려 우울하면서도 신나는 ‘뻘쭘함’을 자아낸다. 노스모킹밴드는 마치 ‘용광로’와 같은데, 재즈, 테크노, 하드록, 메탈, 레게 등 어떤 장르든지 ‘흥’으로 녹여 열정적인 ‘운자(Unza)’로 분출하기 때문이다. 역시 운자운자음악의 큰 특징일 터. 이들은 장르는 물론이고 다른 밴드의 음악을 곡의 도입부나 중간 삽입부로 자주 차용했다. 딥 퍼플(Deep Purple)의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 도입부 리프(riff)2를 연주하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장난스런 표정 뒤에는 서툴긴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 용광로처럼 품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숨어있었다. 8시 10분에 시작한 공연은 2시간 동안 17곡의 ‘운자’들을 쏟아내며 객석을 난장(亂場)으로 뒤바꿔 놨다.

1980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노스모킹밴드의 시작은 ‘Zabranjeno Puenje’(금연을 뜻함)였다. 밴드는 198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새로운 원시주의(New Primitivism)운동’3의 중심에 있었으며, 체제 비판을 담은 풍자로 당시 의식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밴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다지 저항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게 된다. 그저 흥겨운 ‘쿵짝 밴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관객을 열광시키는 ‘집시음악 밴드’로 변신한다. 공연직후,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에밀 쿠스트리차는 ‘우리 음악은 항우울제와 같고 정치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공연모습

                                                    이미지_LG아트센터

 

 

공연 막바지. 흥분한 보컬, 넬레 카라질리치(Nenad Jankovi)가 ‘메따 모 꼬소보’를 외친다. 무슨 말일까. 눈빛이 비장하다. 알고보니 ‘니다 모 코소보(코소보를 내줄 수 없다)’를 격하게 발음한 것이었다. 흥에 취해 즉흥적으로 내뱉은 것이겠거니. 하지만 다음 연주에서는 어수선한 틈을 타 무용수가 ‘I♥Servia’가 선명하게 박힌 손팻말을 들고 지나간다. 어리둥절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베오그라드(Beograd)세르비아의 수도 분위기라도 내겠다는 것인가. 이보다 더 정치적일 수는 없다. 음악에 취해 신나게 뛰었을 뿐인데 텁텁한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항우울제라는 운자운자음악을 두 시간이나 귀가 멍멍할 정도로 들었는데 ‘우울함’이 엄습한다.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윗옷을 벗은 넬레 카라질리치(Nenad Jankovi)는 연신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무대 위에는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모두들 질펀하게 흥겹다. 그렇게 공연은 끝을 향했다. 순간 LG아트센터 무대가 객석과 ‘쩍’ 갈라지며 저 너머로 둥둥 떠 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상상으로 말을 건다. “감독님, 그 위에서는 세르비아 사람, 코소보 사람, 보스니아 사람 다 같이 어울려 덩실덩실 춤 출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 영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1995)4의 끝 장면에서 웃고 있는 그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주)

1      리드미컬한 기타 사운드가 강조된 세르비아 민속 춤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것을 자신들만의 음악 스타일로 발전시켰고, 이 경향을 ‘운자 운자 음악’이라고 명명. 발칸의 전통 음악에 하드록, 메탈, 레게 등이 뒤섞여 그 누구라도 춤을 추게 만드는 흥겨운 음악.

2      두 소절 또는 네 소절의 짧은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단위.

3      1980년대 초중반 사라예보에서 시작된 도시 비주류문화 운동.

4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를 완전히 착각한 유고슬라비아 지하 세계인들의 혼돈을 그린 영화. 칸느영화제(1995) 황금종려상 수상작. 서유럽의 지식인층은 ‘세르비아의 선전물’이라며 세르비아를 옹호했다고 혹평을 해서, 쿠스트리차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던 문제작.

禹相薰 1975년 서울생. 인천문화재단 전문위원. 최근 글로 「앨리스의 눈동자」 등. essulll@i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