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청년작가 김유정(金裕貞, 1908~ 1937)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토론회 <한국의 웃음문화>를 시작으로 사흘간의 문학제가 막이 올랐다. 김유정 소설 30편 중 17편이 속이고 속는 모티프(motif)로 전개되는데, 거기에서 유발되는 웃음은 비참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토론회는 김유정 소설 속의 가난한 시대배경과 천진한 우둔성을 가진 작중 인물들을 통해 왜 웃음이 자꾸 나오는지, 왜 김유정의 웃음이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가 심도있게 발제된 시간이었다. 희극은 ‘비극 더하기 시간 혹은 거리’라는 말을 한다. 궁여지책으로 악의없이 저질러지는 사건들을 통해 독자는 공감의 웃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김유정 소설의 웃음과 해학은 요즘 개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저한 삶의 힘을 가진 것이며, 토속적 문체와 더불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룬다. 힘들고 궁핍한 삶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의 빛, 바로 그 진정한 웃음을 이끌어낸 김유정이기에 한국문단과 석학들이 새롭게 주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웃음의 정체성이 응축된 김유정 소설들, 현재의 냉랭한 삶을 보면 그 웃음이 더욱 절실해진다.

문학제 이튿날은 생가 터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산문백일장이 치러지고, 김유정 소설 입체낭송대회가 이어졌다. 때로 감동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온다. 시각장애 학생 두 명이 점자기를 짚어가며 입체낭송을 구연해내는 동안 그 열정과 재능에 관중들은 감격과 경탄을 금할 수 없었고, 환호와 박수로 격려하였다. 그들은 목소리로 소설 속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내었고, 장애를 의식하지 않는 자신감과 밝은 표정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 얼굴에도 김유정의 웃음이 배어있었다. 단연 최고상을 수상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두 학생이 그날의 화제가 되었다. 취재진의 인터뷰가 쇄도하고 신념에 찬 목소리로 장래희망이 성우라고 밝히는 당당함, 김유정 작품에 나타나는 소박하고 우직한 성품이 엿보이는 듯했다. 때마침 인천 남구학산문화원 문학기행팀이 『반성』의 김영승 시인과 함께 문학촌을 탐방하였다. 그들은 대회에 즉석 참가하여 입상의 영예와 대회의 흥을 돋궈주었다. 이렇듯 발길 닿는 어느 누구라도 어우러질 수 있는 문학제로 한 걸음 더 나가고 있는 마당이 실레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생김새가 꼭 떡시루 같아 붙여진 이름 ‘실레마을’. 여기에 문단에서 맹활약 중인 작가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문학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제2회 김유정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마지막 날, 봄 날씨답지 않게 쌀쌀한 데다가 비까지 내리는 터였다. 시상금을 지원하는 한강수력발전처의 ‘북한강이 마르지 않는 한 김유정문학상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천명 하에 두 번째 영광의 주인공이 된 김중혁 작가(수상작 「엇박자D」)를 김훈, 윤대녕, 전경린, 윤성희, 김연수, 은희경, 김애란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축하해 주었다. 이 문학상은 지역의 공기업이 상금 전액을 지원하는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 문학사에도 길이 남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일은 재정을 지원하는 쪽이나 수혜를 받는 쪽 모두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벌 받아야 할 문학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제대로 권위있는 문학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전상국 촌장의 다짐이 믿음직스러웠다. 춘천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큰 상을 수여하는 의미는 중앙을 지방으로 끌어내리는 역할도 있으리라 본다. 어디 눈치 볼 것 없이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를 대원칙으로 하는 한 명실상부 이름값을 제대로 할 것이라 확신한다. 김중혁 작가가 수상소감에서 ‘김유정 이름이 들어간 상을 받게 되어서 참 좋겠다’라는 주위의 축하 인사가 실감난다는 말, 점점 더 기쁨이 커져간다는 그의 말이 작가의 책임감으로 느껴졌다.
임시 마련된 풍물장터에서 국밥 등으로 점심을 마치고 「봄봄」, 「동백꽃」의 ‘점순이를 찾습니다’ 행사가 진행되었다. 키는 작달막하고 당찬 캐릭터 점순이를 상상하며, 지망생들은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진지한 태도로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내년에 삼돌이 캐릭터를 찾는 프로그램을 추가한다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닭싸움으로 3일 간의 모든 문학제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유인순 교수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열차는 저녁 6시 서울로 향하였다. 쌀쌀한 날씨에 실레마을에서 모두들 한마디씩 던진다. 김유정선생이 한이 많은 채 돌아가셨기 때문에 날씨가 안 풀어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아니다. 이제 김유정 선생은 여한이 없을 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연이어 펼쳐지는 문학잔치마다 성황을 이루는 일, 그야말로 한이 흥으로 넘어가고 있다.

金錦芬 1955년 강원도 춘천생. 최근 글로 「화법전환」, 「사랑, 한 통화도 안 되는 거리」 등. silkbo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