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정명훈과 인천시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이제 한국도 본격적인 문화 연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미 선진국들이 음악페스티벌로 자국의 문화역량을 과시하면서 경제적인 이익까지 추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방 자치의 참뜻을 살려 보다 수준 높은 문화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행정적 연출도 의미심장한 노력임에 틀림없다. 정명훈과의 합작을 통해 인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외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국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야심찬 구상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문화 명사로 인정받는 지휘자 정명훈의 노력과 헌신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이미 정명훈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 입상을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부지휘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의 음악감독, 도쿄 필하모닉 특별 예술고문 등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한국의 연주자로는 최고의 경력을 자랑하는 명사다.  

그의 연주는 원곡이 지닌 형상과 조형미를 차분한 구성으로 풀어내며, 음색이나 운동감에 별다른 과장이나 주관적 상상력을 투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휘자들의 평균치보다 진중함이나 관조미가 더 많이 투영된 연주로도 들린다. 정명훈의 연주는 따스한 감성도 많이 지닌 편이어서 동양적 단아함이나 온기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가 녹음하여 출시한 드보르작이 <교향곡 6번>이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같은 음반들에서도 그런 성향들은 잘 나타난다. 그의 누이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는 또 다른 개성을 지닌 연주자라고 볼 수 있다.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를 낳고 성장시킨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씨는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도 피아노를 싣고 갔던 일화로 유명하다.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헌신하는 교육적 맥락에서도 정명훈의 가문은 중요한 모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정명훈과 그의 가문은‘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국이 낳은 음악인 중에 정명훈만큼 세계적인 인맥을 갖춘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잘만 된다면 인천시는 정명훈을 통해 문화적 브랜드 가치를 높일 기회를 잡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낙관은 아직 이르다. 우리는 좋은 취지로 기획된 문화페스티벌이 성공에 이른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를 함께 보곤 한다. 현시점에서 가장 주요한 고려사항은 역시 인천시와 정명훈의 협력관계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사업계획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서해안의 대도시 인천을 국제적 문화도시로 자리매김 시키는 대행진은 오페라나 영화 같은 종합예술 장르 제작에 비유될 수 있다. 이는 정명훈과 몇몇 음악가들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한 인천시 행정과 언론의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최근의 한류 현상이나 영화 산업의 부흥은 한국의 문화계에 새로운 자신감을 안겨줬다. 한국인의 역량만을 놓고 본다면, 아시아의 홍콩이나 일본에서 이미 한 발짝 앞서 나간 문화페스티벌 현상은 인천에서도 탄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데 특정 지역의 문화 축제에서 자본이나 정보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애향심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인천시의 미래 설계도 속에 성공적으로 착지하여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천시민들의 호응과 관심이 중요하다. 시민들의 사랑이 와 닿는 고품격 음악페스티벌이 탄생하고 관광과 무역, 교육, 국제 스포츠 행사 등에 정명훈이 등장한다면 인천시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 자신도 인천 사랑에 앞장서는 인천의 문화시민이 되어야 하며, 인천의 자랑거리를 국가적 자랑거리로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정명훈이 함께 노력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