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인천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걸고, 국내 최초로 국제적인 록의 제전을 시도한 지 6년 만이다. 장마철 진흙 벌 속에서 행사추진을 포기해야 했던 당시의 비운을 회상하면, 한국의 음악 산업과 문화적 수준을 몇 년 성큼 앞당길 기회를 놓쳤던 것이 가슴 아프다. 올해 같은 기간 우천 하에 다시 열린 행사는,이름 자체도 삼항(三港) 축제에서 오항(五港) 축제로 키운 도전이었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이러한 사연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바로 불굴의 도전 정신과 ‘왜 안되지?’라고 외치는 역발산의 에너지다. 대부분의 국제 록페스티벌이 록 정신(rock spirit)을 부르짖으며 그것을 젊은이다운 저항이나 거침없이 순수한 열정 같은 상투적 구호들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악천후도 뚫는 불굴의 도전을 전설로 만들면서, 록이 아니라 고난을 헤치는 시대정신을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세상의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 예사롭지 않는 행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행사에 시대적 메시지를 깊이 있게 집어넣음으로써, 흔하디흔한 모방성 국제 행사를 벗어나도록 사상과 시각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고급 문화기획자의 몫이다. 인천은 6년 전의 불운을 딛고 일어나, 이제 한겨울 폭설에도 록 콘서트를 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단순히 열악한 상황을 이겨나가는 차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콘서트를 하기 힘든 상황이 오히려 투쟁하는 젊음의 힘으로 전환되지 않는가. 이렇게 청년들의 시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좋은 축제의 힘이다. 분단의 경계 앞에서 반전 평화 콘서트를 열듯, 인천은 장맛비 속에서 진흙 놀이를 하고, 야성의 캠프를 즐기는 것을 핵심 콘텐츠로 제시하는 정도의 안목과 착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지구촌을 돕자고 가수들이 궐기하듯 외치던 1980년대의 라이브에이드(Live AID)처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벽(The Wall)이라는 자신들의 음반으로 분절된 사회를 언급한 핑크플로이드(Pink Floyd)의 공연처럼, 프리섹스와 마약까지도 허용하는 사해동포주의를 당당하게 노래한 히피들의 우드스톡(Woodstock)처럼,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없다면 인천의 행사는 후지산과 영국 종가의 그늘에 가려진 한낫 일등선망형 이벤트로 전락할지 모른다.

주제의식의 필요성은 1970년대 우드스톡을 1990년대 모스크바 록페스티벌과 비교할 때 절감할 수 있다. 앞의 것이 젊은이들의 반항과 자유,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뒤의 것은 구소련 붕괴 이후 인종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지구촌의 평화를 테마로 한 공연이었다. 어떤 이는 앞의 것이 방종으로 치달은 반면, 뒤의 것은 세계평화를 다뤘기 때문에 더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드스톡 역시, 모스크바 록페스티벌과 다른 방식으로, 일상 속에서 우리가 권리처럼 찾아야 할 평화를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우드스톡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겨지든,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일탈로 여겨지든 간에, 당대의 철학과 정치 운동이 제기했던 화해와 반전, 인류애 등 깊이 있는 주제들을 담아 관람객들과 나누고자 했기 때문에 결국 인류사에 남는 록의 제전으로 기록된 것이다.

예컨대 경기도 파주 임진각의 평화누리는 서울 사람들에게는 인천 송도만큼 먼 곳이다. 하지만 평화를 주제로 한 개성 있는 록 콘서트가 가능한 곳이다. 그곳은 어느 곳보다도 분단의 아픔을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은 무엇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공명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축제의 핵심 성공 요소다. 부산 국제 록페스티벌은 인천에 비하면 시민들의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 인천이 자신만의 주제를 표방하지 않는다면 대중들은 더 매력적인 항구 도시로 가기위해 KTX를 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메시지는 필수요건이다.

최악의 조건에서조차 젊은이들이 록을 노래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록이 개인의 발산이 아니라 세상의 험난함을 이겨내는 투지라고 선포하게 하라. 그리고 록은 개인의 반항이 아니라 힘든 세상을 돌파하는 도전 정신이며, 그렇게 세상을 향해 덤빈다면 나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는 깃발이 되라. 그것이 궁극의 마케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