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일요일. 하루종일 이른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다. 소지품은 책 몇 권과 노트 하나만 달랑 들어있는 작은 가방과 우산뿐. 일본 피플즈 레코드 소속의 밴드들과 한국의 인디밴드들이 합동공연을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공연 타이틀은 ‘Electric Shock Live!’ 공연을 주최한 루비살롱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 홍대 앞에서 두어 차례 공연을 목격했던 그림자궁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낯선 밴드들이었다. 일본의 히구치 마키코(ヒグチ マキコ), 미리아(Myria), 트래쉬 박스(Trash box) 등도 낯선 이름들이었지만 굳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캐려들지 않은 건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어떤 선입견 없이 현장에서 목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연에 참여하는 밴드들을 나는 익명의 상태에서 집단적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더딘 발걸음 탓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야외무대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공연이 한창이었다. 대략 30여 명의 관객들이 띄엄띄엄 우산을 받쳐든 채 관람할 뿐, 대체로 한산했다. 애초에 많은 관객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비가 오는 가운데 열정을 다해 연주에 몰입하는 밴드들의 모습은 어딘가 애처로워 보였다. 이런 측은지심은 여느 클럽공연에서도 곧잘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들만의 게토에서 자족하는 게 현단계 인디음악의 특징이자 한계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인디음악의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디음악은 제도권 바깥에서 힘 있게 자생할 때 그 가치가 두드러진다. 인디밴드에게 창조성과 독립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적은 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것, 인디밴드의 조건은 그렇듯 저주와 축복이 교차하는 ‘그들만의 달콤쌉싸름한 리그’이다.

이번 공연을 익명의 상태로 체험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특정한 정보나 편향이 없는 상태에서 무더기로 만나게 되는 낯선 밴드들의 연주는 냉동고로 들어가기 직전에 피를 뚝뚝 흘리며 물컹하게 손에 잡히는 고깃덩이의 느낌과도 같다. 디테일보다는 모종의 총체적 느낌과 진동을 통해 이들의 음악은 그야말로 ‘전기충격’처럼 전달된다. 밴드들 나름의 개성이나 세밀한 특성들은 차후에 덧붙여지는 경험의 총합을 통해 형성된다. 때문에 시작부터 그들의 장단점과 스타일을 세분하면 의외로 뻔한 음악적 공식만 두드러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인디밴드들의 힘은 집단의 에너지로 번져 천천히 개별 특성들로 쪼개지며 음악적 영역을 넓혀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낯선 익명에서 출발하여 몇 번의 반복적 경험을 통해 ‘그들 자신’으로 각인된다. 애초부터 보란 듯이 이름과 얼굴부터 들이미는 밴드는 역설적이게도, 그 고유의 이름과 스타일을 쉬 잃어버린다. 적어도 십 수년 동안 클럽 공연들을 주마간산(走馬看山)하며 찾은 가장 솔직한 접근법이다.

따라서 어느 밴드의 기타 연주가 어떻고 스테이지 매너가 어떻고 음악 스타일이 어떻고 하는 평가가 우선이 되지 않는다. 예닐곱 팀 이상이 한꺼번에 등장해 서너 곡쯤 연주하고 또 교대되는 이런 공연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물론 개인 취향과 현장 분위기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각기 팀들의 특성들을 일일이 소개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미 말했듯 우산을 받쳐든 채 객석 뒤편에 서서 때로는 무심하게, 또 때로는 발장단을 맞추거나 어깨를 들썩거리며 총체적인 느낌의 추이들을 보았을 뿐이다. 강요된 억지 박수나 조작된 환호에 휩쓸림 없이 그저 편하게 흘러가는 대로, 몸이 반응하는 대로 사운드의 파동에 몸을 싣는 것. 생각은 나중에 집에 가서 하고 방금 내 몸을 스친 소리의 진동이 어떤 여음으로 쪼개지고 조합되는지 느끼는 것.

공연 중반이 지나자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만큼 빠져나가고 다시 빈자리가 채워지고 하는 가운데, 어느덧 처음보다 두 배는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공연에 합세했다. 이처럼 들고나는 소리의 홍수 속에서, 저 나름의 독립성으로 흩어졌다가 모종의 총체적 진동으로 일시적으로 규합하는 모습이 인디음악의 진정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무질서 속에서도 각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분명하게 살아있는 현장, 고의적으로 이름을 망각해버린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내 머릿속에 저절로 와 박힐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