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밋밋한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그것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꿈을 꾸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의 왕국, 월트 디즈니월드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겨냥해 만든 뮤지컬이 있다.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이야기,‘Every Story is a Love Story(모든 이야기는 다 사랑 이야기)’라고 노래를 하는 이야기, 바로 뮤지컬 <아이다>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사랑의 마술

 뮤지컬 <아이다>를 처음 봤던 건 2004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있는 어느 한 극장. 아이다는 데보라 콕스(Deborah Cox)였다. 그 당시 공연을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세상에!’라는 감탄사였다. 세상에! 온통 영어라 완벽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 세상에! 하지만 무대 위에 펼쳐지는 그림만 보고 있어도 내용을 알 수가 있어서, 세상에!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변화무쌍한 무대에, 세상에! 총천연색으로 무대를 물들이는 아름다운 색감에, 세상에! 고전적인 이야기에 현대의 팝뮤직이 어우러져, 세상에! 음악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안무와 배우들의 가창력에, 세상에!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몇 시간의 꿈을 꾼 것처럼,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하나의 마술이었다.

 그 후 9년이 지나 2013년, 서울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만난 <아이다>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 때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아이다의 브로드웨이 초연이 2000년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작품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는 작곡가 엘튼 존(Elton John)과 작사가 팀 라이스(Tim Rice) 콤비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데 모든 노래가 지금 들어도 참 세련되었다. 또, 거대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여자의 모습, 부와 오락, 허영을 강조한 화려한 패션쇼, 조명으로 아름다움을 더한 나일강변 등을 표현하는 무대와 조명 기술은 여전히 신기한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며 아프리카의 강렬한 열정과 이집트의 찬란함을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전처럼 이 공연은 눈과 귀를 만족시키며 누군가의 꿈을 몰래 엿보고 있는 것처럼 신기하고 아름답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다를 열연하는 배우가 데보라 콕스에서 차지연 배우로 바뀌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고 싶었던 디즈니

 한국에서 <아이다>가 처음 공연된 때는 2005년. 그 때는 일부러 공연을 보지 않았다. 처음의 환상이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모든 기술과 연출을 그대로 들여온다고 해도 백인과 흑인의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를 동양인 배우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엘튼 존은 아이다가 아프리카 누비아인이라는 점과 그녀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정열적인 아프리카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안무에도 아프리카인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침략국과 종속국, 주인과 노예라는 개념을 넘어 인종이 다른 두 사람이 보여주는 극적인 대립과 그 벽을 뛰어넘는 사랑의 힘, 아이다에는 그 엄청난 힘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원창작자의 의도가 약해질 게 너무 뻔했다.

 뮤지컬 <아이다>는 이집트 사령관인 라다메스, 노예로 잡혀온 아프리카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 그리고 이집트의 공주이자 라다메스의 약혼녀인 암네리스, 이 세 사람이 만들어 가는 사랑이야기이다. 드라마의 갈등도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에 있다. 굉장히 단순한 스토리라인이지만 디즈니는 이 세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이 단순한 사랑을 넘어 범인류적인 것으로 확장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은 시종일관 무대에 등장하는 눈물을 흘리는 듯한 눈 모양의 마크를 보면 더욱 더 확실해진다. 그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동자가 세계지도로 되어 있다. 마치 인간 모두의 눈을 꿰뚫으며‘We are the world’라고 외치는 것처럼.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한국 공연에서는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침략국과 종속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음악도 안무도 제 역할을 다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라이센스 뮤지컬의 한계이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 모든 아쉬움을 덮어줄 만큼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이야기가 더욱 깊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세 사람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암네리스가 외모에만 신경 쓰는 철없는 공주에서 사랑에 상처받고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강한 지도자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본능적인 사랑은 얼핏 보면 너무 뻔하긴 하다.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고, 자신과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빠져든다는 설정, 이제는 너무 흔하고 유치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사랑’이 아니던가.

사랑, 영원한 꿈속에 갇히다

 누구나 꿈꾸던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뮤지컬 <아이다>는 가슴이 시리다 못해 절절하다. 그들의 사랑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말이다. 둘이 함께 생매장을 당한다는 극적인 장치는 끔찍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켜 주는 장치로 훌륭해 보인다. 정말 꿈에서나 나올 법하지 않은가. 전생에 못 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승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게 하늘의 뜻일까, 벌을 받는 것일까
 단지 진실한 사랑을 원했던 것뿐인데
 신의 시험인 걸까, 거부할 수 없는
 우리 사랑 허락된 것은 이 순간뿐일까
 (<Written in the Stars> 중에서)

 수백억을 들여 만든 화려한 볼거리와 모든 이야기는‘다 사랑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진리, 디즈니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디즈니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공연은 사람들의 감성을 깨우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원한 꿈속에 갇힌 듯, 사람들은 <아이다>를 보고나면 이승에서 다시 만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되어 가슴 설레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못 다한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그런데 정말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동화 같은 전생에서 매우 현실적일 것 같은 지금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