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청년 세대를 소위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잃어버린, 아니 포기해야만 하는 시대에 무엇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를 갈망하기를 멈출 수 없는 존재다. 굴러 떨어질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라도 말이다. 무엇인가 갈망하기를 포기했다는 것은 아예 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갈망의 대상을 바꾸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아무리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인간은 무엇인가를 갈망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까닭이다. 대부분 갈망의 대상은 사회와 문화의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각자의 개별적이고 독특한, 자기만의 유일한 갈망을 품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연극 <미자에게는 미심쩍은 미소년이 있다>에서 미소년을 갈망하는 미자와 종교적 구원을 갈망하는 사라, 미자와의 일상을 갈망하는 영수는 그런 면에서 서로 다른 듯하지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모두 잡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갈망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인물들이다.

 <미자에게는 미심쩍은 미소년이 있다>는 일견 개성 강한 캐릭터와 과장된 연기, 들뜬 것 같은 극의 분위기, 모호한 무대 연출 등으로 인해 특이하고 독특한 면이 눈에 띄는 작품이지만, 작품 곳곳에는 이러한 보편성과 전형성을 드러내는 장치들이 곳곳에 있다. 극 중간 중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 쌍의 남녀 배우는 다양한 나이대의 각자 다른 커플을 연기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남녀 관계는 새롭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형적인 연애의 클리셰진부한 표현 혹은 상투적인 문구다. (더욱이 그들의 마지막 등장에서 여자의 이름은 주인공과 같은 미자로 밝혀진다. 그리고 미자와 헤어진 남자는 주인공 미자와 만난다.) 이들의 등장은 극의 단계를 나누는 하나의 장치임과 동시에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듯한 갈망의 대상인 사랑조차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소모될 뿐 갈망 자체를 채울 수는 없음을 드러낸다.

 이 극의 미덕은 이러한 갈망을 구원처럼 신성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구원을 바라는 것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고, 행복하다는 것은 즐겁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구원을 기다리는 사라와 미소년을 갈망하는 미자의 대비에서 드러나듯 엔터테인먼트는 예전 시대 종교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 수행한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 시대, 구원을 갈망할 수 없는 시대에 갈망의 대체재(예컨대, 이른바 ‘국민 여동생’과 같은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는 까닭이다. 오늘날 구원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산업이기에, 갈망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미자는 곗돈을 타서 모두 교회에 바친 사라를 비웃지만 그녀 역시도 갈망하는 미소년을 만나기 위해 삼십만 원의 돈을 모아야 한다. 다만 그녀가 사라와 다른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자는 극 중반에 그녀의 어머니 진순에게 인생은 고통이지만 기꺼이 살아내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갈구하는 것, 순수하고 끝없는 아름다움을 결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살아내겠다는 것은 그 벗어날 수 없는 갈망을 영원히 품고 살겠다는 의미다. 그녀가 미소년을 갈망하지 않는 순간 그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이미 예정된 실패를 알고 있고, 그녀의 갈망 역시도 하나의 소비로 전락되어 버리고 말 것을 안다. 그녀는 삼십만 원을 모아 강남 미소년 클럽에서 미소년을 만나러 가지만 결국 그도 자신이 원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미자는 미소년을 만나지만 결국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녀의 실패는 새로운 깨달음이 아니라 알고 있던 사실의 확인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자는 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무대가 배경을 거의 삭제해 버린 모호한 공간이라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미자가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인 땅콩가게와 그녀가 꿈꾸는 미소년 클럽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땅콩가게에서 땅콩이라는 실물을 팔 때, 미소년 클럽은 미소년의 시간을 판다. 미자가 바다, 즉 시간이 사라진 곳을 찾는 것은 자신이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얼핏 보아 현실과 괴리된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자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미자는 다소 그 결이 거칠기는 하지만 근래 보기 힘든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인물형이다. 인물은 현실을 놓지 않는데, 무대는 현실을 놓아버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면에서나, 극의 호흡이 너무 가파르다는 점 등에서 극이 다소 들뜬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미자에게는 미심쩍은 미소년이 있다>는 인물의 힘만으로도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