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면 날개의 밀랍이 녹을 테고,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네 날개를 적실 거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명장(名匠) 다이달로스는 자신이 만든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들 이카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신이 난 이카로스는 자꾸만 태양 가까이로 날아올라 결국 바다에 추락하고 만다. 반면에 다이달로스는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 사람들은 주로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하면서 밀랍 날개를 탓하곤 하지만 정작 다이달로스가 말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높이에 대해서는 곧잘 잊어버린다.

 <먼저 생각하는 자-프로메테우스의 불>(정영두 안무, 두댄스씨어터 신작)은 기술과 문명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인간이 균형과 조화의 감각을 회복해가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다이달로스처럼 인간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작품의 씨앗은 정영두 안무가가 2011년 <히로시마-합천: 두 도시를 둘러싼 전람회> (스튜디오 다락, 2011.10.14~2011.10.15)이라는 공연을 준비하던 중 발아했다. 구체적인 사회 현안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이어 온 그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다녀오면서 과학기술의 위험성에 눈을 뜨고 고민을 시작했던 것. 2010년 <제7의 인간>(엘지아트센터, 2010.3.10~3.11)에 이주노동자의 삶과 아울러 떠나라고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정영두는 모두가 떠나고 텅 비어버린 후쿠시마의 풍경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연은 총 여덟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크게 보면 위험에 빠진 인간이 춤을 추는 장, 조화를 이룬 인간이 춤을 추는 장으로 나뉘어 있다.

위험에 빠진 인간

 공연은 우선 기계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가 애플 컴퓨터의 목소리로 변신해서 인간의 약한 면들을 읊는다. “열 달이나 뱃속에 있다가 나왔으면 바로 서고 걸을 수는 있어야하는 것 아니냐”는 기계의 말에 관객들은 웃는다. 아랫도리만 가린 남자의 머리 위에서 붉은 불빛의 얼굴은 꽤 오랫동안 인간에 대해 말하는데 이 목소리는 마치 늘어진 테이프처럼 혹은 이카로스의 밀랍날개처럼 천천히 녹아내리는 소리로 바뀐다. 관객들은 재밌는 내용을 듣고 웃어서 그런지 잠깐 사이에 기계의 목소리에 친숙해진 듯 보였고 그 친숙해진 목소리가 뭉개져가자 공연의 분위기는 순간 섬뜩해졌다.

 다른 장면에선 두 명의 여자 무용수가 종달새처럼 귀엽고 예쁘게 움직인다. 연신 웃던 한 무용수는 다른 무용수를 끌어안고 다리를 양쪽으로 쭉 펴거나 목을 깨무는 몸짓을 이어간다. 웃는 무용수는 점점 더 힘이 세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목을 내주었던 무용수가 쓰러지고, 남은 무용수는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신이 나서 정면을 본다. 이때 무대에 설치된 블라인드 형태의 스크린에 그녀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떠오른다. 시간차를 두고 몸이 하나씩 불어나 스크린에서 여러 개의 몸이 춤을 추면 관객은 더 이상 실제 무용수를 보려고 애쓰지 않게 된다. 이제는 아예 엘지아트센터 무대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스크린에 무용수의 모습이 거대하게 찍힌다. 흡사 앨리스가 알약을 먹고 커져버린 것만 같다. 여럿으로 복제되었다가 커다랗게 뻥튀기가 된 무용수의 모습 앞에서 실제 무용수는 갑자기 작고 무력한 존재가 돼버린다. 무용수는 자신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스크린 뒤로 들어간다. 거대한 영상이 무용수의 실제 몸을 삼켜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복제, 변형하고 상호작용하는 미디어아트의 특성을 활용해서 인간이 복제되는 과정을 춤으로 공연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스크린 안에서 허리를 숙이며 웃던 커다란 이미지는 객석을 압도했다. 책도 크게 만들어졌다. 무용수들은 펼친 책을 얼굴에 덮어 쓰고, 벽돌처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또 그 책을 피하려고 몸을 굴려 피하고, 책에서 도망가려다가 다시 책 위에 붙들려 서고, 책을 등에 지고, 책의 새빨간 혀(책갈피)를 매만진다. 이때 책은 디딤돌이자 감옥이다. 오브제를 활용한 무용수들의 다양한 움직임이 흥미롭다. 하지만 문명 혹은 과도한 지식을 비유하는 책의 그 명시적인 물성 때문에 장면은 오히려 설명적이 되어버렸다. 반면 감각적인 몸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 장면은 여섯 번째 장면이다. 군무에서 광기와 욕망에 사로잡힌 군중이 보였다. 무용수들은 갖가지 욕망에 휘둘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처럼 보였고 무용수들이 호흡하는 소리, 인디언처럼 뭔가 찾는 소리가 동굴에서처럼 울려 퍼질 때마다 무대에는 강렬하게 생동하는 인간이 떠올랐다.

조화를 이룬 인간

 여신이 춤을 춘다. 무용수의 다리를 휘감은 긴 치마가 하늘거리고 미러볼에 반사된 빛이 극장 전체에 반짝이는 무늬를 묻힌다. 이 장면은 안드로이드 로이 베티를 추모하는 장면과 대비를 이루면서 그 빛의 성격을 드러낸다. 로이 베티는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원작이기도 한, 필립 딕(Philip K. Dick)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이다. 붕대로 몸을 감은 듯한 의상을 입은 여자는 초록색 조명 앞에서 움직인다. 버려지는 기계의 처지를 춤추다가 무용수가 잠시 멈추곤 할 때 서글프고 스산한 정서가 정지한 순간을 채웠다. 여자가 마침내 사각의 공간으로부터 나와 정지하면 무대는 서서히 어두워지고 작고 빨간 불빛만이 남는다. 그 불빛은 자기를 증명하고픈 안드로이드의 마지막 호흡이거나 어떤 위험 신호로 보였다. 반면에 우아하게 춤추던 여신의 장면에서 극장 천정에 아롱진 무늬는 빨간 불빛과 대비되어 별빛으로 여겨졌다. 그 별빛은 인간이 잃어버린 신화적인 메타포를 향해 반짝인다. 여신이 춤추는 곳은 물질의 세상이 아니라 빛의 세상인 것이다.

 여신의 별빛은 마지막 장면과 짝을 이루기도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전체적으로 동그라미의 이미지가 돋보였는데 인간이 잃었던 것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춤으로 그리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몸의 한 축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동작을 많이 보여줬고 이를 위에서 내려다 본 시선의 영상이 무대 뒷벽에 비춰져, 장면 전체가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 사람씩 독무를 추다가 다시 같은 동작의 군무에 합류하는 리듬은 보는 이를 즐겁게 했다. 이 조화로운 군무 이전에 안드로이드 로이 베티가 배치됨으로써 공연은 기계 생명체에 대한 윤리적 시선으로 전환점을 만들기도 한다. 기계에게서 생명을 읽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기계를 동정하는 것인가, 기계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인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을 닮은 것’에 몸과 춤으로 대응하고 조화와 질서의 장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춤이었다. 무용수들 간에, 또 무용수와 안무가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의 힘이 객석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료의 무게를 받아 안으면서 균형을 잡고 눕히고 솟아오르게 하고, 쓰러지는 무용수의 머리를 발등으로 받는 등 동작 하나하나에 공력이 스며있었다. 빈 무대였기 때문에 은은하게 변화하는 조명도 돋보였고 우주의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음악은 공연에 통일감을 주었다. 90분에 이르는 상연 시간 때문인지 후반에는 무용수들이 다소 지쳐보였지만 그들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장면 안에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17일에는 공연이 끝나고 안무가와 관객들이 대화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어느 인류생태학자는 이 공연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으로 넓혀졌다”며 왜 구체적인 지점에서 바로 춤을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고, 안무가는 “뜨거운 이슈를 다루는 한편 그것을 춤만이 가지는 힘으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그것이 숙제이자 고민이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관객은 스크린에 복제된 거대한 무용수의 모습을 보다가 실제 무용수를 보니 슬픈 감정이 일어났다고 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작에 관해 질문한 관객 덕분에 로켓, 케이블카, 나뭇잎에 해당하는 일본 수화가 춤에 활용된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정영두 안무가는 “무용을 하면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을 보는 것 같다”며 단 이틀간의 공연 기간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