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모르는 관객들과 함께 우르르 극장을 빠져 나오다 몇 가지 말을 주워듣게 되었다. 첫 번째는 지하극장의 유리문을 벌컥 열어젖히던 남자의 “5분이면 될 것 같은 말을 반복해.”였다. 두 번째는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앞에서 들려오던 “정말 예술적이다.”, 그리고 그 말의 대답처럼 연달아 뒤에서 들렸던 말이 “내 이해력을 좀 더 높여야할 것 같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공연을 봤던 친구의 반응은 이러했다. “말이 없으니까 재밌더라.”

이 네 가지 각기 다른 말들이 한 공연의 평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함께 공연을 본 필자로서는 공연의 몇 가지 단면들에 대한 정확한 반응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 네 가지 즉각적이고도 단편적인 촌평들을 나름대로 해설해보는 것으로 공연의 리뷰를 대신하려고 한다.

말이 없어서 재미있었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나타나 서로를 열렬히 끌어안자 번개가 친다. 또 다른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나고 네 명은 계속해서 섞이며 서로가 서로를 우연처럼 만날 때마다 끌어안고 떨어지길 반복한다. 넷이서 온 힘을 다해 진지하게 달리고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상대를 끌어안는 행위에서 사뭇 영웅적 분위기까지 풍겨낸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끌어안으며 번개를 만들어냈던 사람들은 이제 모든 편리가 압축된 핸드폰과 연결되면서 완전히 다른 풍경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더 폰>은 말을 전해주는 기계인 휴대폰을 제재로 다루면서 오히려 최대한 자제한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선택을 하였다. 말을 배제한 체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모습이 회화적으로 보이자 개개인의 드라마는 걸러지고 전화기와 관계된 사람들의 재미난 습성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내 이해력을 더 높여야할 것 같아

그러나 마치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듯 호모 스마트쿠스^{스마트 시대의 기기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신인류}를 보여주던 <더 폰>은 공연의 중반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적 시선을 벗어나 버린다. 휴대폰을 모티브로 삼아 보여준 ‘발전된’ 상황들은 인간들의 심리와 정신을 병리적인 시선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여자 친구와 문자를 통해 사랑을 확인한 남자는 전화를 끊자,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남자들과 유흥을 즐기고 있을 거라는 망상과 공포에 휩싸인다. 리플릿에 쓰여 있듯 ‘떨어져 있기에 찾아오는 망상과 공포’는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수위를 넘어선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상황이다. 상쾌했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갑자기 <사랑과 전쟁> 채널로 바뀐 것이다. 뒤이은 ‘내장의 시간-우리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에서 관객은 핸드폰과 심장의 관계라든가 핸드폰과 십이지장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아마도 무대 위에서 몸의 내부에 관한 어떤 진실을 표현하고 있었겠지만, 이해력을 높여야할 것 같다던 필자 뒤의 남자와 필자, 적어도 이 두 사람은 놓치고 말았다.

정말 예술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 앞의 남자는 정말 예술적이라는 극찬을 던졌다. 그리고 필자는 <더 폰>의 정말 예술적인 지점이 만든 사람들의 앙상블에 있다고 본다.(연출 홍은지, 출연 임소영, 권영호, 이준영, 신주아, 미디어 김지현, 사운드 도재명)

다원예술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영상과 사운드가 공연에 있어서 이제는 익숙한 재료가 되어 더 이상 신선함을 주지는 못하고, 그러나 그렇게 보편화되어서 사용하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잘 쓰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더 폰>의 영상과 사운드는 배우만큼의 캐릭터를 가지고 큰 비중을 소화하며 적극적으로 뚜렷이 존재하고 있었던 점에서 훌륭했다. 물론 그 두 캐릭터의 연기력도 훌륭했으나, 공동 구성으로서의 작가로서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본다.

움직임도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는 점이 좋았다. 구체적인 단서들로부터 출발한 구상적이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한 몸짓들은 공연 내내 또렷한 말을 들려주었다.

5분이면

<더 폰>에서 다루고 있듯이 우리는 아침 알람부터 잠을 자기 전 ‘잘 자’라는 애인의 문자까지, 혹시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시달린다면 꿈에서까지 24시간 핸드폰과 얽혀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남자는 5분 만에 끝날 얘기라는 감상을 내던진 것일까?

이유는 <더 폰>이 공연 중간에 내비친 단순한 윤리적 판단 때문이라고 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반부의 내셔널지오그래픽적 <더 폰>은 편리하고 영리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불편하고 멍청한 호모 스마트쿠스를 보여줬다. 우리는 호모 스마트쿠스들이 자신들이 발명한 스마트폰에 오히려 묶이고 제어당하고 끌려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공감하며 관찰한다. 그런데 <사랑과 전쟁>의 시선으로 바뀐 <더 폰>의 핸드폰은 인간들의 ‘진정한’ 소통에 도움이 안 되는 ‘나쁜’ 핸드폰이 되어버렸다.

핸드폰은 나쁩니다, 땅.땅.땅. 윤리적 판단을 내려버리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그 남자 관객은 핸드폰에게 선고된 판결에 반발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대변해보자면, ‘스마트폰은 죄가 없다! 단지 지나치게 편리하고 지나치게 영리할 뿐이다!’

어떤 휴대폰 광고의 카피가 생각난다. “Talk, Play, Love.” 대화의 수단이자 놀이의 대상이 되어줄 것이며 사랑까지도 이루어주겠다는 휴대폰의 포부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는 그 영리하고 편리한 스마트폰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밑 빠진 욕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