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난히 일찍 더위를 탄다. 부평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이쯤이면 뙤약볕 아래서 펼치는 풍물놀이가 쉽지는 않을 터. 하는 사람도 그렇고,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구경꾼도 많지만 풍물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8차선 아스팔트가 꽹과리에 어우러진 진놀이, 구정놀이에 벌겋게 달아오른다.

현대 도시민들이 그리 즐기질 않을 풍물이 부평에서는 축제 큰 마당으로 11년 해를 난다. 얘기에 따르면, 작년엔 80여만 명의 방문객이 출입을 했다고. 내심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이만큼 오기까지 야무진 살림꾼들이 있었을 터. 처음엔 그야말로 ‘한번 해보자!’는 일념으로 불과 몇 사람이, 시간이 지나며 관민이 모두 힘을 합쳐 이루어낸 성대함이다. 대단하다. 1,000년 농경문화에 바탕한 억척스런 생존 투지가 시ㆍ공을 격하고 21세기 도심에서 열기를 내뿜는다.

개인적으로 풍물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 아주 어려서이다. 동네에 판이 벌어지면 범상치 않은 복장과 행동의 잡색에 넋을 놓았다. 소리는 감동을 주지 못했다. 사연인 즉, 여린 얼굴에 대고 꽹과리를 후려쳤던 마을 상쇠 영감 덕에 아직도 ‘꽹’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대도시 시류의 변화에 따라 보통사람들의 마음엔 팝문화가 잦아들고, 풍물은 시골, 노인, 정치판, 막걸리판의 전유물로 폄하되었다. 그런데 부평에서는 사뭇 다르다. 째즈ㆍ클래식을 가로지르는 소리, 오방색 단을 살짝 풀어 헤친 요염한 색 그리고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젊은이들의 몸에서 쏟아지는 역동들이 온 마당을 가득 채운다. 그만큼 구경꾼들도 다양하다. 60, 70대 노인에서부터 10살이 채 안 된 아이와 부모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모인다. ‘저렇게 예쁜 여자애가 손에 꽹과리를!’ 하고 탄성을 발하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으면 모든 구경꾼들이 약속한 듯이 큰 갈채를 보낸다. 그쯤이면 색, 소리, 몸사위의 구분이 없어진다. 아프리카, 일본, 타이완, 한국의 구별도 사라지고, 부평구 1동·2동의 경계도 하나로 녹아든다. 한 마디로 형형색색이 어지러이 넘실대는 축제 큰 마당만 있을 뿐이다.

지난 10년이 도심에 풍물판을 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100년 부평 문화역사의 큰 틀을 구축해 나가는 시기로 점쳐 본다. 물론 한 일보다 할 일이 더 많다. 누적이 아닌 한 순간 관람객 10만 단위의 큰 판을 1,000억 원 대의 직접 부가가치 창출로까지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하나로 움직이는 조직, 연습과 훈련의 용맹정진, 아쉽지 않은 예산, 보다 넉넉한 관민의 이해와 관심들 외에 뼈를 깎는 연구ㆍ개발 과정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전과 성과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큰 판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에게 비전과 성과가 수반되어야 한다. 반드시 부귀영화일 필요는 없다. ‘돈만 많으면 딴따라인들 어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00년처럼 앞으로 이 고장을 100년, 1,000년 새로이 지켜나가려면 돈 이상의 무엇이 주어져야 한다.

부평 선전꾼이라 할까 싶어, 한 가지 정도는 토로한다. 부평풍물대축제의 미래는, 풍물을 펼쳐 보이는 이들에게도 위엄과 명예가 확보될 때 가능하다. 그때 비로소 1,000억 원 대를 훌쩍 뛰어넘을 ‘축제의 문화산업화’로의 초석이 마련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돈’에 멍든 우리 대중문화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향후 100년 우리 사회에 ‘기품있는 전통문화도시’의 신기원을 이루어 낼지도 모를 인천부평풍물대축제는 이제 그 철학과 기본틀 위에서 차분하고도 성숙한 매무새를 가다듬어 나갈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지난 6일 간 나는 부평 아스팔트 난장에 선이든 악이든 초월적 신명이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악령을 쫓는 마법의 꽹과리 소리가 인간의 영혼을 앗아갔다. 서로를 밟아 죽일지도 모를 만큼 굽이굽이 밀려드는 사람 또 사람의 물결은 뭔가에 홀려 정신을 잃은 엑스타제(extase) 그 자체였다. 그 주술이 1,000년의 고단함과 또 다른 1,000년의 지난을 빗겨가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를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