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우리나라의 오래된 사랑 이야기로 원전을 읽지 않은 사람도 내용을 알고 있다. 많이 알려진 내용의 작품은 유명한 만큼 새롭게 해석해 보편적 설득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어려움은 고전일 경우 한층 더 심해진다. 그럼에도 고전에 스며있는 이야기의 힘과 보편성은 수많은 버전의 재해석을 시도하게 한다.

2011년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에 이어, 2014년 ‘국립창극단 세계거장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역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며 판소리 <춘향가>를 변주한다. 연극과 오페라를 넘나들며 세계적 거장반열에 올랐다는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과 국립창극단의 만남은 공연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하나의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고 작품마다 새롭고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한다는 안드레이 서반이 과연 우리의 전통 판소리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창극과 어떻게 만나 우리에게 얼마나 <다른 춘향>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했다.

공연을 보고나니, 안드레이 서반이 연출한 춘향은 분명히 <다른 춘향>이었다. 그러나 ‘다른’이라는 말이 어울린 것은 표현 방식이었고, 그 방식에 담아낸 <춘향>의 해석은 ‘다르다’는 수식어로 넘어가기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우리 문화연구가 부족한 거친 해석

<춘향전>은 몽룡을 향한 일편단심 춘향의 사랑이 중심이다. 기생 월매의 딸이지만 양반의 핏줄인 춘향은 이몽룡과 만난 후, 결혼과 이별, 임관사또 변학도의 수청거부로 인한 고난과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이몽룡과의 재회와 해피엔딩이 주요 줄거리다. 원전에는 청춘남녀의 사랑, 출신성분으로 인한 사랑의 장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패권력에 저항하는 춘향의 고난, 고난의 극복과 행복한 결말이 판소리를 들으며 이야기의 재미를 따라가도록 하는 힘이 포진되어 있다. 이런 원전의 힘 덕분에 <춘향전>은 오랜 세월 동안 판소리, 연극, 창극, 무용, 영화, TV드라마 등 여러 매체와 버전으로 관객과 만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춘향의 일편단심은 오늘날 쉽게 변하는 사랑과 비교되며 먼 옛날 사랑 이야기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춘향전>을 서양 연출가인 안드레이 서반이 동시대적 춘향으로 기존의 춘향과 <다른 춘향>을 보여주고자 했다.

안드레이 서반은 춘향을 “사랑이라는 이상을 믿은 영웅”으로 보고 “춘향은 그녀 자신으로 남아있기 위해 끝까지 간다”고 했다. 그가 본 춘향의 사랑은 가장 고결하고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이지 이몽룡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춘향이 끝까지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데아”에 자기 자신을 바치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데아를 위해 춘향이 변학도의 불의에 맞서 승리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시킨 현대적 해석은 과거에서 현대로 매끄럽게 연결되지도 결합되지도 못했다. 춘향이 변학도에게 저항할 때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현재 문제 상황은 춘향의 이야기와 겉돌았다. 특히 춘향이 변학도의 부당한 수청 요구를 거절해 감옥에 갇혀 고통당하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모두 알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월매가 한탄만 하는 행동은 오늘과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공연의 배경은 초반부터 몽룡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장면을 통해 몽룡과 춘향이 IT 강국인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동네를 떠들썩하게 한 변학도의 부정부패와 성 접대 강요에 해당하는 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인터넷과 SNS를 통해 고발되고, 변학도의 파멸은 검사가 된 몽룡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파급력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차라리 오늘과 가깝게 다가왔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겉도는 이음매

안드레이 서반은 춘향을 동시대 관객들에게 가깝게 하기 위해 현대적 배경과 상황으로 원전의 시간이동을 시도한다. 큰 줄거리는 원작과 다르지 않게 진행되지만, 시대배경은 현재로 이동되고, 무대와 의상 또한 현대적으로 바뀐다. 무대 좌우에 검은색 나선형 철골계단을 설치하고, 무대 전면에 영상을 담아낼 스크린이 있다. 무대에 등장한 배우들은 현대의상을 입어 공연의 배경이 이미 옛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렸다. 공연 초반부에 운동화 신은 춘향, 캐주얼 의상에 노트북과 스마트폰 사용하는 몽룡, 패딩조끼 입은 방자의 등장은 충분히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대 위에 오늘날의 몽룡과 춘향이 있다면, 벽면의 스크린에는 판소리 춘향가에 어울리는 한복 차림의 춘향과 몽룡의 영상이 투사되었다. 서반은 영상 속 과거와 무대 위 현대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통 판소리 춘향가와 현대 창극 춘향가를 같이 보게 했다. 그의 시도는 현대적인 동시에 색다른 춘향을 기대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며 색다른 방식의 <춘향전>을 보여주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안에 담긴 내용과 해석은 표현방식과 자주 겉돌았고 그 이음매 역시 거칠고 때로는 억지스럽게 다가왔다.

서반은 춘향을 사랑이라는 이상을 지키려는 영웅으로 보며 몽룡을 향한 사랑보다는 사랑이라는 이상 그 자체를 중요시한 춘향을 높이 평가했다. 서반의 해석대로라면 춘향이 사랑한 몽룡과 사랑이라는 이상은 별개로 구분된다. 그렇기에 공연의 말미에 죄수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은 백발의 춘향과 그 뒤에 서 있는 양복 입은 젊은 몽룡의 모습은 춘향전의 결말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그 해석이 공연 안에서 큰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공연말미에 춘향은 불의에 맞서 정의가 승리하게 했고, 몽룡이 춘향에게 달려오게 한 힘은 무엇일까를 묻지만 그 의미가 강렬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수확은 창극의 현대적 리듬화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은 우리말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달라진 춘향’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나, 춘향전을 알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른 춘향>이 아니라 ‘이상하게 달라진 춘향’으로 다가왔다. 이 공연이 ‘새롭게 달라진 춘향’이 되려면 우리 문화연구가 부족한 거친 해석을 정교하게 다듬고 과거와 현재의 이음매를 매끄럽게 해야 하는 작업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안드레이 서반과 국립창극단 배우들은 “춘향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관객과 소통하는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요새의 말로 전달할 수 있을까 질릴 정도로 오랜 토론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공연은 안드레이 서반이 각색, 연출했지만 안재승이 윤색했음으로 우리 측 관계자도 작품해석에 협력한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작품 해석이 과거와 오늘을 잇는 측면에서 원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표면적으로 떼어다 연결했을 뿐 서로 녹아들게 하지 못한 것은 우리 문화 연구의 부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을 통한 큰 수확은 있었다. 서반이 연출한 창극은 우리의 판소리가 현대적 움직임과 의상과 리듬과도 잘 결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용이 겉돈 것과는 달리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판소리 능력은 뛰어났고, 한복을 벗어난 창극배우들의 움직임은 자유로웠다. 배우들은 옷을 현대의상으로 갈아입은 동시에 움직임도 현대적으로 변주했다. 공연에서 전통 판소리가 현대적 감각과 리듬에 잘 어울렸던 것처럼 내용도 과거와 현재가 잘 녹아들게 보완한다면 <다른 춘향>은 창극의 현대화에 좋은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