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水仁線), 하고 누가 부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싸해진다. 내가 만났던 그 몇 해 동안의 협궤열차는 퇴역한 게 아니라 아직도 어느 서해 변두리를 에돌고 있는 듯 여겨진다. 모르긴 몰라도 은밀한 현역이다. 이제는 스스로 기관사과 되어 궤도마저 없이 떠돌고 있을 듯한 협궤열차.

 늙었지만 영원한 첫사랑의 애인만 같은, 시대의 옆구리를 혹은 등짝을 긁어만 주던 등글개첩 같은, 그러면서 외돌토리인 변두리 사람들에게 생활과 소풍의 기운을 동시에 안겨주던 살가운 거추꾼 같은, 가끔 멀리서 강퍅한 삶에 등 떠밀려 온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인생 궐공(厥公)들에게 소박한 경난꾼이 되어주던 협궤열차.
그러니 수인선은 적어도 1937년에 개통되고 1995년에 퇴역한 이 협궤열차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할 수가 없다. 나는 그 도중에 은밀하고 쓸쓸하고 황량한 애인이 아니었나. 적어도 수인선 협궤열차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그 기억을 멀리에 둘 수가 없다. 수인선 협궤는 모두의 기억 속에 아득하고 아늑하며 그립다.

 그 오롯한 그리움의 풍물은 서민들의 생활과 더불어 고스란히 내면성으로 갈마들었다. 즉 수원에서 인천 송도까지 46.9km의 서해의 생활과 풍광을 거느리고 다니던 서정성은 질박하고 소슬하다. 꼬마기차가 철도박물관으로 은퇴하고 협궤의 기차 레일은 고철로 거둬졌어도, 반세기 넘게 수인선이 드리웠던 인상은 쉬 사라질 수 없었다. 나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협궤열차를 몸소 겪었던 이들은 열차의 사라짐으로 오히려 더 완연해지는 마음속의 수인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시속 300km를 넘는 고속열차가 서울과 부산을 채 몇 시간도 안 돼 주파한다. 그런 시대에 협궤열차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 켠에서 눈물의 안개가 싸하게 피어오른다. 이것이 나의 유난스러운 청승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퇴역한 협궤열차 수인선이 동시대를 사는 여러 사람들 가슴에 아직도 협궤의 마음 길을 다 거둬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수인선, 두 번째 안녕展>은 수인선 협궤열차에 대한 단순한 기념물의 수습과 회고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폐철된 지 이십 여 년 가까이 수인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현역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을 닮은 기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르고 세련된 외양과 품격을 갖춘 최고 사양의 열차가 등장하고 또 등장할 것이라 해도, 수인선 협궤열차와 가잘빌 수 없는 그간의 아우라가 있다.

 기획전이 “수인선, 두 번째 안녕”이라는 제목을 갖춘 이면에는 수인선 협궤열차와의 정신적 혹은 정서적 해후의 뉘앙스가 돌올하다. 1995년 수인선이 떠났을 때, 아쉬운 안녕으로 우리는 물리적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2012년 수인선이 복선전철화로 일부 구간이 개통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수인선을 작별이 아닌 정서적 만남으로 재장구쳤다. 수인선을 대하는 안녕의 뉘앙스가 사뭇 달라졌다.

 현실 속의 옛 수인선 협궤열차는 없어졌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면 왠지 다시 기적을 울리며 등장할 것만 같다. 여기에는 단순한 추억에의 향수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단순한 향수 너머의 인간적인 정서와 체취가 담겨있는 수인선 협궤열차는 분명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얼(婚)로 여전히 아삼하고 얼얼하다. 비록 고철이 된 협궤열차와 협궤의 레일은 낙백(落魄)한 처지이나 그건 조만간 부활의 그루터기가 될 요량이다. 요즘 말로 수인선 협궤열차는 훌륭한 콘텐츠가 여실하다. 수인선이라는 문화적 빙의(憑依)는, 외양과 시스템을 달리하여 얼마든지 새로운 수인선에 골자로 안쳐질 것이다.

 이번 수인선 기획전의 뉘앙스는 사라진,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진작하는 의미만이 아니라, 조만간 미래로부터 찾아올 수인선에 대한 기시감(旣視感)을 옛일로부터 추수하는 흥미로운 발견이다.

 수인선은 서해 연안의 염전과 갯벌과 취락, 산야를 고루 에두르며 당대의 서민층들의 손발이 돼주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수인선은 사람들의 부름에 가장 적합한 귀를 가진 철마였다. 장삼이사 누구나 이 기차에 발을 올리고 짐을 얹었다.

 기차는 사람들 여사여사한 사정에 따라 버스처럼 서기도 했던가 보다. 역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능두듯 출발에 여유를 부리기도 했던가 보다. 건널목에서 트럭과 충돌해 오히려 전복된 치욕은 오히려 사람들의 비웃음 대신 사랑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시대에 불려간다. 그러나 시대가 다시 부르고 싶은 기차도 있는 법이 아닐까. 물리적으로 작별했으나 결코 심정적으로 작별한 적이 없는 기차. 수인선 협궤열차를 불러보는 이유는 이제 작별의 배웅이 아니라 만남의 마중이 되어야 한다. 전시된 여러 기록물과 관련 전시물들은 수인선과 함께 했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 어린 보고서이자 부활할 수인선에 대한 서민적인 정서와 얼의 대물림과 주문을 담고 있다. 그래, 나는 가끔 기우뚱거리며 그 하루의 마지막 꼬마기차가 다녔던 작고 소슬한 간이역 이름을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왠지 텅 빈 가슴에 여우별이라도 스칠 듯하다.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수원과 인천을 제외한 역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남동(南洞)-논현(論峴)-달월(達月)-군자(君子)-원곡(元谷)-고잔(古棧)-일리(一里)-사리(四里)-야목(野牧)-어천(漁川)-고색(古索). 그러고 보니, 사람이 살았던, 지상에 내려앉은 별자리가 아닐까.

 수인선 협궤열차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계절과 시절에 따라 별자리가 바뀌듯 수인선은 그 고유한 문화적 얼, 즉 협궤열차만이 지닌 유무형의 문화를 콘텐츠 삼아 돌아올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부르는 안녕은 영원한 기적을 울리며 달리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