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누구에게나 설렘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배나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기에 마치 외국 여행이라도 하는 듯 들뜬 마음을 가지고 찾는 곳이다. 제주도는 산과 바다를 함께 보고 이국적인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찾는다. 요즘은 한라산과 바다를 보러오는 것은 기본이고, 원래는 제주도의 전통 마을길을 가리키는 말인 ‘올레길’을 걷고자 찾아오는 이들도 굉장하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휴식을 즐기려는 인파가 공항과 항구를 가득 채운다.

 제주도는 사실 이런 자연환경 못지않게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잘 갖춰진 곳이다. 어딜 가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작고 아담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고 찾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제주 시내에서 한라산 중턱에 있는 ‘신비의 도로’로 더 유명한 1,100도로로 접어드는 초입 연동에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있다. 한라산 중턱의 한적한 숲길 옆에 자리 잡은 제주도립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누가 찾아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으려는 듯 숲 속에 소리 없이 자리 잡은 것 같지만, 늘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관람객이 찾지 않는다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곳에 있다. 그러나 1년 내내 관람객을 부르는 목소리가 거세고, 지나가던 이의 눈길을 잡는 즐거운 전시가 준비되어 있어 관람객들을 불러 모은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길손을 사로잡을 만한 전시가 마련되었다. 다소 봄볕이 차갑던 3월 7일에 개막해 5월 6일까지 두 달 동안 여는 “인도의 신화와 민화이야기”라는 전시이다. 이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의 해외미술 특별기획전으로 준비된 것이다. 전시 내용은 전시회 명칭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인도의 미술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인도 하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과 불교와 힌두교,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와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까지는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이상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주저주저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뭔가 아는 것이 이것저것 많을 것 같은데 막상 아는 것이 없는 나라가 인도이다. 인도는 불교가 발생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인도는 힌두교의 강렬한 색채가 짙게 배어있는 곳이다. 막연히 생각하던 인도문화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인도의 속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인도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전시가    <인도의 신화와 민화이야기展>이다.

 전시는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에 답을 줄 수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고,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인도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힌두교의 여러 신을 소재로 한 조각과 회화 작품은 인도인의 사유와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힌두교의 많은 신들을 대표하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와 보존의 신 비슈누, 파괴와 재생의 신 시바, 그리고 시바의 아들로 부와 명예의 신인 가네샤 등을 주제로 한 조각품들은 전시장의 들머리를 차지하며 관람객들에게 이국적인 모습으로 신선함과 경이로운 자극을 준다.

 외세의 침략을 크게 받지 않아 힌두교의 전통을 비교적 잘 보존한 인도 남부지방의 민화들은 섬세하고 정교한 채색을 자랑한다. 브라흐마의 탄생을 그린 그림은 불교가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한다. 화폭을 적절히 분할해 신들의 이야기를 한 화면에 모두 담은 그림들은 눈으로 읽는 서사시이다.

 인도 동부 마두바니 지역의 그림들은 힌두교의 신들과 자연 풍경을 그린 여인들의 작품들이다. 원색을 사용하여 화면을 가득 매웠으나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림을 보노라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듯하다.

 왈리족의 민화는 결혼식과 추수, 축제의 한 장면, 마을 풍경과 그들의 구전 설화 등을 소똥을 발라 바탕색을 마련한 천과 벽에 흰쌀가루를 이용하여 그린 것이다. 단순하지만 규칙성이 있고, 흰색이 주는 생동감이 화면 속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그대로 묻어난다. 어쩌면 판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단순성은 마치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보는 것 같다. 원시미술의 살아있는 화석이 인도에서 왈리족의 민화로 남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와 더불어 돋보기를 보고 그렸음직한 세밀화들은 작은 화면 속에서 인도회화의 오래된 전통과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의 토양 아래 다양한 이국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킨 인도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인도미술사를 전공한 제주대 미술학과 하진희 교수의 개인 소장품들로 채운 것이다. 그녀가 30여 년에 걸쳐 인도에서 수집해 온 작품들 중에서 인도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들이 전시회에 나왔다. 2009년 청계천문화관과 충북대학교 박물관, 2011년 국립민속박물관과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이미 동일한 주제의 전시를 연 적이 있으나, 2012년 제주도립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한결 친근한 전시이다.

 전시는 보여주려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관람객에게 전달된다. 이 전시는 관람객을 배려한 전시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먼저 학예사가 가장 꺼려하는 것 중의 하나인 조도 문제를 해결했다. 전시품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관람객들에게 불평의 대상인 어두컴컴한 전시장 환경을 버렸다.
관람객들이 자연광과 같은 밝은 조명 아래서 시원하게 전시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억지로 동선을 강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넓은 공간에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여 관람자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했다. 발길 가는대로 돌아다니며 봐도 좋도록 자유롭게 동선을 풀어헤쳐서 보여주면서 꼭 뭐라도 가르치려는 학예사의 욕심을 없앴다.

 전시 설명도 쉬운 문장을 짤막하게 전시품 옆에 적어 놓았다.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이루어진 설명문은 제주도를 찾는 외국인들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