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저널리즘(photojournalism)1의 정수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그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20세기 주요 전쟁(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인도차이나전쟁 등)의 편린들과 마주할 수 있는 “Slightly Out of Focus”로버트 카파의 유고집 제목 사진展이 개최되었다.

카파의 사진작품들과 유고집, 육필원고로 구성된 전시회는 그의 데뷔작, <레온 트로츠키의 강연회(덴마크 코펜하겐, 1932년 11월 27일)>에서부터 그의 최후 사진인 <인도차이나전쟁(1954년 5월 25일)>까지 그의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일괄한다. ‘포토저널리즘 신화의 탄생’, ‘2차 세계대전’, ‘자유로운 보헤미안’, ‘전설이 된 사진가’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 그 중 백미는 단연 카파의 전쟁사진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의 죽음을 포착한  <병사의 죽음(스페인 세로 무리아노의 코르도바 전선, 1936년 9월 5일)>은 현재까지 제작된 전쟁사진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담은 다큐사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프랑스 오마하 해변의 빗발치는 폭격의 전율을 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프랑스 오마하 해변, 1944년 6월 6일)>은 카메라의 떨림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가를 증언한다. 이외 2차 세계대전 승리의 환희를 기록한 <승리의 행진(프랑스 샹젤리제 거리, 1944년 8월 26일)>, 독일 저격병의 총에 맞은 미군의 죽음을 촬영한 <마지막 중요작전(독일 라이프치히, 1945년 4월 18일)>, 군사훈련 중인 중국 여성들을 기록한 <장제스 국민정부의 젊은 여성군인(중국 한커우, 1938년 3월)> 등을 통해 카파가 추구했던 포토저널리즘의 특질, 즉 현장의 사실성을 최우선으로 대상에 가능한 가까이 접근하여 촬영하는 작가로서의 정신과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소위 카파이즘(Capaism)으로 회자되는 예술가로서의 사진구도에 대한 심미안과 저널리스트로서의 현실 참여정신을 온전히 반영한 작품 선별이 돋보이는 전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 카파가 동료 작가들에게 종종 충고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이 언명은 카메라와 현실이 대면했을 때 카파가 고수했던 관점과 태도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관찰자로서 현실의 사건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 간섭하는 방식을 선호했던 카파. 그에게 세계란 인간의 인식체계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근대철학의 주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같은 맥락에서, 그는 주체(여기서는 카메라 렌즈)가 발 딛고 있는 자리와 그만의 독특한 인지방식이 결합해 서로 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카파가 카메라 렌즈에 담고자 했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카파와 그의 카메라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극한적 상황인 전쟁을 선호했다. 41세의 짧은 생애 동안 다섯차례나 종군기자로 전장에 발을 디뎠던 카파에게 전쟁은 단순한 소재만은 아니었다. 카파의 카메라가 전쟁을 추적했던 이유는 전쟁의 역사적 순간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의도보다 전쟁이라는 시공간에서 표출되는 본래적 인간성을 필름에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전장은 카파에게 최적의 예술창작공간을 제공했던 것이다.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 중, 적군의 상처를 치료하는 미군 위생병의 따스한 손길을 포착한 <미군 위생병의 독일군 포로 치료(1943년 7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미군의 모습을 담은 <미군과 전쟁고아(영국 런던, 1943년 1월~2월)>, 자식을 잃은 이탈리아 어머니들의 고통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전하는 <소년 유격대 장례식에서 어머니들의 절규(이탈리아 나폴리, 1943년 10월 2일)> 등을 통해 카파가 포착한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그 속에서의 휴머니즘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이들 작품에 기록된 역사적 순간은 카파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쉬는 전쟁의 단면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종군기자이자 자유로운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던 카파는 그와 교제했던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게리 쿠퍼(Frank James Cooper, 1901~1961),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의 젊은 시절을 카파의 정제된 프레임으로 만나보는 것은 이번 전시가 주는 또다른 재미다.

‘전쟁 사진의 대부’이자 ‘20세기의 보헤미안’으로 알려진 카파의 삶과 작품을 풍요롭게 체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늘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자칫 정형화된 틀에 현실의 사건과 인물을 꿰어맞추는 과도한 형식주의적 경향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카파의 흔들리는 손과 그의 거친 숨소리가 생생히 전달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정성은 카파가 추구했던 사실성, 현장성, 직접성의 미학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