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써의 소통이라는 큰 맥락에서 대사회적 발언에 머뭇거림이 없었던 임옥상의 예술적 행보는 다층적이다. ‘토탈 아트’라는 용어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작가는 화가, 조각가, 설치작가, 공공미술가로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변형하며 예술로써 사회적 소통의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그간의 작업을 관통하는 그의 예술적 토대는 작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물, 불, 철, 살, 흙이다. 이는 인간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이다. 예술의 등장 이전부터 그리고 인간의 탄생 이전부터 인간의 삶을 영위케 했던 요소이다. 인간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 모두를 기억하는 이러한 요소를 바탕으로 임옥상은 ‘지금-여기’를 되새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흙살-각>(2011)이다. 이 작품은 흙으로 만든 세 개의 담벼락이다. 한 면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누군가의 얼굴들이다. 그리고 뒷면에는 인간과 원숭이 중간쯤으로 보이는 비현실적 존재들, 즉 작가가 상상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배척하며,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쉽게 단언할 수 있을까? 인간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경쟁과 배타적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이 질문의 해답은 <흙-블랙박스>(2011)에서 찾을 수 있다. 진실만을 기록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블랙박스를 작가는 ‘흙’으로 만든다. 모든 생명은 흙으로 환원한다. 흙에서 발하여, 흙으로 돌아간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의 역사는 흙에 기록된다. 결국 <흙-블랙박스>는 흙으로 만든 블랙박스가 아니라, 흙 자체가 이미 가장 완벽한 블랙박스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 <흙살-각>을 보자. 그렇다면,  <흙살-각> 역시 이미 그 자체로 인간의 역사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이도, 상상 속에 있을 법한 것도 인간의 역사라는 하나의 틀에서 조우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역사가 기록된 흙, 나아가 환경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면서 자신의 현재를 구축하고, 존재를 드러낸다. 자신의 역사를 지우며 현재를 구축하는 이 과정은 단순히 환경만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인간이 최종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그리고 무언가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토대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자신을 구축하고 존재를 행위가 존재를 제거하는 형국이다. 그러기에 최근 작가의 작품은 환경문제로 수렴한다. <벤타에코미르>(2011)는 수명을 다한 기업의 생산품을 이용하여 거대한 용을 제작했다. <아쿠아마크>는 물 위의 랜드마크라는 뜻으로 실제 자연인 호수에 설치되어 오염된 물의 정화기능을 한다.
 

<광화문 연가>(2011)는 물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물의 메타포는 종말론적 세계에 대한 정화이다. 임옥상은 광화문 광장을 물로 가득 채웠다. 가로 5미터에 가까운 캔버스에는 물에 잠긴 광화문 광장이 있다. 광화문 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지점이다. 반독재 시위에서부터 월드컵, 최근의 촛불 집회까지 광화문 광장은 여론의 공론장이었으며, 한국 현대사를 추동하는 힘을 분출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최근 관제 행사 등을 통해 여론 선전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임옥상은 이 거리를 핑크색 물로 가득 채웠다. 광화문 광장의 랜드마크인 이순신 장군 동상이 간신히 목을 빼고 이곳이 광화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화면을 장악한 핑크색 물은 낭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생경하고, 공포를 야기한다. 시민들의 자생적인 여론 형성을 막기 위해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명박 산성’의 생경함과 유사하다.
 

임옥상은 ‘물, 불, 철, 살, 흙’을 예술의 역사적 기원을 담고 있는 본질이자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요소로 보고, 이 재료를 통해 현실을 다시 보고 기록한다. 그의 말이 때로는 직설적이고, 아프고, 쓰리다 할지라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지 제공_ 가나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