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을 걷다보면 ‘1인 1카메라 시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일반인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 가볍게 들려있는 카메라는 DSLRDigital Single-Lens Reflex camera이라 부르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카메라다. 렌즈를 교환하거나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해서 사용하는 SLRSingle-Lens Reflex camera 방식의 카메라는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우리들의 일상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었다. 언론사 기자나 작가, 혹은 고급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도로만 활용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지금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업실 창 너머에서도 벌써 몇 차례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DSLR로 기념사진을 비롯해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만큼 이제는 카메라가 우리생활 안에 더 깊이 다가왔다는 뜻일 것이며, 그 카메라의 결과물인 ‘사진’ 자체도 우리의 생활 안에 더 가까이 왔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오늘날 카메라와 사진이 어떻게 우리의 생활과 문화 속으로 이렇게 빠르고 깊게 들어올 수 있었으며, 현재 우리 삶과 문화에 어떠한 영향으로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앞으로 사진이라는 매체가 우리의 삶에 더욱 친숙한 일부분으로서 긍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 그 방향설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우리의 삶에 사진이 더 가까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로서 필자는 DSLR의 ‘D’라는 글자에 주목하고자 한다. DSLR이 SLR이라는 렌즈교환식 카메라 앞에 디지털(Digital)을 의미하는 알파벳 D를 덧붙여 만든 용어라는 사실은 오늘날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디지털 기록매체가 등장하자, ‘기록’을 그 속성으로 하여 기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진 분야는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결과 디지털 사진이 가지고 있는 편의성, 즉 특별한 기술 없이도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으면서 빠르고 손쉽게 자신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편의성은 급격한 사진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 결국 디지털 매체에 의해, ‘촬영자로서의 동참’으로서 사진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사진인구의 증가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에는 해외 유명작가들의 전시가 자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초에는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의 전시가 있었고, 바로 얼마 전에는 같은 시기에 유섭 카쉬(Yousuf Karsh, 1908~2002)와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의 전시가 있었다. 또 이 전시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관람을 해야 할 정도로 대중의 호응도 높았다.
전시기간이 맞물려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展>과 <유르겐 텔러-터치 미展>은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전시였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우선 이 두 전시의 작가는 모두 인물사진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 유섭 카쉬의 경우는 인물의 내면과 표정을 전통적인 초상화와 같은 빛의 사용으로 표현했으며, 유르겐 텔러의 경우 보다 더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한 방법-예를 들면 카메라 플래시의 유리반사를 통한 평면성의 거부 등-으로 인물들을 표현했다는, 표현에 있어서의 커다란 차이 역시 갖고 있었다.

“모든 인간의 비밀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다. ……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들의 마음, 내면, 영혼에 담긴 위대함을 찍는 것이다.”
- 유섭 카쉬

카쉬의 말처럼 그는 세심한 조명을 이용-스스로 램브란트(Rembrandt V. R., 1606~1669)와 벨라스케스(D. Velazquez, 1599~1660) 등의 화가들의 인물화에서 빛을 공부-해서 인물의 표현에 집중했고, 또 주변의 배경과 소품들을 이용해서 인물에 대한 표현을 게슈탈트(gestalt) 조형심리에서 말하는 ‘유사성’의 원리로 표현했다. 예를 들면 만 레이(Man Ray, 1890~1976)를 찍은 사진[그림 1]에서 그는 가면과 뿔 등을 소품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초현실주의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품을 사진 안에서의 시각요소로 활용함으로써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만 레이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또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를 찍은 사진[그림 2]에서는 배경 속 미키마우스의 웃음과 비슷한 그의 표정을 담기도 했다.

게슈탈트 조형심리에서 사진조형적으로 중요한 네 가지 개념, 즉 근접성, 유사성, 연속성, 폐쇄성 중 인물사진에서 피사체로서의 인물내면을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유사성일 것이다. 사진예술이라는 2차원 평면작업에서는 형상과 배경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배경의 시각요소들로부터 전달되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특히 인물사진 안에서의 주요한 형상은 그 주인공인 ‘인물’이 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형상인 인물에 대한 부차적인 이야기는 배경의 다양한 시각요소들을 통해 그 인물의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카쉬가 어떻게 그의 작품 안에서 이러한 유사성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르겐 텔러의 전시에서도 이 유사성의 원리는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카쉬에게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터치 미(Touch me)라는 전시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유르겐 텔러의 전시는 성적인 모티프로 작업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도 유사성의 원리는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작품의 내면보다는 오히려 전시된 작품의 디스플레이에서 드러난다. 작가가 직접 이 전시의 디스플레이를 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전시된 작품들 사이의 어떠한 관계나 이야기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데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것들 사이의 유사성이었다. [그림 3]에서 오른쪽 노인의 표정과 배(로 보이는 열매)와의 유사성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왜 작가가 그 사진 왼쪽에 열매 열린 듯한 가슴의 여성을 배치해 놓았을까를 생각해보면 필자가 말하고 있는 유사성의 원리가 유르겐 텔러의 전시 디스플레이에서 어떻게 카쉬의 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이 전시들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배경과 앞으로의 한국의 사진환경으로 돌려보자. 이러한 외국 유명작가들의 훌륭한 전시를 한국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진인구가 증가한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다. 물론 사진인구의 증가와 사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아졌기에 이들 전시에 대한 뜨거운 호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시들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한 훌륭한 평론가들의 글들은 논외로 접어두더라도 필자가 문제 삼고자 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두 전시를 비롯해 먼저 언급한 마이클 케나의 전시까지 올 상반기에 있었던 큰 사진전들이 모두 ‘외국작가의 전시’라는 점이다. 사진인구의 급증과 사진에 대한 대중의 관심증대는 미술시장 안에서 사진매체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한국의 사진작가들에 대한 재조명과 이를 통한 한국작가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나아가 한국사진의 저변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사진예술이라는 것이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대중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증대에 부응하고 이를 지속시키기에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외작가들의 작품만으로 급증하는 국내 사진인구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인가. 1990년 전후로 한국사진계 내에서는 ‘한국사진’에 대한 정립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그러나 커다란 성과 없이 아직까지 한국사진이 정립되지 않는 것은 한국의 사진계가 반성하고 더 연구,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까지 한국사진을 이야기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진 없이 해외의 사진사조와 조류만을 따른다는 것은 세계 사진시장 내에서 강대국들의 이익 불려주기에만 머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한국사진의 정립을 이야기함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혹은 전통사상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사진하기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한 방식의 작업들이 몇몇 있어왔지만 이는 자칫 신비주의적이거나 소재 집착적인 결과물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또 그렇다고 세계 미술시장 혹은 사진시장의 흐름을 따르는 한국사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대로 ‘강대국 이익 불려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사진은 다음과 같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현대사진의 역사를 보통 60여 년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명 해외의 많은 사진사조와 조류들이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은 이미 한국사진계에서 논외가 되어버렸을 수도, 또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 한국의 사진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세계미술계와 사진계의 흐름이 한국사회로 들어와 한국을 겪음으로써 우리에게 남겨진 모습을 한국사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면, 오늘날 급증하는 사진인구와 그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증대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과 <유르겐 텔러-터치 미전>을 비롯한 해외작가의 한국전시에 대한 큰 호응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이들 전시에 대한 호응은 한국이 겪고 있는 사진의 현주소이며, 이러한 사진에 대한 증대된 관심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작가들에 대한 재조명과 한국사진 혹은 사진한국의 저변확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지 제공_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대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