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자 컴퓨터 화면 속 고성(古城)의 그림 위로 한 마리 독수리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날아간다. 턱을 괴고 있던 아이들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나온다. 단순한 사운드가 아닌 멜로디가 나오는 악기를 들고 제법 기타리스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2회째를 맞은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 2010의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 ‘내일의 학교’ 교실 풍경이다. ‘센스, 센시스(Sense, Senses)’ 섹션 중 이화진과 박미옥이 만든 작품 <이미지, 인스트루먼트(Image, Instrument)> 앞에서는 악기를 연주하자 화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는데, 그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초등학생 두 명을 단념시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석연휴에 어린 사촌동생들을 이끌고 INDAF에 다녀왔다. 어린 시절 단골 소풍지였던 ‘송도유원지’로 기억되는 송도. 인천이 고향인 내게 송도신도시는 영 어색한 옷을 입은 듯 보였다. 그래도 공사장 한복판의 축제 같았던 인천세계도시축전 때와 비교하면 꽤 구색이 갖춰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추석연휴의 송도신도시는 내가 방금 통과한 인천이라는 도시와 너무나 달라 저 멀리에 있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낯선 이 도시에, 어쩌면 이 도시보다도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를 ‘디지털아트’ 전시가 놓여 있었다.

‘미디어아트’, ‘디지털아트’, ‘비디오아트’, ‘비디오(미디어, 디지털) 설치’, ‘인터렉티브’……. 영상 및 디지털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표현하는 참으로 다양한 고유명사들이 생겨났다가 그 정의가 내려지기도 전에 퇴색되고 있다. 그것은 비디오아트처럼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영상매체 때문이기도,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새롭게 정의하는 디지털 기술의 빠른 발전속도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해진 틀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활용하는 자유로운 예술가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예술가들은 나아간다. 그 뒤를 쫓아가는 이론가와 기획자들은 수많은 개념을 만들고 정의하려 하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끝내기 어려운 숙제처럼 버겁기 짝이 없는 일이다.

허나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나 흥미로울 이 단어들이 정작 전시를 보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으랴. 전시장을 누비는 아이들이 디지털아트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기술환경은 변했고, 그에 따라 예술도 변하고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도 변했다.

마침 미디어시티 서울 2010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을 막 관람하고 온 참이라 미디어아트의 모호한 정체성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차였다. INDAF의 전시는 ‘디지털아트’라는 명명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듯하여 개운한 느낌을 주었다. 인터렉티브 작업이 지닌 ‘놀이’의 속성을 교육의 교재로 활용한 전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만지고, 느끼고, 체험하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교육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블러(Blur)’와 ‘웨이브(Wave)’ 섹션의 전시는 디지털아트가 구현해 내는 미래적인 미적 감각을 선사하고 있었다.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트(United Visual Artists),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양민하와 장영규 등이 선보이는 세련된 사운드 설치, 좀 더 나은 지구를 꿈꾸는 아티스트와 건축가, 공학자들의 환경 프로젝트들까지…….


쿠르트 헨트쉴래거, 지(2008)

무엇보다 디지털아트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인간의 예술적 감각을 확장시키고 미학언어를 제시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쿠르트 헨트쉴래거(Kurt Hentschlager)의 <지Zee>(2008)였다. 안개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빛과 소리를 마주 대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마치 우주전쟁 이후의 풍경 같기도 했고, 눈을 감으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눈꺼풀 저편에 깜박거리는 섬광과도 같았다.

정체불명의 도시 송도에 디지털아트의 정체가 그렇게 빛을 내며 깜박이고 있었다.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2010 포스터

이미지 제공_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