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피부와 깡마른 몸, 단단히 닫힌 입으로부터 어딘가 결연함을 풍기는 여인이 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사진은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03~ 1975)의 작품인 <소작인의 아내: 앨리 매 버로우스Allie Mae Burroughs, Tenant Farmer’s Wife>(1936)다.

대공황이 시작된 이래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정부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FSA)을 세웠다. 농촌을 안정시키는 것이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한 루즈벨트 정부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 농업안정국은 피폐한 농촌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사진가들을 고용했고 이 사진가들은 농촌의 실제를 그대로 담아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워커 에반스를 비롯하여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 1895~1965), 벤 샨(Ben Shahn, 1898~1969), 고든 파크스(Gordon Parks, 1912~2006) 등이 당시 고용된 사진가들로 이들은 미국 사진계, 특히 다큐멘터리 사진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늘날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워커 에반스의 사진전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단순한 기록적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그의 작품을 두고 ‘서정적 다큐멘터리(lyric documentary)’라 부른다. 순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의 매체성을 염두에 두되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갖는 이데올로기 주입성을 배제한 그만의 특징이 서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에반스가 예술적으로 비껴간 농업안정국의 정책적 목표는 기본적으로 농업의 근대화에 있었다. 국가에서 땅을 매입하고 좀 더 기계화된 농기구를 보급한 뒤 소작농들에게 국가 소유의 땅을 경작하게 하는 것이었다. 피폐한 농촌을 더 말끔하고 문명화된 공간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작농들에게 더욱 간절했던 것은 국가 소유의 땅이 아닌 자기 소유의 땅이었으며, 국가 경작지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공동체와 삶의 방식을 지키되 개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입안자들에게 실제로 농촌에 살고 있는 농부 개개인에 대한 이해는 좀 더 큰 그림을 위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도 비참한 농촌의 모습을 드러내 정부의 정책을 정당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에반스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긴 했지만 누구보다도 그 자신답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아주 가까이서 농촌의 사람들을 정직하게 찍어냈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 벽, 사물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게는 농촌에 살고 있는 이들의 흔적이 모두 담겨 그들의 정서가 느껴져야 비로소 농촌의 이야기가 ‘도큐멘트(document)’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담아내는 특성을 뜻하는 ‘서정성’은 에반스의 작품에서 작가 자신은 물론 피사체와 관람객 간의 상호작용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정서까지 포함하여 보다 폭넓어진다. 우리는 잘 세탁된 하얀 수건이 중앙에 걸린 <농부의 부엌Farmer’s Kitchen>(1936)을 보면서 1930년대 미국 앨라배마(Alabama)에 거주하는 소작농의 가난을 느끼기보다 간결하고 검소한 농부의 삶을 우선적으로 떠올린다. <부엌의 벽면Kitchen Wall>(1936)에서도 조금도 비뚤어지지 않게 고정시킨 나뭇조각에 아무렇게나 꽂힌 숟가락과 포크들로부터 가난보다는 벽면에 못질을 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에반스의 작품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사용하고자 주문했을 가난한 소작농의 이미지가 아닌 진짜 사람의 흔적이 배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을 담았기에 다큐멘터리며, ‘농부의 부엌’을 정돈했을 사람의 성품과 손길이 느껴지기에 서정적이다. 에반스의 작품에서 정부의 시도는 어쩐지 실패한 듯 보이고 농촌은 보다 풍성하게 담겨진다.
1941년 에반스는 농업안정국 프로젝트를 통해 찍은 사진들을 모아 작가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 1909~1955)와 함께 『이제 유명한 이들을 찬양하자Let Us Now Praise Famous Men』(1941)를 펴냈다. 전혀 유명하지 않은 농촌의 빈농들에게 농촌공동체를 꾸리는 농부라는 주체성을 부여하고 그 삶을 칭송한 것이다. 덧붙이는 말없이 오로지 사진으로만 구성된 에반스의 1930년대 이야기 속에서는 <마운드빌의 지주Landowner in Moundville>(1936)조차도 지주의 권력이나 권위보다는 구겨진 재킷에 더 눈길이 간다.

올해 국내 최초로 한미사진미술관에 걸린 워커 에반스의 작품들은 총 백사십여 점이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대공황 당시의 농촌 이야기뿐 아니라 쿠바혁명의 곳곳과 불안한 뉴욕의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다. 에반스의 렌즈를 통해 전해지는 이 개개인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그 주체들이 곧 우리이므로 동시에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워커 에반스, 소작인의 아내_앨리 매 버로우스(1936)

이미지 제공_ 한미사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