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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폭설로 엉금엉금 느려진 세상 한가운데 ‘이준호’ 찾기가 한창이다. 문제는 누군가 애타게 찾고 있는 이준호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다. 이준호가 실종된 어린이든, 수배 중인 범죄자이든, 교통사고 목격자이든 적어도 성별과 나이, 인상착의와 신체 특징들은 기본으로 제공되어야 마땅할 사항이다. 하지만 이준호의 신상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하기도 전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는다. 

이준호는 특정한 인물일 수도, 그렇지 않은 익명에 가까운 인물일 수도 있다.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다. 한국에 살 수도 있고, 해외에 살 수도 있다. 갓난아이일 수도 있고, 이십 대일 수도 있고,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영업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대기업 회사원일 수도 있다. 가족이 있을 수도 있고, 혼자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듯 혼란만 부추기는 정보들이다. 이렇게 딱히 단서라고 짚어 말하기도 곤란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름 석 자를 제시어로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와 같은 이준호 찾기가 시작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근 한 달 동안 진행된 이준호 찾기의 공식 명칭은〈소설01: 이준호( )를 찾습니다展〉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종결은 이준호를 찾는 것이 아니다. 이준호 찾기는 서막에 불과하다.

김민애, 김영은, 김학량, 남화연, 노순택, 박보나, 박윤영, 양아치, 이득영, 이미연, 이소정, 이은우, 이정민, 조습, 차재민, 현시원. 열여섯 명의 미술인들은 빈약한 정보가 아닌 무궁한 상상으로 찾아낸 이준호를 지금껏 자신들이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사진, 드로잉, 미술평론과 같은 도구들 대신 소설로 표현해야 한다. 주말 저녁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도전>(MBC)에서 좌충우돌하며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을 서로 다른 캐릭터의 멤버들이 미션 파서블(mission possible)로 수행해 내듯 미술인들은 소설 『본문 없는 주석』을 출간하는 것으로 이준호에 대한 예술적 진술을 마쳤다.

김영은의 「본문 없는 주석」에서 대학병원 검시관이었던 이준호는 박보나의 「A가 아니면 B not A but B」에서 동네 보습학원 영어 강사였다가 급기야 이미연의 「갑작스런 픽션」에서 ‘눈에 잘 띄도록 소파 위에 놓여 있는 녹음기’로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자유로 잠실 방향, 행주산성 근처 도로 표지판이라는 각주가 붙은 “안개 지역 감속 운행”으로 시작해서 창세기 3장 9절이라는 각주가 붙은 “너 어디 있느냐”로 끝나는 김학량의 「다시, 그대에게 가는 길」은 이준호 없이 이준호를 말한다.

사실에 근거한 목격담이 아닌 미술가들의 문학적 상상이 재구성한 소설 속에서 이준호는 이름 이외에는 같은 것이 하나 없는 여럿이다. 동시에 그 여럿은 그것이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수준이든, 일상의 문제이든 이념의 갈등이든, 육체적 고통이든 심리적 압박이든 삶의 조건들 안에서 부단히 무언가를 강요당하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하나이기도 하다. 증식하고 진화한 이준호는 섣불리 정체성을 발설하는 대신 잠자코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비로소 존재를 증명한다.

바야흐로 경계를 허물고 영역을 겹치는 트랜스 시대, 국내 미술계에도 최근 장르 간 통섭을 시도하는 전시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천 년 세월을 간직한 고미술이 현대미술과 전시장을 공유하는가 하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동화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가 설치미술로 재해석되기도 하고, 소설가와 미술가가 협업이 전시라는 형태를 선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하이브리드를 지향하면서도 종종 하드웨어적 나열에 그쳤던 기존 전시들의 한계를 전시 〈소설01: 이준호( )를 찾습니다〉가 소프트웨어적 융합으로 넘어섰다는 점이다. 시각예술이라는 순혈주의에 발목이 잡힌 상상력을 부활시키고자 이준호를 화두로 던진 기획자의 힘이 크다. 다만 ‘국가로부터 불행을 당한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동명이인 이준호의 명예회복까지를 염두에 뒀다’는 기획자의 변은 사족인 듯싶다. 국가가 진실을 조작할 수 있듯이 너무 많은 의도들 또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이준호를 상상하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