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 도쿄 롯폰기(六本木)에 국립 신(新)미술관이 개관되었다. 1만 4000평방미터의 넓은 전시공간을 가지면서도 컬렉션 없이 기획전시나 자료수집을 한다는 새로운 발상의 미술관으로, 지금은 <퐁피두센터 소장작품 展―이방인들의 파리>를 열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의 포스터는 이상한 머리를 한 동양남자의 자화상이다. 앞머리를 내려 눈썹 위에서 한 일자로 자른 머리모양, 동그란 안경...혹시, 구보 박태원? 설마. 이 사람은 일본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러나 일본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었던, 화가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Leonard Tsuguharu Foujita)1886~1968 다.

후지타는 1913년에 파리에 건너가 1차대전의 어려운 시기를 모딜리아니, 수틴, 파스킨 등 의 ‘이방인’들과 함께 지낸, 에콜 드 파리(긟ole de Paris)의 화가다. 후지타는 명문가문의 아들이었지만  대전으로 송금이 끊어져 궁핍에 시달렸다. 그가 오카빠머리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모양의 일본어를 시작한 것은 그때의 일이다. “가난했던 시절, 이발소에 갈 돈이 없어서 앞머리가 눈까지 내려오는 게 귀찮았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잘라 앞이 보이게끔 창구를 연 것입니다.”후지타 쓰구하루, 『파리의 낮과 밤』, 1948 후지타는 자화상을 자주 그렸으니 그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오카빠머리도 안다.  후지타는 “고학했던 시절을 잊지 않게 위해” 죽을 때까지 그 머리모양을 계속했다.

그런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것은 1920년대 ‘모던걸’들의 헤어스타일이다. 일본에서 오카빠는 어린 소녀의 머리모양이었지만, 성인여성의 머리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의 일이며, 그것은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유행이었다.  아이린 캐슬(Irene Castle)이라는 미국 무용가가 1차대전 직전에 단발로 하고 앞머리를 내리거나 뒤로 넘기기도 했는데, 그것이 192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단발의 여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걸었다.

일본에서는 부인해방운동에 참여한 ‘새로운 여자’들이 1920년 전후에 벌써 단발을 하기 시작했다. 1924년에 ‘모던걸’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20년대 후반에는 미국인 여배우 루이즈 브룩스(Louise Brooks)나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의 영향으로 오카빠의 모던걸이 속출했다. 이렇게 보면, 1913년 경에 오카빠가 된 후지타는 여자 단발머리의 유행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셈이다.

1917년, 후지타는 첫 개인전을 파리에서 열었는데 그것을 보러 온 피카소는 너무 놀라 세 시간 동안 그림 앞에서 꼼짝 못했다. 대전 후인 1919년, 5년만에 살롱도톤(Salon d’Automne)이 열려 후지타가 출품한 여섯 개 그림이 다 입선됐다. 1921년, 역시 살롱도톤에 낸 작품들이 절찬을 받았고 이듬해 그는 살롱도톤의 심사위원이 되었다. 유명인이 된 후지타는 가장파티에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나 기괴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겼기 때문에 파리 사람들은 그를 후후(FouFou)라 불렀다. ‘미친 후지타’라는 뜻이다. 일본인이 프랑스에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후지타를 아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샹젤리제거리에 후지타의 등신대 마네킨이 장식되었고, 후지타가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유와 퇴폐로 가득 찬 1920년대, 소위 ‘광기의 시대’ 파리에서 후지타는 화단과 사교계의 총아였다.

1931년, 도쿄에 있던 박태원의 “이마 위에다 간즈런히 추려 가지고 한 일자로 짜른 머리”박태원, 「여백을 위한 잡담」, 1939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후지타를 흉내냈다고 말했다. 구보 자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작 기르고 보니 나의 머리는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의 생각대로 ‘슬쩍 뒤로’넘어가거나 그래 주지는 않았다. (…) 그러나 약간량의 포마트쯤이 능히 나의 흥분한대로 흥분한 머리털을 위무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 나는 취침 전에 반드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고, 그리고 위에 수건을 씌워 잔뜩 머리를 졸라매고서 잤다.”앞의 글 며칠 후에는 귀찮아져서 앞머리를 일자로 잘라 버리기로 했다고 한다. 「여백을 위한 잡담」에는, 만담가 오오쓰지 시로오(大컉司郞)나 여류작가 요시야 노부코(吉屋信子)의 오카빠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쓰고 있지만, 이것은 농담에 불과하다. 참고로 말하면 오오쓰지는 후지타보다 열 살 연하로 후지타와도 친교가 있었던 사람이라, 오오쓰지가 후지타를 흉내냈을 것이다. 요시야도 후지타와 친하게 지낸 사람이지만 여성이니까 논외다.

1929년 가을, 후지타는 17년만에 일본에 돌아와 전시회, 강연, 수필집 출판 등 활발한 움직임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화단에는 후지타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악선전을 해서 “후지타는 이상한 외견과 행동으로 이름을 팔았을 뿐”이라는 주장이 퍼져 있었지만, 일반 사람들은 세계적인 화가가 된 후지타를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오카빠 화백’은 일본에서도 대중적 스타였다.

그러므로 박태원이 1931년 경에 도쿄에서 오카빠가 되었다면, 그 주된 동기는 억센 머리를 간단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그가 후지타를 전혀 모르면서 우연히 같은 머리모양을 발명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머리를 다스리려고 고생하다 지친 구보가 후지타 사진 또는 자상화를 보고, “아, 남자도 그런 머리를 할 수 있구나” 하고 힌트를 얻은 게 아니었을까? 또 구보는 오카빠 머리가 후지타 화백을 연상시키는 것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다시 에콜 드 파리의 시대로 되돌아가자. 미술을 사랑하는 파리 사람들은, 후지타 작품의 무엇에 그렇게 경탄했을까? 서양화를 배우고 흉내만 내도 안 된다고 생각한 후지타는, 고심 끝에 자신만의 기법으로 가는 윤곽선을 그리고, 독특한 유백색(乳白色)으로 여자의 살결을 칠했다. 사람들은 도자기를 연상케 하는 그 마티에르(matiere)에 놀랐다. 이것은 최근에 후지타 작품의 복원작업이 진행되면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특수처리한 캔버스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만의 유백색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파티에서 술에 취하는 척하면서도, 사실 후지타는 술을 못 마셨다. 그는 술자리를 슬쩍 빠져나와서는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도쿄에 있었을 때보다 고향인 경성에서, 구보의 머리는 더욱 이질적이었다. “악취미”,“괴팍”,“자가선전”같은 욕설을 들으면서도 구보는 오카빠머리를, 적어도 10년가량 고집했으며, 그의 문명이 높아짐에 따라 머리도 유명해졌다. 아마 구보는, 나만의 예술을 확립하려는 의지 하나로 온갖 고생과 노력 끝에 성공한 파리의 이방인 후지타에게, 어떤 공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구보의 오카빠는, 세상 사람들한테 오해 받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나대로의 예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다짐하기 위한 장치였던 게 아닐까? 후지타와 박태원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1940년대에는 구보도 그 머리모양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1940년대 들어 일본에 귀국했던 후지타는 전쟁화로 다시 대중적 스타가 된다. 후지타의 첫 번째 전쟁화는 육군을 퇴역한 어떤 남자의 개인적인 의뢰로 인해, 노몬한(Nomonhan)사건1939년 만주와 몽골 국경시대 노몬한에서 일본군·몽골군· 소련군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충돌으로 전사한 병사들의 진혼을 위해 그려졌다. 그때의 그림 <할하강변의 전투>는 푸른 하늘 아래 소련의 탱크를 바라보면서 일본병사가 총검을 안고 포복하는 장면을 그린 대작이다. 완성도 높은 이 작품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거기에는 일본군이 패배하는 모습이 안 나타나지만, 뒤에 밝혀진 사실로는 이것과 한 쌍이 되는 미공개작품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소련군의 공격에 일본병사들이 비명을 치르고 겹겹이 쌓인 시체를 소련의 탱크가 치고 있는 참담한 장면의 그림이었다. 후지타의 다른 전쟁화 <애투섬 옥쇄>는 전쟁의 참혹함을 부각시킨 대작으로 육군대위는 싫어했지만,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이판섬 동포 신절(臣節)을 다하다>는 자결하는 서민들의 비참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약 200명의 화가가 전쟁화를 그렸지만 볼 만한 작품이 별로 없었다. 후지타의 불행은 그가 수준 높은 전쟁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면 그의 전쟁화는 군부의 청탁으로 그려진 작품도 전의고양을 도모해서 그렸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전쟁 후 사람들은 그런 점을 무시해서 후지타만이 전쟁책임이 있는 것처럼 비난하고 다른 화가들의 전쟁협력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후지타는 기괴한 모습과 행동으로 프랑스에서 성공하고, 전쟁 때는 일본군부에 아부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태도를 싹 바꿔서 일본을 떠나 버렸다”는 이미지가 정착했다. 실의에 빠진 후지타는 프랑스 국적을 얻어 두 번 다시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었다.

후지타 사후 그의 마지막 부인이 “오해 받는 것보다 차라리 잊혀지는 게 낫다”고 해서 작품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에, 후지타의 작품을 일본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오랫동안 없었다. 후지타 탄생 120주년2006을 계기로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의 얼굴이 겨우 조금씩 밝혀지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