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연일 일간지에서 비싼 가격에 미술품이 거래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도, 미술품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방송에서 떠들 때에도, 아직 영글지 않은 대학생의 작업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전시가 열릴 때에도, 광주, 부산에서 대규모 국제 비엔날레가 열릴 때에도 현대미술은 여전히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이러한 평의 기저에는 학창시절 받은 미술교육의 병폐가 자리한다. 정물화를 그릴 때에도, 인물화를 그릴 때에도, 풍경화를 그릴 때에도 대상을 완벽하게 묘사한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었다. 미술사의 획기적인 작업을 외우는 것에 급급했지만, 정작 그 작업에 내재된 시각의 변화,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고전주의, 리얼리즘,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극사실주의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그들이왜 그렇게 세상을 보고, 왜 그런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 대중적 사랑을 받는 현대미술은 팝아트와 극사실주의이다. 이것이 대중적 사랑을 받는 이유는 작품 안에서 친숙한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화면에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당연지사 이 작품들은 미술시장에서 블루오션이었다. 2005년 미술시장 확대와 부흥에 일조한 젊은 작가 대부분의 경향이 팝아트와 극사실주의라는 점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은 미학에 대한 미학적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시장에서 유통되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미술은 협소해지고, 양식 또한 협소해진 것이 사실이다.

성남문화재단은 작년 <팝아트의 세계展>에 이어 올해 역시 대중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 극사실 회화 기획전을 마련했다. 이번 <또 하나 일상-극사실 회화의 어제와 오늘展>은 최근 미술계에 널리 퍼져 있는 극사실 회화의 미술사적, 비평적 점검을 시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초기 극사실 회화를 전통으로 상정하고 2000년대 이후 등장한 극사실 회화 작업에서 그들과의 연속성을 발견하여 당대의 극사실 회화의 위치를 점검하고자 했다.

30여 년의 시간을 극사실 회화로 묶을 때, 우선 발견되는 것은 일상의 하찮은 소재에 대한 주목이다. 초기에는 코트, 벽돌, 들풀, 신문지, 벽보, 벽화, 철로, 가죽 소파 등이 주로 등장했다. 이러한 소재 선택은 형식상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와 유사하나 소재적 측면에서는 한국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요소로 평가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2000년 이후의 극사실 회화로 선정된 작품 역시 얼음 속의 과일, 장난감, 옷, 입술, 클로즈업 된 얼굴이나 음료수가 담긴 컵이나 잔, 병 등 일상의 하찮은 소재가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적인 특성’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소재를 사용했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일까. 그리고 극사실 회화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한국적인 특성과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피상적 연결지점 보다는 원본 없는 텍스트의 재현 또는 원본보다 더 원본같은 재현이라는 서구 하이퍼 리얼리즘의 시각 변화 대신에 왜 한국 작가들이 사물의 물성에 주목하는 극사실 회화를 추구해야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사회가 극도로 팽창한 현 시점에서 왜 여전히 사물의 물성에 주목하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지를 전시를 통해 이야기해야 했다. 30여 년의 시간을 묶어 내는 것에 중심을 두다보니, 간과하지 말아야 할 미술사적, 비평적 맥락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미술시장에서 여전히 극사실 회화는 관심 대상이다. 그러나 이것을 극사실 회화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잘 그린, 잘재현한 그림’이 아닐까. 당대 시각의 변화를 감지한 극사실 회화가 혼탁한 ‘극사실’이라는 허울을 벗겨주길 기대해본다.

이미제 제공_ 성남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