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는 현대일본미술의 네오팝(Neo Pop)팝아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대표하는 카와시마 히데아키(川島秀明)의 최신작을 선보였다. 갤러리의 1, 2층 벽을 차지한 것은 몸통 없이 얼굴만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 전형적인 카와시마의 인물화들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어린 아이처럼 중성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주로 십대 소녀들의 몽환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방황展>에서 소녀의 얼굴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매력적이면서도 공포영화의 유령처럼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결처럼 흘러내려 이마와 눈을 덮은 투명한 머리카락, 그 사이로 허공을 응시하는 커다란 눈동자. 손대면 금방이라도 흩어져 버릴 듯이 아련하고 은은한 얼굴은 마치 투명한 유리처럼 섬세한 윤곽을 가졌다. 시간이 멈춰버린 무한한 공간 속에서 부드럽게 떠다니는 그녀들의 얼굴은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처럼 소녀적인 감수성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은 우울하고 불안하다. 매혹적이지만 우울하고, 순수함 속에 숨겨진 알 수 없는 불안감. 이처럼 현대 일본의 대중문화와 팝아트를 관통하는 역설적인 감성이 카와시마의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969년생인 카와시마 히데아키는 1991년 예술학교인 일본조케이대학(日本造形大學)을 졸업한 이후 불교사찰인 엔랴쿠지(延曆寺)에서 2년간 수도생활을 했다. 하산한 이후 고향인 나고야(名古屋)로 돌아온 그는 승려 대신 다시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쿠사나기 린’이라는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1년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본명 카와시마 히데아키를 일본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다. 유년기의 카와시마는 소설 『긴카쿠지(金閣寺)』와 충격적인 할복자살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유미주의(唯美主義)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극도의 유미주의와 나르시시즘의 끝에서 작가가 선택한 것은 오히려 수도생활로 이어진 금욕주의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카와시마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틀림없이 나르시시즘의 원천이자 시각적인 유희의 시작이다. 그러나 작가는 미적 쾌락을 넘어 현대인의 보편적인 내면을 드러내는 관조(觀照)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유혹적이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소녀들의 얼굴은 그의 멘토라 할 수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어린 아이들과 닮았다. 카와시마의 소녀와 나라의 어린 아이는 귀엽고 예쁘장한 겉모습이 불완전하게 감추고 있는 잔혹함과 고독감을 공유한다. 카와시마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의 다층적인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카와시마가 국제적인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2005년 무라카미 타카시(村上隆)가 기획한 전시 <리틀 보이 : 폭발하는 일본 하위문화의 예술展>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서 무라카미는 대중문화와 순수미술 모두를 아우르는 일본현대문화의 특성을 ‘리틀 보이’라고 요약했다. 리틀 보이는 다분히 중의적인 제목이었다. 우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코드명이 리틀 보이였다. 그 대의가 무엇이었든,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살상에 사용된 무기였던 원폭을 어린 꼬마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렀던 잔인한 현실, 카와시마의 소녀들처럼 순수한 얼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섬뜩함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나아가 리틀 보이는 성인을 위한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오타쿠(オタク)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져 심취해 있는 사람라 불리는 폐인들을 양산한 일본의 현대사회를 지적하고 있다. 1945년의 패전 이후 미국의 보호 아래 유약한 피해자로 둔갑한 일본인들이 만화와 같은 표피적 오락과 왜곡된 성문화에서 도피처를 찾는 것이 어린 꼬마처럼 성장을 거부하는 심리적 증후라는 것이다.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도발적인 카와시마의 이미지들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예쁜 파스텔톤의 색감에 만족할 수도 있고, 음울한 소녀들의 분위기에 도취되거나, 순정 만화같은 환상적인 로맨스를 꿈꾸거나, 아니면 야릇한 성적인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감상이 가능한 다층적 심리가 현대인의 증후라면 카와시마의 이미지가 말하는 방황의 주인공은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제공_ 국제갤러리

禹晶娥 1974년 서울생.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초빙교수. 최근 저술로 「조지아 오키프 비평에 나타난 여성성 담론」, 「검은 옷을 입은 뉴욕의 수도승」 등. woojunga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