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크게 두 종류의 대지(site)를 대상으로 디자인이 전개된다. 하나는 실재하는 대지이며, 다른 하나는 비실재의 대지(non site)다. 흔히 건축 비평은 실재대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건축적 사건을 기록하게 된다. 그것은 건축대상 자체의 형태와 공간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키거나 사회문화적 현상을 배경으로 하여 비판적 담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실재 대지에서의 건축행위는 어떠한가? 그것은 가상의 대지(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언제든 실현을 꿈꾸는 대지)일 수도 있고 또한 가상의 대지와 미묘한 차이를 두기도 하는데, 때로 인간의 귓속 특정 부분이거나 특정 주제에 합당하다 싶은 수억만 년 전의 지층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두 종류의 건축이 공유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현대미술사에서 언급되어온 장소특정적(site-specific)1 사유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대지와의 관계라는 건축의 정의로부터 일단의 미술행위를 취했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오늘날의 현대건축이 “경기도미술관@안산” 이번 전시의 주제로, 안산시의 역사적, 문화적, 지형적 특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전시함이란 주제로 묶인다는 것이 조금 생뚱맞고,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강조하는‘장소특정적’이라는 의의는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건축전시 기획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가 갖는 의미는 크다. 첫째, 국내의 대부분 국공립미술관들이 외면하고 있는 현대건축의 새로운 양상을 미술의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둘째, 미술관의 한정된 전시공간에서 건축사유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법에서 일탈(deviation)하여 관람객과의 친밀한 소통을 구조화하고자 도입한 거리의 가구화(street furniture) 기획은 건축계 내부에서만 소통되었던 기존 건축전시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결과가 되었다.
마스터플랜
비야케 잉겔스<도시의 다공성>
조민석,<변종아파트와 로봇타워>
마 옌쏭<아름다운 마음>
위1_
비야케 잉겔스 작품 설치 시뮬레이션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에 설치된 전시물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안산시의 도시개발 방향에 대한 선언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건축아이디어 패널과 영상물, 건축모형, 그리고 건축 프로그램이 제거된 채 거리의 가구로 탄생한 일대일 모형이 그것이다. 미술관의 1층 로비는 도시의 가로 기능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인 개방적 공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물을 관통하는 통과동선 상에는 일상에서 사용가능한 의자, 테이블, 책선반 등을 가시적으로 전시해 관람객들을 유쾌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획 의도를 충분히 전달한 전시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여작가들의 모습 위왼쪽 시계방향으로 조민석, 비야케 잉겔스, 제프리 이바나, 마 예쏭
문제는 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네 부류의 건축가들,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les), 조민석(Cho Minsuk), 마 옌쏭(Ma Yan-Song, 馬岩松), 제프리 이나바(Jeffrey Inaba)의 안산시 도시의 비전을 담은 디자인안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결과라고 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편화한 자본유착형의 고밀도 개발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거나, 과소비적이고 기념비적인 건축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적용하고 있었고, 건축형태가 독창성이 부족해, 이 전시에 한껏 기대를 걸고 찾아온 다수의 건축인들에겐 당혹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경제의 침체기에 건축가의 상상력이 위축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이들의 공조는 일면 현대건축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정의로운 처방과 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현대건축의 주제의식에 대한 자기성찰 없이 안산시가 나아가야 할 도시디자인의 향방을 가볍게 취급한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
이미지 제공_ 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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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특정 장소, 특정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미술작품을 가리킴. 미술관, 전시 공간 그 자체를 작품화하는 설치미술, 거대한 토목공사로 자연환경 자체를 작품화하는 대지미술, 도시경관이나 공공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는 공공미술 등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응하는 표현임.
田珍三 1960년 인천생. 건축비평가, 광운대 겸임교수. 건축리포트 <와이드> 발행편집인. 최근 저서로 『건축의 불꽃』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