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현재의 삶이 풍요롭길 기대하며 예를 갖추어왔다.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기 위해 혹은 자연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일정한 형식을 만들어 제의를 체계화했다. 한국에서 조상을 기리기 위해 이제껏 수확한 음식을 봉헌하는 차례 또한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서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제목의 뜻이 거안제미(擧案齊眉) 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예를 다한다는 뜻인 이번 전시에서는 여덟 작가들의 명절 이야기가 펼쳐졌다.
<차례상, 눈썹에 마초이다 展>전시 모습
방명주의 <부뚜막 꽃>(2005)은 밥알들을 거대하게 클로즈업했다. 한국인들이 먹는 쌀과 보리를 실제 크기보다 수백 배 확대해, 매일 보지만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밥이 가진 조형성을 드러냈다. 황인선의 <밥상 위의 대화-아슬아슬한 연금술>(2008)은 누룽지를 이용해 식기(食器)들을 만들어 아슬아슬 쉽게 부서질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박은선의 <기도하는 굴비>(2008)는 차례상의 대표적인 굴비가 두 아가미 지느러미를 모아 애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의 모형이다. 인간이 아닌 생물을 의인화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상하<감사-사과>40x40.5x51.5cm,혼합재료,2009
이상하는 색색의 작은 타일들을 붙여 양초와 사과를 재현하는데,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큰 초는 자신을 태워 빛을 내는 대신 전기를 이용해 은은한 빛을 비춘다. 김현의 <나의 영원과 함께(With my 永遠)>(2007)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과 그림과 더불어 사과 껍질 위에 있는 사과의 모양을 표면에서 분리해 표현하면서 일면 추상적인 회화를 선보인다. 이선민은 <이순자의 집#1>(2004), <신이종의 집#1>(2005)에서 명절 때 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경심은 <조율이시 홍동백서>(2007)에서 수묵을 이용해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차례상을 보여주고 있다. 추상적으로 칠해진 색면 위에 제기(祭器)들의 윤곽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또 실제로 쓰였을 법한 제기에 색을 입혀 캔버스 위에 결합시킨 안예환의 작업 속에는 전통제기와 현대예술의 추상이 교묘하게 뒤섞인다.
거안제미는 내용을 어떠한 형식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형식에 대한 언급이다. 어떠한 행위나 대상들은 항상 형식과 내용을 함께 지닌다. 내용을 담는 그릇이 형식이기에 어느 하나만 중요하지도 덜 중요하지도 않다. 한국의 차례 또한 그 진행 순서와 차례상을 차리는 형식이 지방마다, 집집마다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가볍게 읽힐 수도 있을 테지만, 일면 한국의 예(禮) 형식 속에서 파생되는 어떠한 소외제외도 드러낸다. 차례상이 완성되기까지 들어가는 한국 여성들의 노고와 그 노고를 빌어 조상들에게 예를 바치는 남성들 사이의 차별, 즉 가부장적 행태가 이선민의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방명주,<부뚜막꽃>, 110x130cm, archival inkjet print on paper,2005
지짐이 빈대떡, 튀김의 방언를 부치는 어머니, 남자와 여자가 다른 상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먹기 위해 요리된 굴비가 두 지느러미를 모아 기도하는 박은선의 작품은 재치가 넘치는 한편 인간중심적인 사회를 비틀고 있다. 정경심은 차례상의 규범을 색과 형태로 분리해 표현했는데, 홍동백서(紅東白西)사과 등의 붉은 과일은 동쪽, 배 등의 흰 과일은 서쪽에 놓음 라는 고정된 형식에 대해 대상들에 색을 칠하지 않음으로서 붉은색과 하얀색으로만 나눌 수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위_안예환(연) 300x200cm, 혼합매체2005
아래_정경심<조율이시홍동백서>97x130cm,한지에 수묵채색,2007
조율이시(棗栗梨枾), 왼쪽부터 대추·밤·배·감을 놓음 어동육서(魚東肉西),육류는 서쪽, 생선은 동쪽에 둠 두동서미(頭東尾西)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가게 함 같은 순서 또한 도상들을 화면 내에 상대적으로 위치시켜 형식의 주관성, 획일성을 꼬집고 있다.
이선민,<이순자의 집#1 - 제사풍경>,80x80cm, c-point, 2004
참여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한국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 관람객은 친숙한 대상이 표현된 작품에 다가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작가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일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물을 이용해 그 모습을 낯설게 보여준다. 익숙한 것을 과장하거나 단순화해 대상을 새롭게 생각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명절은 해마다 돌아온다. 그리고 명절마다 행하는 수많은 형식의 예(禮)에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런 숨은 진실을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우리 또한 익숙한 명절의 풍경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