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의 도전

일본문화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오타쿠(オタク)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져 심취해 있는 사람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구체적인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중요 문화생산 집단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특히 1989년 이후 일본은 히로히토(裕仁, 재위1926~1989) 천황의 죽음과 거품경제의 붕괴로 사회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패전 이후 고도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었던 일본 근대프로젝트의 진정한 마감을 통해 서구화와 우국(憂國) 사이에서 자신을 저울질하던 일본의 문화는 박탈과 해소라는 이중적 심리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 히로히토 시대(Post-Hirohito era)를 가로지르는 일본문화의 중심축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고 자라난 새로운 세대를 통해 구축될 차례가 왔음을 의미했다. 이들은 더 이상 국가 성장의 동력이라는 공적 역할을 자처하지 않고, 사회라는 범주를 떠나 개인으로의 회귀를 재촉하면서 지적, 기술적 조건이 마련되어 있던 문화풍토 위에 중심적인 수요와 공급원으로 작동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현대미술에서 오타쿠적인 성격이 표면화되는 시점 역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의 현대미술이 미술이라는 범주 안에 자신을 고정시키고, 끊임없는 재귀적 의미를 배출해왔다면, 반대로 오타쿠라는 독특한 일본 문화현상에 한 뿌리를 차지하는 미술의 탄생은 미술이라는 범주를 벗어 던지고 자신을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무엇보다 이른바 하위문화라고 불리어 온 지층과 고급문화라는 굳은 지층이 뒤섞이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에서 비롯하지만, 단순히 하위의 것을 고급문화의 틀에 이식하거나 차용하는 것을 넘어 만연한 문화적 위계 자체를 완전히 평면화시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나라 요시모토의 일러스트  

오타쿠의 눈, 그 당당한 퇴행

오타쿠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SF, 특수촬영, 피규어(figure), 그 밖에 서로 깊이 연관된 일본의 서브컬쳐(subculture)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말하며,1 오타쿠 문화의 세대는 보다 일본의 사회사적 필연성을 지니는 집단적 성향과 관련한다. 비평가 사와라기 노이(木野衣)는 오타쿠 문화를 자신의 성장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거리의 아침은, 어제와 같이, 회색 속에서 벌떡 위로 올라왔다. 나는 이러한 풍경을 더럽다고도, 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 TV 안에서 내가 만난 것은 팝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 자연히 나의 상상력은 TV 안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회색이 재배하는 모노크롬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컬러풀한 색채의 홍수가 있었다. … 나는 점점, TV 안의 SF영화나 우주선, 괴수, 개조인간, 슈퍼 카나 프라모델 같은 팝 문화에 빠져 들어갔다. 팝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경계선은 더욱 강고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팝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선 상에서 나의 “일상”은 형성되었다. 木野衣, 『日本 · 現代 · 美術』, 新潮社, 1998, pp.114-115.

이와 같은 언급에서 엿볼 수 있는 오타쿠 집단의 형성은 고도성장기, 공해와 시멘트로 대변되는 토건국가의 모노크롬(monochrome) 흑색 또는 그 밖의 한 색만 사용해서 표현하는 단색화나 일러스트레이션과 대중의 시각을 장악하는 애니메이션의 총천연색의 결합을 통해 현실과 환상이라는 반반의 분리를 체화하고 성장한 세대의 등장을 의미한다. 즉 현실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그것을 현실 안에서 해소하지 못하고 극도의 개인화된 상태로 대중적 판타지를 통해 만족하는 시각적 패티쉬(fetish) 성적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물가 이들이 사회적 주체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주요한 사회문화적 흐름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미술에서는 무라카미 타카시(村上 隆),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 등이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오타쿠 작가들로,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나타난 ‘니폰 팝(nippon pop)’을 이끈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팝을 사와라기는 스키조프레닉한 니폰 팝, 즉 “분열증적 일본 팝”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오타쿠와 관련한 그의 회고에서 보여지듯이, 단순히 하위문화와 고급문화의 상보적이고 평행적인 만남에서 연유하는 것 이상의 사회사 차원의 시각이 요구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분열증적 일본 팝은 수십 년 지연된 아메리칸 팝에의 무조건적 추종이 아니라 “전후 일본미술에 있어 미국이 담당했던 역할은 어떤 것인가?”하는 명제에 대해 숙고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미술사에서 다루어지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세계성과의 접합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오타쿠 문화가 일본의 이미지를 미국적인 것에서 벗어나 일본적인 것의 회복과 역침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편적 문화지형의 전복, 그리고 그 자리를 온전히 ‘일본적인 것’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의 전략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국제적으로 경험되는 일본의 대중적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또 망가(漫),만화 아니메(アニメ)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지배하는 새로운 자포니즘(Japonim)일본풍의 형성으로 확장된다.

나라요시모토<Sleepless Night Sitting><2007>

1991년 초 무라카미 타카시와 사와라기 노이는 귀여움이 일본 사회에 미치는 교묘한 영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이 기능을 노출함으로써 전복시키는 일본 대중문화의 막강한 힘에 주목했다. 무라카미는 그 해 호소미갤러리(細見美術館)에서 열린 전시에서 일본 가부장제 사회 근저에 자리잡은 유치증(Infantilism)성인이 인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린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증상을 비판하기 위해 각종 캐릭터들을 원작보다 더 귀엽게 그려 천황에게 바치는 진상용 일본화의 제작과정을 패러디하기도 했다.2 이것은 일본화를 전공한 무라카미에게 일본화도 아니고 애니메이션도 아닌 독특한 오타쿠적 회화를 창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적 고유성도, 대중문화의 달콤한 흡수성도 아닌 모호한 아이덴티티, 즉 사와라기가 지적하고 있는 분열증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특징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에도 잘 나타난다. 나라는 독일 유학 중이던 1991년 초기부터 만화적인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의 작업에 처음으로 아이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 기묘한 미성년 이미지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유년시절 속으로 끊임없이 투사시킨다.

어린시절의 나에게

나는 지금도 너를 소중하게 기억해내고 있다. 너는 너만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즐겁겠지만, 나는 나말고도 너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큰일이야. 그래도 네가 잘 얘기할 수 없었던 것까지 내가 말해 주고 그림도 놀랄 정도로 잘 그리게 되었어. 선승혜, 「나라 요시토모」, 『월간미술』, 1월호, 2001, pp.83-84.

나라 요시토모가 어린 시절의 시선 속에서 현실의 스크린이라기보다는 자아의 스크린으로  주인공을 택하고 있다는 것은, 1960년대 이후 출생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중요한 단편을 보여준다. 절대 웃지 않는 모호한 표정, 정적인 포즈, 텅 빈 공간 속에 자리하는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정신적 상황뿐 아니라 성장기 속에 틀어박힌 일본인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새로운 니폰 팝은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의 삶을 읽기에는 너무 차가운 아메리칸 팝의 카니발적 유희와는 다른 고립감과 편집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현대 일본의 철저히 개별화된 주체가 겪게 되는 자기승화 방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가를 지탱하고 있는 퇴행적 작업은 자신을 캐릭터의 세계에 투영함으로써 정적이고 시적인 뉘앙스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거기에 때로 노골적인 에도(江)시대1603~1867년의 회화를 삽입함으로써 현대 일본의 시각문화가 전통의 맥락과 떨어질 수 없는 일관된 감수성으로 무장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19세기 말 서구의 시선이 자포니즘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시각장치들이 현대 일본의, 소위 ‘유치한’ 하위문화를 통해 꾸준히 재생되어 왔으며, 이것을 예술 범주에 적극적으로 포섭함으로써 현대 일본미술의 고유성에 대한 독보적 위치를 요구하는 태도와도 관련된다.

오타쿠 전략의 대성공: 슈퍼 플랫

오타쿠 세대의 니폰 팝 전략은 무라카미 타카시의 활기 넘치는 화면을 통해 더욱 노골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1994년 스카이 바쓰하우스(SCAI Bath House)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미스터 도브(Mr. Dob)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언뜻 미키마우스를 연상시키지만, 훨씬 과장된 표정과 현란한 색채로 치장한 미스터 도브는 언제나 함박웃음을 띠고 있다. 몇 개의 원으로 그려진 단순한 형태와 정형화된 만화적 표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전시장이라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미스터 도브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인 캐릭터들에 대해 미술이 바치는 하나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이듬해 무라카미는 ‘슈퍼 플랫’(Super Flat)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한다. 슈퍼 플랫은 일본의 전통회화와 현대 아니메기법의 합성이라는 오타쿠의 시각 장치를 유연하게 이용한 예로, 이토오 쟈쿠츄우(伊藤若沖, 1716~1800)의 <군계도(群鷄圖)>로 대표되는 복수시점과 카노오 산세쓰(狩野山雪, 1589~1651)의 <노매도(老梅圖)>와 같이 기묘한 형태가 만들어내는 선이나 면의 완급을 통해 공간에 유기적인 운동성을 가속시킨다.3 거기에 애니메이터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의 작화기법에서 볼 수 있는 시퀀스(sequence), 즉 시간성과 공간성을 응축한 평면적 표현을 차용하여4 슈퍼 플랫의 화면은 기괴함과 유쾌함을 함께 지니는 독특한 디자인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인류의 미래가 맞이하게 될 일본의 SF적 감수성의 현실화라는 환상의 청사진이 된다. 그러나 슈퍼 플랫은 하나의 관점에 의해 종합되는 공간의 권위, 즉 서구의 근대 사회를 지켜왔던 합리적 자아나 재현시스템의 통솔력이 붕괴되고 표현의 지시사와 지시내용 사이의 어긋남이 일어나, 표현된 형태의 아름다움이 독자적인 실체로 부유하는 탈중심적 시각성을 지향한다.5 그리고 여기에는 “세계의 콘텍스트는 우리가 만든다”라고 하는 미국의 우월성에 대한 혐오와 “세계의 콘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당신이 아닌, 우리다!”라는 도전의 개념이 담겨 있으며,6 이 도전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예술에 대한 콘텍스트를 성공적으로 파괴할 때 완성된다.

슈퍼 플랫은 무라카미가 1999년 발표한 「Tokyo Pop 宣言」에서 첫째 어린이적인 것, 둘째 가난한 인상(貧相), 셋째 아마추어적인 것으로 요약된다.7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만한 익숙한 캐릭터와 만화 그리고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는 일상의 낙서와 몽상들. 이러한 일상의 리얼리티가 국제화를 겨냥하고 있는 새로운 일본현대미술의 주요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즉 슈퍼 플랫은 작가 개인의 화면 구성원리가 아니라 이미 서구의 시각 문화를 뚫고 들어가 어느새 지구적으로 고착화된 일본 하위문화에 대한 경의와 교훈에 대한 적극적 실천에 다름 아니다.

1996년 무라카미는 히로폰 팩토리(ヒロポンファクトリ-)를 설립하고, 2001년에는 아예 그의 캐릭터 이름을 딴 주식회사 카이카이키키(Kaikai Kiki Co., Ltd)를 정식 등록하였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각종 캐릭터를 계발, 대량생산해 유통시키는 이른바 무라카미식 ‘미술 기업론’을 실현했다. 이것은 그가 2003년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패션디자이너와 함께 했던 루이비통(Louis Vuitton) 컬렉션을 대성공으로 이끌었고, 소비사회의 필연적 속성을 이용, 니폰 팝을 서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오타쿠 문화가 패전 이후 미국에서 이식된 재료들의 일본화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현대 일본의 문화적 심리를 자극하는 일임에 틀림없으며, 니폰 팝은 모더니즘의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 금기시되던 제도의 노출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온전히 일본적인 것을 열망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자본이 개입하지 않으면 알려질 수 없는 미술계의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결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들지 않는 무라카미의 공격적 마케팅은, 기실 미국이라는 대타자에 의해 형성된 일본 현대사의 필연적 굴욕에 대한 거북함과 이런 역사에 기생해 성장한 고급문화의 위선에 대한 발칙한 경멸이라는 정치학을 담고 있다.

제도화되는 오타쿠

오타쿠 문화를 공유하는 현대 일본미술은 물론 현재진행형에 놓여 있다. 지극히 개별화된 취향 속에서 공통된 지점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오타쿠 문화는 어쩌면 일본이라는 거대한 사회를 환유하는 개인들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방식인 것이고, 또한 계속해서 진화하고 해체되어야만 지속될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오타쿠에 의해 형성된 미술 역시 진화의 폭을 확장시켜가야만 그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오타쿠라는 집단의 통일된 감성과 개체화된 해석을 독려하는 형태를 선택했다. 그것은 위에 언급한 무라카미의 주식회사가 젊은 예술가들을 채용하고 이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스폰서의 역할을 자처한다거나 “예술도장 그랑프리(藝術道場 グランプリ一)”처럼 대규모 마쓰리(祭り)축제를 개최해 젊은 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등 성공한 오타쿠가 마련한 제도권을 통해 유지된다.

하지만 오타쿠 세대의 미술이 니폰 팝의 형태로 결집됨에 따라 이러한 제도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물론 서구에 의해 수동적으로 정착된 제도와 관습의 자리에 오타쿠의 제도를 새롭게 대체한다는 자신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이 열광하는 게임이나 망가에 대한 사소하고 그래피티(graffiti)적 오마주(hommage)를 생각할 때, 오타쿠 미술에 있어 제도란 필연적으로 일본현대미술로 진입하는 패권으로서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도화된 오타쿠는 오타쿠 자신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하위문화로서의 공격성을 고착화시키는 위험에 노출됨을 의미하며, 그 안에서 오타쿠는 ‘니폰 팝’이라는 새로운 자포니즘을 위해 도구화된 트레이드 마크로 전락할 수 있다.

주)

1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2007, p.17

2      마츄이 미도리,「일본 현대미술의 새로운 국면: 1990-1990」, 『일본현대미술의 현장』(아트선재미술관, 2003), p.16.

3      松井みどり,  「ポストモダンの彼方」, 『美術手帖』, 3月號, 2003, p.105.

4      原えりみ, 「ス-パ-フラット」, 『美術手帖』, 4月號, 2008, p.138.

5      松井みどり, ibid., p.106.

6      原えりみ, ibid, p.141.

7      村上 隆, 「拜啓君は生きている: Tokyo Pop 宣言」, 松井みどり, p.110 재인용.

具娜延 1976년 서울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최근 글로 「구타이 미술과 일본 전후 모더니티의 경험」 등. wertl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