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미술이 만리장성을 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던 중국미술이 이제는 러시아, 브라질 등 브릭스(BRICS)1 국가들을 앞지르는 경제력과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미술인을 앞세워 거침없이 대한(對韓) 문화공략을 펼치고 있다. 현상만 보면 이는 가히 중류(中流)요, 문화 팍스시니카(pax sinica)의 도래라고 일컬을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들이 한국을 자신의 무대로 삼고 있을까.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위애 민쥔(岳敏君)이나 장 샤오강(張曉剛), 탕 즈강(唐志岡), 쩡 판즈(曾梵志)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으며, 작품 한 점이 많게는 20억 원을 웃돌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여기에 그동안 저평가되었던 신진작가들도 가세해 펑 정졔(俸正杰), 하오 쥔(?軍), 종 뱌오(鍾飇), 아이 웨이웨이(艾未未), 장 샤오타오(張小濤), 저우 톄하이(周鐵海)를 비롯해 루어 형제(羅衛東, 羅衛國, 羅衛兵), 천 원보(陳文波), 리우 웨이(劉?), 쉬 베이홍(徐悲鴻) 등이 세대와 그림 실력을 가로질러 중국미술의 범람을 거들고 있다.

중화바람의 영향은 중국현대미술 전시를 잇따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 특히 두드러지는데, 지난 2월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된 〈중국현대미술세대전〉이 대표적이다. 〈중국현대미술세대전〉에서는 시장성에 초점을 맞춘 다른 전시들과 달리 중국현대미술의 역사와 현주소를 볼 수 있었다. ‘뿌리와 꽃의 대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현대미술의 초석을 다진 원로들을 ‘뿌리’로, 오늘의 중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을 ‘꽃’으로 분류한 뒤, 서로 대화하듯 마주보게 한 설정은 이채로웠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 구세대의 그림들을 통해 중국발(發) 중화바람의 진행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상품성에 머물곤 했던 중국현대미술 전시에서 벗어나 중국현대미술의 흐름과 전망, 화풍과 소재 및 주제의식의 변화를 포괄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해당 전시의 참다운 의미라 할 수 있다.

작가군도 탄탄했다. 원로와 청년작가 각각 5명씩 모두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먼저 원로로는 인지도가 높은 우 관중(吳冠中)을 비롯해 중국 수묵화와 수채화의 거장 두 다카이(杜大愷)와 하오 화(?華) 등이 명함을 내밀었다.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국근대미술의 거장 황 저우(黃?), 칭화(淸華)대학 미술대 부학장 류 쥐더(劉巨德)도 이름을 올렸다. 반면 젊은 작가로는 칭화대 미술학부 교수이자 만리장성을 소재로 한 풍경화가 베이징 인민대회의당에 걸릴 만큼 중국 정부가 공인한 1급화가인 하오 쥔을 포함, 리얼리즘의 선두주자로 손색없는 신 동왕(東旺), 중국 칠화(漆畵)의 실력파 청 샹쥔(程向軍), 팝아트 계열의 독특한 화풍으로 유럽에서 인지도가 높은 쿠 쉬애밍(庫雪明),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리 톈위앤(李天元)이 참여해 중국 차세대 블루칩 작가들의 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중국현대미술세대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리기 무섭게 3월 〈런 샤오린(任小林) 회화-몽환적 색채주의〉가 바통을 이었고, 〈왕 커쥐(王克擧)전〉, 〈천 롄칭(陳聯慶)전〉, 〈천 뤄빙(陳若氷)전〉, 〈인 쥔(尹俊)·인 쿤(尹坤)전〉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외에 4월 장 홍보(張洪?), 류 쥔(劉竣), 런 홍(任虹), 왕 즈졔(王志杰)의 공동전시회 등 8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중국미술의 향연은 더욱 폭발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전시가 열리고는 있지만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정보가 미미하거나 일방적인 경우가 적지 않아 냉정한 평가와 객관적 판단을 저해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상업성에 치우친 일부 화상(畵商)들이 중국미술품을 무분별하게 유입함에 따라 국내 중국현대미술 전시가 미학담론 없이 유행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