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자끄 아탈리(Jacques Attali)는 그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21세기 중반이 되면 인도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그는 문화적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나라로 인도를 지목하였는데, 이러한 가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인도는 여러 가능성을 가진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미 IT나 영화산업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의 미술계에서 감지되는 인도 역시 경제력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술이 경제발전의 속도를 앞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으리으리함과 누더기의 땅, 궁궐과 오두막이 공존하는 인도의 불가사의함이 그대로의 현실이듯,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인도현대미술이 세계미술시장에서 최고의 블루칩(blue chip)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인도는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 문화의 모태인 불교의 발상지로서 심오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땅이다. 동시에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로 혹독한 수난을 견뎌온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굴곡 많은 역사 속에서 일구어낸 나름의 문화융합방식이 그 유구한 세월 속에 녹아들어 현대미술의 핵심적 주제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 오늘날 인도미술이 부각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인류의 보고라 할 신화(神話)의 나라 인도에서 그 무궁한 신화의 서사가 미술로 부활하는 조짐은 건조한 현대미술에 생명력을 일깨우는 신선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침 20세기 후반을 주도해 온 포스트모더니즘이 20세기 말을 전후하여 퇴조해감에 따라 그동안 비합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라는 오명 속에 배척되었던 신화의 가치가 미래의 예술을 불지필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기획된 서울대미술관의 〈인도현대미술전:일상에서 상상까지〉는 인도현대미술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일상과 상상까지’라는 주제로 펼쳐 보이고 있다. 동시에 범아시아적 시각으로 전통(신화)과 현대의 관계를 모색하며 그 속에서 인도현대미술의 존재방식을 조망하고 있다. 범아시아주의의 시각을 전시의 주요 담론으로 삼은 것은 본 전시를 기획한 싱가포르미술관의 지정학적 관심사에 기인한다. 다시 말해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싱가포르가 동아시아와 인도의 한가운데에서 양 대륙의 중계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의도가 이러한 전시를 충동했다고 본다. 겉으로는 ‘인도해방(1947년) 60주년 기념’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도록 서문에서 밝히듯 전체적으로 ‘아시아 내부에 대해 숙고해보는 기회’라는 차원에 일층 무게를 두어 국가 이데올로기와 철학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시의 작가구성이나 내용에도 이러한 기획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무엇보다 산티니케탄(Santiniketan)을 주제의 매개체로 선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산티니케탄은 시인이자 화가, 교육가였던 타고르(Rabndranth Tagore, 1861~1941)가 1901년 콜카타(Kolkata, 옛 캘커타) 북서지방에 세운 교육도시이다. 산티니케탄의 예술학교는 영국인이 설립한 정규미술학교와 달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은 물론 동아시아를 비롯한 해외미술을 수용한 교육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현재도 가장 독창적인 인도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산티니케탄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범아시아주의가 주창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범아시아주의를 넘어서는 교육 또한 전파될 수 있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했던 타고르는 일찍이 중국의 도교적 문인화가에 동일감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고 한때 일본문화 전반에 심취한 적도 있다. 「동방의 등불」이라는 예찬의 시를 헌정하며 식민상황의 대한제국을 위로했던 시인은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었다. 산티니케탄의 이러한 범아시아적 사고를 근간으로 기획한 본 전시는 구체적인 전시내용에도 그러한 의도가 십분 반영되어 있다.

작가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 전시실을 제공받은 라마찬드란(Achuran Ramachandran)은 산티니케탄에서 공부하는 동안 일본의 병풍미술 등 동아시아 미술에서 감화를 받은 화가다. 수브라미니안(K.G. Subramanyan)과 세대를 달리하는 젊은 작가 파라드 후세인(Farhad Hussain) 역시 산티니케탄에서 예술적 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인도의 대표급 원로화가로서 정치적이며 자전적인 주제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M.F 후세인(M.F Husain)과 인도적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을 보여주는 라자(S.H. Raza), 인도 전통 세밀화에 뿌리를 둔 굴라모하메드 세이크(Gulammohammed Sheikh)와 아르파나 카우어(Arpana Caur), 산티니케탄이 장려한 바 있는 공예에 기반을 두는 친탈라 자그디쉬(C. jagdish), 벵골파의 토속적 소재들로 인도인의 전형을 그리는 랄루 프라사드 쇼(Lalu Prasad Show) 등이 이 전시에 초대된 주인공들이다. 전체적으로 이들 작가의 미술세계는 인도 자국의 전통문맥을 유지하면서도 범아시아주의를 지향하고, 동시에 세계와 소통하려는 산티니케탄의 정신을 작품으로 구현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미술계는 장르의 경계뿐 아니라 가치나 제도 등에서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원화가 사실상 붕괴되어가는 증후를 보여 왔다. 모더니즘시대의 지배적 가치인 서구편향의 문화의식 즉, 서구를 세계의 지배구조의 중심에 두고 그 선 밖의 나라를 주변으로 간주했던 서구중심적 사고에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방대한 전통의 자산 속에 경제적 부를 성취해 가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 등의 신흥 대국이 문화의 발신지가 될 공산이 점점 더 커졌다. 〈인도현대미술전:일상에서 상상까지〉에 내재한 의미들을 곰곰이 새겨볼 차례다.
이미지 제공_ 서울대미술관